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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은 손해배상 소송에 가로막혀 있다. 노조의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사측이 청구하는 손배 규모가 1천억 원을 넘어섰다. 파업 손배소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일상이 돼버렸다.

법원에서도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에게 수십억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쏟아지고 있다. 또한 파업이 발생하면 노동조합만을 상대로 법적인 책임을 묻던 예전과 달리, 최근엔 조합원 개인에게까지 손배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헌법상 권리인 노동 3권도 손배소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사측이 노조와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법원의 판결 결과는 어떻게 나오고 있을까. 전국의 대표적인 사업장에서 벌어진 파업 사건을 중심으로 파헤쳐본다. 또한 파업과 관련된 법률과 판례 분석을 통해 대부분의 파업이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배경과 수십 억대 손배소가 가능한 원인을 찾아본다.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이라는 기획을 통해 노동조합과 사측, 법률사무소 등을 통해 입수한 통계자료, 판결, 소송서류, 관련논문 등을 분석하여 파업 손배소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 기자 말

 MBC 노조는 2012년 1월 30일부터 7월 17일까지 약 170일간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사수'를 내걸고 파업을 실시하였다.
MBC 노조는 2012년 1월 30일부터 7월 17일까지 약 170일간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사수'를 내걸고 파업을 실시하였다. ⓒ 유성호

정당한 파업은 민형사상 책임이 면제되고, 불법 파업은 손해배상과 형사처벌이 뒤따른다.

파업을 바라보는 법원의 시각이다. 특히 법원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규정된 민사상 면책조항은 '정당한' 파업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해왔다. 즉 파업의 ① 주체 ② 목적 ③ 절차 ④ 방법이 모두 정당해야 면책이 되고 그렇지 않은 행위는 손해배상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관련기사 : 기업 홍보 담당의 고백 "왜 거액의 파업손배소 내냐면...")

노동계와 노동법 학자들은 대법원이 민사상 면책되는 파업의 범위를 너무 좁게 보고 있다고 비판한다. 헌법상 권리인 노동 3권을 보장하려면 지금보다 더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최근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하급심 판결이 등장하고 있다. 법을 개정하지 않고 법원의 판단만으로도 정당한 파업이 늘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몇 가지 판결을 통해 '희망'을 찾아본다.

법원, "MBC 노조 파업은 정당" 판결한 까닭

대표적인 사례가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아래 MBC 노조)의 파업사건이다. MBC 노조는 2012년 1월 30일부터 7월 17일까지 약 170일간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사수'를 내걸고 파업을 실시하였다. 이에 맞서 사측은 노조와 노조 간부 16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사측은 소장에서 "파업의 목적이 순수한 근로조건 개선과 무관한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확보로서 위법할 뿐만 아니라 그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도 위법하다"며 "노조와 간부들이 공동불법행위자로서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측이 주장하는 손해액은 무려 195억 원이었다. 

가장 큰 쟁점은 목적의 정당성이었다. 다시 말해 MBC 노조가 내건 '공정방송 사수'가 파업의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있는지였다. 현행 법과 판례로 볼 때 합법파업은 근로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근로조건을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라는 법조항만으로 좁게 해석한다면 MBC 노조의 파업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런데 사건을 맡은 서울남부지법(제15민사부 재판장 유승룡 부장)은 파업이 방송의 자유의 보장과 한계라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파업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근로관계에 관한 법률뿐 아니라 방송에 관한 헌법과 법률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공정방송 의무는 객관적 법질서로서의 방송의 자유가 법률에 의하여 구체화된 것으로서 방송사업자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기관 종사자에 부과된 의무이고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그렇다면 방송의 공정성 보장이 쟁의행위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

"임금인상 아닌 공정방송도 파업 목적 될 수 있다"

재판부는 "쟁의행위의 목적은 근로조건의 결정 또는 그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으로서 노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노사 당사자에 관련되는 사항, 즉 원칙적으로는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는 사항으로 한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반드시 임금 등 근로자의 경제적 지위의 유지, 향상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MBC가 국민의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송사이기 때문에 특수성을 고려하여 단체교섭 사항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방송의 공정성 실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과 준수는 의무적 교섭사항이며, 노조의 공정방송 요구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MBC 사측이 ▲ 파업 직전까지 경영진은 단체협약에서 정한 공정방송 실현 규정들을 지키지 않았고 ▲ 제작자와 상의 없이 임의로 프로그램을 변경하고 ▲ 정권을 비판하는 방송 제작을 거부하고 ▲ 일방적으로 제작자 보직을 변경하는 등 인사권을 남용하였고 ▲ 내부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억압하고 ▲ 경영자의 가치와 이익에 부합하는 방송만을 제작, 편성하려 시도하였다고 사측을 비판했다.  

