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렇게 봄이 완연해 진 걸까. 봄비 몇 날 몇 밤 오시더니 천지에 봄이 찬란하다. 봄은 느리게 오고 서둘러 떠나기에 봄은 언제나 아쉬움에 가슴 조인다. 며칠 사이에 매화는 절정을 이루고 동백꽃도 피고 목련도 피고 샛노란 개나리꽃도 피어 흐드러졌다. 지천엔 쑥 천지라 봄 처녀마냥 나물 캐러 산으로 들로 나가고 싶다.
봄은 기적. 천지에 꽃불 놓아 봄이라고 소리 없는 함성을 내지르고 있다. 산과 들에 생명이 움트는 소리 없는 아우성 가득하고 어느새 툭 툭 툭 꽃망울 맺히더니 꽃이 터져 나오고 매화향기 천지진동하더니 봄꽃들이 앞 다투어 너도 나도 다 피었다.
화창한 봄날. 오늘은 '토를 하고 곡을 해야 갈 수 있는 산'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경남 양산 원동 토곡산(855m)을 만나러 간다. 원동 토곡산(855m)은 가끔 원동이나 배내골에 갈 때면 오다가다 올려다 보았던 산이다.
'제법 험하다더라' 카더라 통신만 들었을 뿐 아직까지 한 번도 가까이 만나 보지를 못했다. 오다가다 봤던 토곡산을 만나러 간다. 낙동강과 양산의 산군을 조망할 수 있는 산으로 양산시 원동면 원리와 내포리 사이에 위치해 있다.
무엇보다도 토곡산을 만나러 가는 길에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기차여행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낙동강을 끼고 도는 기차를 타고 원동 토곡산을 만나러 가는 것은 기차여행의 운치 때문에 더 빛을 발한다.
낙동강 연안에 위치해 있는 원동 토곡산은 부산 근교산 중에는 꽤 높은 산인 데다가 악산이라 산꾼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거기다 기차여행을 겸하니 더 운치가 있다. '기차'하면 기차에 얽힌 아련한 추억 하나 있나 괜히 더듬어 보기도 하면서 향수에 젖는다. 맘부터 설레고 어디론가 떠나야할 것만 같다.
이맘때쯤이면 양산 원동엔 매화꽃축제가 열린다. 어쩐다. 오늘이 원동 매화꽃 축제날이다. 매화축제도 보고 토곡산도 만나면 좋겠다만 한꺼번에 두 가지 다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기차를 타고 간다는 생각에 마음 설렜지만 매화축제에 가는 사람들로 꽉 찬 기차 안에서 운신하기도 힘든 채로 서 있다가 원동역에 내리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원동역 광장에도 매화꽃 축제에 온 사람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원동역에서 벗어나 원동초등학교 쪽으로 향했다. 원동지서를 지나 오른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약 5분. 건너편에 원동초교가 있다. 마을 곳곳마다 매화꽃 향기 진동했다. 원동초등학교 옆 공터에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숲속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완만하였다. 이 정도의 길이라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 우리는 메마른 산을 물들인 진달래와 생강꽃을 일별하며 여유있게 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호젓한 오솔길 걷다가 차츰 경사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바위너덜지대가 나왔다. 경사는 점점 높아져 마른 낙엽이 깔린 험한 바윗길을 조심스레 짚으면서 오르기 시작했다. 바위가 가끔 흔들려서 몸이 중심을 잃기도 해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갈수록 경사는 점점 높아지는데 언제까지 바윗길이 계속될까.
오늘 토곡산 산행엔 두 꼬마 총각도 참여했는데 내심 걱정스러웠다. 끝까지 잘 갈 수 있을까. 올라갈 때 토하고 내려갈 때 곡한다는 악산 토곡산인데 과연 꼬마 총각들이 완주할 수 있을까. 엄마 아빠랑 함께 온 두 꼬마 총각이 걱정스러웠지만 생각보다 잘 걸었다. 애들 부모도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 눈치다. 애들 괜찮겠냐고 물었을 때 '산에 몇 번 갔었다'면서 별로 신경 안 쓰는 눈치다.
둘 중에 큰 아홉 살 인생 꼬마 총각은 함께 동행 한 40여 명의 어른들보다 더 잘 걸었다. 우리보다 앞서 갔는지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어쩜 그렇게 잘도 걷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경사 높은 바윗길을 오르고 또 오르다보니 드디어 능선길이 나왔다. 조망바위에 올라 낙동강변과 사방으로 두루 펼쳐진 산줄기를 일별했다. 바람은 상쾌하고 햇볕은 따뜻해 좋다. 소나무와 낙엽송으로 어우러진 호젓한 능선 길엔 바윗길과 흙길로 어우러져 있었다.
