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4 지방선거 경기도지사에 출사표를 던진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무상버스'를 공약으로 내세워 주목을 받고 있다. 김상곤 전 교육감은 4년 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면서 '무상급식'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던 인물. 사실 한국 사람들만 공짜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우리에겐 꿈처럼 들리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무상주택이 실현된 지 오래다.
특히 유럽엔 1년 내내 공짜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도시가 있다. 돈이 많고 복지 기반이 잘 만들어져있는 북유럽일 것 같지만, 사실 소련에서 독립한 지 20년 밖에 안 되며 국민소득이 우리나라 수준에도 못 미치는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 이야기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시민들은 2013년 1월 1일부터 탈린 시내에서 운행되는 모든 종류의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같은 해 8월부터는 탈린 경계 내에서 운행되는 도시철도 역시 무료 이용이 가능해졌다.
물론 모든 국민들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탈린에 공식적으로 거주 신고를 한 시민들과 에스토니아 전국 교육기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만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탈린에서 살지 않는 에스토니아인들은 별도로 승차권을 구매해야 한다. 합법적으로 탈린 시에 거주 등록이 되어있다면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무료 승차는 가능하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이뤄진 '무상교통'의 꿈
이런 대중교통 무료이용제도가 단지 에스토니아 탈린에서만 도입된 것은 아니다. 유럽 내에서는 폴란드의 좀브키(Ząbki)와 니사(Nysa), 프랑스의 오반뉴(Aubagne), 벨기에의 하셀트(Hasselt) 같은 도시들이 이미 이전부터 무료대중교통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대부분 인구가 10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도시들이다.
더구나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폴란드의 도시들은 완전도입을 준비하는 실험적 단계이기 때문에 성과를 논하기엔 이르다. 벨기에 하셀트는 1997년 세계 최초로 무료대중교통수단 제도를 도입해 주목을 받았지만, 예산문제로 제도를 철폐했다. 2007년 파악한 필요예산이 초기 예산에 4배에 달하는 300만 4500유로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19세 미만 청년들과 어린이들만 무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탈린시가 무상대중교통을 도입하려한 시기에 하셀트시의 포기 소식이 들려, '탈린 역시 벨기에 도시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없지 않았다. 무상교통제도가 도입된 후 약 1년, 탈린시의 무상교통은 어디까지 왔을까?
탈린 시청 대외홍보처장인 알란 알라퀼라씨는 "현재 상황으로는 무상교통제도 운영이 대성공적"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성과는 상당히 많다. 우선 무상교통제도가 도입된 이후 2014년 3월 현재 전체 대중교통 이용자는 전년 대비 12%가 증가했다. 그 결과 시내 교통체증은 15% 감소했다. 물론 통합카드를 별도로 구입해서 지정된 장소에서 등록을 마쳐야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로부터 무상교통제도는 환영받고 있다.
단지 무료 이용과 교통체증 감소 등을 이유로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계층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모든 이들인 권리를 보장받는 차원에서 사회적 통합의 장점도 갖고 있고, 자가용을 이용해 굳이 먼 곳으로 나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근처 상점에 장을 보는 사람도 늘어 지방 경제가 더 활성화되는 예상치 못한 결과도 낳았다.
에스토니아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가민주(25)씨 역시 탈린의 무상교통제도로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비록 외국인이지만 혜택이 주어지는 것은 상당히 크게 와 닿는다"면서 "타국에서 받는 이러한 혜택들은 해외생활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고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동기부여를 주는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무상교통 시행으로 인구 유입 효과 노린 탈린시무상교통제도가 시행된 지 1년 조금 넘었기 때문에 속단하긴 이르지만 주변 국가들도 탈린시의 상황을 상당히 고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중국 청두에서도 탈린시청과의 협력사업을 통해 청두 내에서의 무상대중교통제도를 도입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런 성공적인 무상대중교통제도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물론 탈린시도 처음엔 예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2013년 무상교통제도의 도입을 준비하던 당시 탈린시는 1200만 유로(한화 약 178억 원)의 예산을 충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제도 도입 이전에도 탈린시내 대중교통사업 예산의 70%를 시가 부담하고 있었고 승차권 판매사업에서는 고작 30%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승차권 판매만으로는 수익창출을 기대하기 어렵고 서비스의 질을 향상할 수도 없어 대중교통 이용객 수는 줄어드는 판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상교통제도를 도입하겠다는 탈린시의 결정은 엄청난 모험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상교통제도는 탈린에 정식으로 거주 등록을 해 세금을 내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제도를 통해 탈린 인구가 늘어 세수가 증가하다면 30%에 해당하는 승차권 수입금을 충당할 수 있으리라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전 시민들을 상대로 찬반투표를 벌였는데, 그와 동시에 만 3000명의 사람들이 탈린 시민으로 등록했다. 증가한 인구로만 따져 봐도 1200만 유로의 초과 예산 달성은 별 문제가 없었다. 더불어 올해 초부터 탈린 시내 주차비용을 올려 탈린 시차원의 수입 증대를 노리고 있다.
무상교통제도 도입 이후 실제로 1750만 유로의 수입 증대 효과가 예상된다고 한다. 계산이 맞는다면 전적으로 승차권 판매에서만 수익을 기대했던 때보다 오히려 수익이 늘어나는 셈이다. 이용객 증가에 맞춰 탈린 시청은 대중교통수단의 질적 향상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70대의 버스와 시가전차를 새로 구입했고 시내 버스전용차선도 늘려 버스의 속도도 향상시켰다.
각 지역의 특색 파악해 도입 추진해야 안전
사실 탈린 시내 대중교통의 무상승차에 대한 결정이 내려짐과 동시에 그 대상을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완전무료제도를 도입하느냐, 개인 수입규모나 나이 등에 제한을 둘 것이냐, 요일별·시간대에 따라 부분적으로 도입을 할 것이냐, 도시 전체에서 가능하게 할 것인가, 특정 구간에만 가능하게 할 것이냐 등 결정해야할 사항이 많았다.
이미 무상교통제도를 운용하고 있던 프랑스의 오반뉴는 인구가 10만에 불과하고 폴란드의 좀브키와 니사는 인구가 불과 몇 만에 불과하고 시내 역시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인구가 40만에 육박하는 탈린시가 참고하기는 어려웠다.
인구가 1500만명에 육박하는 중국 청도시의 경우 시내 모든 구간이 아니라 시내 일부 구간에서만 무료승차가 가능한 상태다. 그러나 중국은 탈린과는 여러모로 상황 달라 탈린과 같은 눈에 띄는 성과가 바로 드러나지 않았다. 자전거나 오토바이 대신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늘었으나, 시내 교통량이나 교통체증의 감소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위에서 보듯 무상교통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인가에 대한 모범답안은 정해져있지 않다. 각 도시마다 각 지역마다 각자의 상황과 처지가 있기 때문에 특정 도시에서 있었던 성과만 믿고 섣불리 도입했다가는 더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특히 탈린시는 오래 전부터 '녹색수도'를 실현하고자 하는 장기적인 포부와 가치를 갖고 있던 곳이니, 무상교통제도의 정착이 원활했을 수도 있다.
시민의 행복과 안위를 우선에 놓지 않고 포퓰리즘과 관료들의 편의성만 따진다면, 수백 억 원의 예산을 들여 사업을 진행한다 해도 탈린시의 사례처럼 성공을 보장하긴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