재판부는 "이와 같은 행위는 단체협약을 위반하여 근로조건을 악화시킨 것일 뿐 아니라 방송법 등의 관계법령에 의하여 인정된 공정방송의 의무와 법질서를 위반한 것"이라고 규정지으면서 이렇게 정리한다.

"MBC 노조가 사측에게 요구한 공정방송 사수는 단순히 기존 단체협약에서 정한 의무의 이행을 촉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위법상태를 시정하고 새로이 공정방송을 실효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조치를 협의하자는 요구이므로, 어디까지나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에 해당하여 그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노조가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한 부분에 대해서도 위법이 아니라고 보았다. 재판부는 "주된 목적은 특정한 경영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받고자 하는 데 있고,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상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MBC 노조의 파업 수단과 방법에서도 ▲ 집회나 농성이 대체로 단기간에 그친 점 ▲ 방송 송출 자체가 중단될 정도의 전면적·배타적 점거는 한 차례도 없었던 점 ▲ 폭력·파괴행위가 일어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정당한 파업이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언론사 노조의 특수성을 인정, '공정방송 사수'라는 파업의 목적이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 획기적인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011년 대전지법, 철도노조 파업 정당성 인정

 2009년 철도노조 파업 당시 정부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노조 지도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경찰 수십 명이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 건물 주위를 에워싸고 출입자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2009년 철도노조 파업 당시 정부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노조 지도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경찰 수십 명이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 건물 주위를 에워싸고 출입자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 권우성

2011년에는 형사사건에서 철도노조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 무죄를 선고한 한 판결이 주목을 받았다. A4 용지 50장에 달하는 이 판결문에는 기존의 판례와는 달리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원이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2009년 철도노조는 사측의 불성실 단체교섭 등을 규탄하며 준법투쟁(열차의 제한속도를 유지하는 등 안전과 관련된 규칙을 준수하여 열차운행을 지연시키는 방식)에 이어, 경고파업, 전면 파업 순으로 수위를 높여나갔다. 검찰은 철도노조 간부 등 22명을 기소했다. 실제로 당시 대다수 법원은 철도노조 파업 참가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해왔다.

검찰은 "노조가 명분상 단체교섭 성실 촉구를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공기업 선진화' 반대, 해고자 복직, 손배 철회, 연봉제 도입 반대 등 근로조건과 무관한 정치적인 사안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며 "경영권 관련 사항을 대상으로 한 노조의 쟁의행위는 목적에서 정당성이 없으므로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대전지법(김동현 판사)은 정리해고나 사업조직의 통폐합 등 기업의 구조조정 문제는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 교섭이나 쟁의대상이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비판했다.

법원은 "경영사항에 속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항의 경계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며 "(노조법) 법문의 규정에 충실하다면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으로서 사용자가 처분권을 갖고 있는 것이라면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경영사항에 속하는 부분이라도 근로조건과 관계가 있다면 교섭 대상이 되고 파업의 목적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철도노조가 정치적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파업을 벌였다는 주장에 대해 법원은 "노조 역시 하나의 이익 집단으로서 특정한 정치적 목표와 지향을 갖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집회현장에서 정치적 목표와 지향점에 관한 발언들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이것이 쟁의행위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보는 것은 다소 안이한 논리"라고 반박했다.