그래도 토곡산 정상은 한참 남았다. 과연 힘든 산이다. 저만치 토곡산 정상을 지나 우리가 빙 둘러서 걸어가야 할 능선길이 마주 보였다. 소나무로 만든 나무의자에 앉아 잠깐 휴식하고 다시 걸었다.
드디어 토곡산 정상 도착. 토곡산 표시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정상 일대를 바라보며 한숨 돌렸다. 남서쪽으로 낙동강을 봄 햇살이 어루만지고 있고 강 건너 무척산과 신어산이 보였다. 동쪽은 천성산에서 금정산으로 뻗어 내린 낙동정맥의 산군이 장쾌하고 서편으론 천태산의 암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점심을 먹었다. 꼬마총각 아홉 살 인생은 엄마 아빠랑 동생이랑은 뚝 떨어져 어른들 사이에 앉았다. '점심 같이 먹어요!'하면서 제법 사교성을 발휘해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후훗 정말 기특한 아홉 살 인생이네.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든다. 시작점인 들머리에서 곧장 치고 올라 능선길을 에둘러 토곡산 정상을 만나고 우리가 먼저 걸어왔던 저만치 보이는 산줄기를 일별하며 이쪽 바위 능선길을 따라 걷는다. 부채꼴로 한바퀴 빙 둘러 가는 셈이다.
처음 만나는 산은 예상 못한 뜻밖의 난관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긴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멀리서 볼 땐 이곳이 바윗길인지 아닌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막상 와보니 위험천만한 바윗길이다.
이 능선길은 너럭바위 노선으로 로프를 이용한 급경사와 위험구간이 많아 아찔한 순간순간을 만났다. 한두 번으로 끝나는 길이 아니라 바위를 타고 넘고 로프를 타고 내려가고 올라가고 하면서 더듬더듬 건너야 하는 위험천만한 길을 몇 번이고 만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닷가에서 자랐기에 바위 타는 것을 별로 겁내지 않는 나조차도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다. 남자 몇 사람이 위험 구간 중간 중간에 서서 일행들이 잘 건널 수 있도록 도왔다. 그래도 이런 바윗길에 익숙지 않은 일행들 중에는 로프를 의지해 바위를 끼고 돌다가 무서워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아찔아찔 위험한 순간들을 만났지만 위험구간을 넘으면서 정신 번쩍 드는 쾌감과 생기는 더 높이 돋았다. 모처럼 가슴이 벌렁거렸다. 아찔한 순간을 만나기도 했지만 모두 무사히 바윗길을 건넜다. 무사통과한 사람들이 장난기가 발동했나보다. "누구누구는 울었더래요~!"하며 놀려대고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제 함포마을로 내려간다. 올라온 만큼 내려가는 길. 이 길은 완전 급경사 미끄럼 길이다. 사람 발길 많이 닿지 않은 길인지 길표시도 희미하고 자칫하다만 넘어져 미끄러지면 한참을 뒹굴 것 같은 급경사길이다. 내려가는 길에 긴장했지만 게걸음으로 조심조심 발 걸어 무사히 내려섰다. 제법 오래 걸리는 하산길이다. 함포 간이상수도 배수지를 지나 함포마을회관 앞에 도착하니 어느새 저녁 6시 15분. 아침부터 저녁까지 원동 토곡산을 한 바퀴 빙 돌았다.
기차 시간에 맞춘다고 힘껏 걸어 원동역에 도착했지만 기차는 떠나고 다음 차를 기다렸다. 경부선 철로변에 위치하고 있어 기차 타고 만나기 좋은 원동 토곡산. 덕분에 짧은 시간이지만 기차여행의 즐거움을 안겨 주었고 '올라갈 때 토하고 내려갈 때 곡한다'는 악산 토곡산을 짜릿한 쾌감과 스릴 넘치는 만남으로 흥미진진한 하루였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기차여행하며 원동 매화꽃을 만나러 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어둠이 내리고 있는 원동역. 열차는 30분이나 연착했다. 축제의 계절 봄날의 그 하루가 지나갔다.
산행수첩1. 일시: 2014년 3월 22일(토) 맑음2. 산행: 부산 포도원교회 등산선교회: 42명3. 산행시간: 8시간 35분4. 진행: 원동초등학교(9:55)-능선(11:15)-석이봉(11:45)-삼거리(복천암방향 갈림길 1:10)-토곡산 정상(1:15)-점심식사 후 출발(2:15)-삼거리(2:16.왼쪽)-안부(4:10)-함포 간이상수도 배수지(5:50)-함포마을회관(6:15)5. 특징: ① 화명역(8:40)-원동역(8:55): 15분. 2,200원(입석) ② 정상-바위능선길-위험구간. 암봉-안부-함포마을 ③ 암봉능선길: 초보자는 위험 ④ 저녁 7:11분(원동역)물금역(7:16분): 좌석 2,6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