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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 사기> 책 표지
<지적 사기> 책 표지 ⓒ 한국경제신문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부른다. 시대 구분은 여러 기준에 따라 다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은 '근대 시대'이지만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내포하고 있는 사상적 경향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철학자는 자크 라캉, 장 보드리야르,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등을 들 수 있다.

이 철학자들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지만 이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들이 쓴 텍스트가 얼마나 난해한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이들의 저작을 읽어보려 했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의 공습에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이 쓴 글의 난해함을 비판하는 책이 나왔다. 바로 <지적 사기>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난해함이 어려움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과학과 수학에서 사용되는 여러 전문 용어들을 그들이 명확한 의미도 모른 채 가져다 쓰면서 발생한 것이라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난해함에 치를 떨어본 사람이라면 이들의 주장이 솔깃할 수밖에 없다.

과학 및 수학 언어의 오남용

"이 책의 목표는 비록 다루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불투명한 시대정신을 비판하는 작업에 창조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다. (중략) 이제까지 비교적 등한시 되어온 영역, 곧 수학과 물리학에서 나온 개념과 용어가 자꾸만 남용되는 현상에 대하여 좀 더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에서 이 책을 썼다. 우리는 또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글에 자주 등장하며 자연과학의 내용 및 방법론과도 무관하지 않은 흐리멍덩한 사유도 짚고 넘어갈 것이다.(18쪽)"

<지적 사기>란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하나의 장난에서 시작됐다. 앨런 소칼이라는 학자가 포스트모더니즘적으로 꾸며 쓴 논문 하나를 학술지에 투고했는데, 그것이 학술지에 게재된 것이다. 그럴 듯하게 구색을 맞춰 쓴 글이 전문적인 학술지에 게재됐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 일은 학계에 파장을 몰고왔다.

앨런 소칼이 벌인 장난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조가 얼마나 불투명하고 허술한 것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어려워 보이는 단어를 가져와 그럴 듯하게 이어붙이면 하나의 철학적 논문이 완성된다는, 사실은 그 글이 논리적으로 완성된 글이 아니라 어려워 보이는 단어에서 오는 권위에만 기대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권위에 빌붙은 글은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더 많은 권위를 원한다. 그래서 명확한 의미도 파악하지 못한 수학 및 물리학의 단어를 오남용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글은 더욱 흐리멍덩하게 변한다. 흐리멍덩한 글은 "구체적으로 도달하는 데가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면서 무한정 탐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포스트 모더니스트 비판

앞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자크 라캉과 장 보드리야르를 들었다. 자크 라캉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해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대중과 대중문화, 미디어와 소비사회 이론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적 사기>에서 이 두 세계적인 철학자는 수학 및 물리학 용어의 오남용을 비판하는 대상일 뿐이다.

"라캉의 옹호자들은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면 이른바 '부정 일변도'의 전략에 의지하면서 오리발을 내민다. 그 글들은 과학으로 평가해서도 안 되고 철학으로 평가해서도 곤란하며 그렇다고 해서 시로 평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속 신비주의'라는 소리밖에 더 되겠는가.(58쪽)"

"우리는 보드리야르의 저서에서 과학 용어가 본연의 의미를 철저히 무시당한 채 무엇보다도 너무나 엉뚱한 맥락에서 남용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을 은유로서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사회학이나 역사학에 대한 진부한 관찰에 심오함을 덧씌우려는 것 외에 그런 용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184쪽)"

자크 라캉과 장 보드리야르 외에도 많은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을 책에서 비판하고 있다. 저자들은 수학 및 물리학의 용어들, 예를 들면 위상학, 괴델의 정리, 초끈 이론, 카오스 이론 등에서 파생된 용어들이 과연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글에서 적확하게 그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지 조목조목 따져들어 간다.

<지적 사기>의 저자들이 비판하는 바를 읽으면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왜 과학의 용어를 무분별하게 가져다 쓴 것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사람에겐 직관이라는 것이 있다. 이 직관을 논리적으로 풀어낸다면 그것은 이론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단지 직관에 머물 수밖에 없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이 직관을 표현할 수단을 찾지 못해 애를 먹다가, 애먼 과학 용어들을 가져다 쓴 것은 아닐까. 

"'진리'는 인간이 대부분 통제할 수 없는 사실들에 의존하는 어떤 것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지금까지 철학이 겸손이라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사람들에게 주입시켜온 방법들 가운데 하나였다. 자만심에 제동을 거는 이런 장치가 사라졌을 때 우리가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은 일종의 광기로 치닫는다. 이것이 바로 피히테의 철학이 빠져든 권력 도취인데 현대인은 철학자건 철학자가 아니건 이런 증세에 빠질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 나는 이런 도취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위험스러운 요소이며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이런 도취를 조장하는 철학은 광범위한 사회적 재난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239쪽)"

포스트모더니즘을 다른 말로 하면 해체주의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구조적 논리는 해체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논리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수학이나 과학까지 해체할 수 있는 것일까. 괜찮아 보이는 용어가 있으면 그 정확한 의미도 파악하지 않고 끌어다 쓰는 것은 과연 용납할 수 있는 일일까.

현재의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겸손을 잃고 자만심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흐리멍덩한 것에 관한 무한한 탐닉과 끝없는 도취는 결국 파멸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그런 학문은 소수의 학문으로 남아 세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지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사치품이 될 뿐이다. 이제 '지적 사기'는 중단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지적 사기>(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월 / 18,000원)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 http://picturewriter.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적 사기 -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했는가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 이희재 옮김, 한국경제신문(2014)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지적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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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읽고 짬짬이 쓰는 김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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