쟁위행위의 주된 목적이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된 것이라면 다소 정치적인 내용을 목표로 하는 파업도 허용되는 것이 맞다는 해석이다. 법원은 "노동운동의 주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쟁의행위를 활용하는 것이 과연 절대적으로 불허되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던진 뒤 "쟁의행위의 목적이 본질적으로 오염되지만 않는다면 (정치파업도) 일정 범위 내에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시민법과 사회법의 조화, 노동자와 사용자의 공존"

법원은 "노동법을 비롯한 사회법 질서는 사회적 보호 약자라는 명분을 가지고 전통적 시민법질서에 대한 수정으로서 법체계 속에 도입되었다"며 "시민법 질서에 익숙한 법해석자로서는 전형적인 계약관계 불이행에 해당하는 노동현안을 바라볼 때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노동 3권이 헌법적 현실로서 승인되고 있는 이상 법질서를 통합적으로 해석해내기 위해서는, 법 해석자는 그러한 불편함을 이기고자 하는 의식적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원은 철도노조의 파업이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무죄라고 판결한다. 그러면서 "노동자들 역시 자신들의 권리행사가 사용자의 권리를 제약한다는 점을 깨닫고 두 가지 법 질서가 조화를 이루는 합리적 지점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이 판결은 ▲ 경영권에 관한 사항도 근로조건과 관계있다면 교섭이나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있고 ▲ 쟁위행위에서 주된 목적을 따져서 정당성을 폭넓게 인정해야 하며 ▲ 시민법과 사회법, 노동자와 사용자의 공존과 조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사건은 2심에서도 무죄판결이 선고되었으나,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철도노조 2009년 준법투쟁과 1일 경고파업 "손배책임 없다"

 2월 2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이벤트홀에서 열린 '손배 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약칭 '손잡고')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서로 손을 잡고 사진을 찍고 있다.
2월 2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이벤트홀에서 열린 '손배 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약칭 '손잡고')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서로 손을 잡고 사진을 찍고 있다. ⓒ 유성호

2009년에도 철도노조는 준법투쟁과 1일간의 경고파업을 벌였다. 코레일은 이에 맞서 약 11억 원의 파업손배소를 냈다. 그런데 서울서부지법(제14민사부 재판장 이동근 부장)은 2013년 5월 원고전부패소판결을 내렸다.

2009년 당시 코레일은 공공기관 선진화계획에 따라 인력 단계적 감축, 직영식당 외주화를 추진하였다. 또한 코레일 노사는 실무교섭을 진행하였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게 되자 노조는 2차례에 걸쳐 각종 제한속도 준수, 제동시험 철저, 규정에 따른 안전 검수 등을 지침으로 내걸고 '안전운행투쟁'을 전개하였다. 9월에는 본교섭이 잘 진행되지 않자 하루동안 경고파업에 들어갔다. 

코레일은 안전투쟁과 경고파업 모두 불법에 해당한다며 손배소를 제기했다. 먼저, 법원은 안전투쟁이 파업이나 태업과 성격이 다르다고 보았다.

법원은 "안전투쟁은 안전규정을 준수함으로써 스스로 또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행해지는 목적적 행위로서 적법한 행위이고 파업과 달리 노무제공의 거부가 아니며 태업과 달리 업무를 규칙대로 수행하는 것"이라며 "안전운행투쟁이 객관적으로 요청하는 정도를 현저히 넘어선 것으로 볼 만한 사정이 없으므로 쟁의행위라고 볼 수없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안전투쟁을 쟁의행의로 보게 될 경우 "근로자들이 단체행동권의 행사로 인해 부담해야 할 형사, 민사상 책임의 범위를 확대하게 되어 단체행동권의 행사를 사실상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헌법이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측은 공기업선진화 저지, 단체협약개정 반대, 손해배상 철회 등을 목적으로 한 경고파업에 대해,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것을 이유로 삼은 불법파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 하루 동안 운전분야 조합원들만 참여하였고 ▲ 단체교섭이 1년 넘게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온 점 등을 볼 때 파업은 단체교섭 촉구를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도 사측의 항소로 서울고법에서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형사처벌·손해배상 때문에 파업 주저해서야  

헌법재판소는 "쟁의행위의 정당성의 판단기준이 반드시 명백한 것이 아닌 데다가 법률의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근로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정당성을 판단하기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노조는 사측의 불성실한 단체교섭에 맞서서 파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파업은 '단체교섭을 촉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혹시 있을지 모를 형사처벌이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때문에 쟁의행위를 주저하게 되면 단체행동권의 행사는 사실상 제약을 받게 된다.

앞서 소개한 판결들이 빛나는 까닭은 법원이 파업의 정당성을 폭넓게 인정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앞으로 법원이 정당한 파업의 문을 좀 더 넓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파업#파업손배소#쟁의행위#노동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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