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의 일이다. 예전에 임플란트 식립과 골이식 수술(뼈의 결손보전이나 보강 등을 목적으로 골편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은 20대 남성 환자가 찾아왔다.
"진단서에 골 이식이란 말이 들어가면 보험 회사에서 보험금을 지급해 준다는데, '골 이식'이라는 말을 꼭 적어서 진단서 좀 끊어주세요." 지난 차트를 들여다보았다. 청소년기에 이를 뽑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치과에 내원했다. 이 빠진 자리는 이미 골 흡수가 일어나 임플란트 식립이 어려웠고, 그에 따라 골 이식 수술을 병행했던 기록이 있다.
진단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가지고 작성해야 한다. 진료기록부를 토대로 '골 이식'이라는 단어를 꼭 집어넣어서 작성해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환자가 다시 찾아왔다.
"원장님, 오래전에 이를 빼서 골 흡수가 일어났다는 말은 빼고요, 그냥 골 이식이라는 말만 들어가게 다시 써주세요." 사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골 이식을 하게 된 이유가 진단서에는 포함돼야 한다. 결국 그 환자는 단 한 푼의 보험금도 받지 못했다. 그나마 평소 신뢰가 있던 환자였기에 상황에 대한 설명을 이해했고, 보험금을 포기했지만, 최근 들어 비슷한 상황으로 찾아와 고집을 부리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그냥 골 이식이라는 말만 적어주면 설계사 분이 알아서 보험금을 타게 해준다며 대기실에서 버티는 환자들이다. 물론 환자들의 잘못은 아니다. 약관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보장 내역만 가지고 가입을 유도한 누군가의 잘못이다.
막 오른 치과보험 시대, 용어부터 살펴보자
몇 년 전, 치과 보험(사보험)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 한번 치료하려면 고액의 비용이 들어가는 치과치료. 보험을 통해 경제적 부담을 줄인다는 것은 굉장히 솔깃한 이야기다. 액면으로만 보자면 말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속빈 강정인 경우가 허다하다. 일단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약관을 꼼꼼히 읽고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실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입자는 제한적이다.
물론 나 역시도 가입한 생명보험이나 암보험 등의 약관을 자세히 읽어본 적은 없다. 양이 많아 읽기가 벅차고, 읽어봐도 무슨 소린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리라. 그러던 차에, 때마침 남편의 치과보험 견적서를 들이밀며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직원이 있었다. 그래, 이번 기회에 한번 제대로 공부해 보자, 라는 생각으로 차근히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보장 내역과 관련된 부분을 들여다 보자. 30대 중반인 직원 남편의 견적서를 바탕으로, 실제 어느 정도 보장이 되는지 꼼꼼하게 알아본다.
먼저 치과 보험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용어들이 있다(물론, 치과 전문 용어는 아니다). 진단형과 무진단형, 면책 기간과 감액기간이 그것이다. 진단형과 무진단형은 구강내외검사를 통해 진단을 받았느냐의 유무로 구분한다. 전화 한 통화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하는 보험의 형태는 대부분 무진단형이라고 보면 되겠다. 비교적 가입이 손 쉬운 무진단형의 단점은 보장금액이 상대적으로 적으며, 일정 기간이 지나야 보장을 받을 수 있다.
면책 기간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말로 '보장 개시일'이라고도 하는데, 가입한 후에 일정 기간이 지나야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면책기간이 지나도 보험회사가 기준으로 제시한 통상 2년이라는 기간 내에 보장을 받으면 보험사에서 지급하는 금액은 50% 삭감된다. 이것이 감액기간이다. 다른 보험과 달리 면책기간과 감액기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모럴헤저드, 즉 가입자들의 도덕적해이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이것부터 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일단 넘어가본다.
용어에 대한 이해가 되었으면, 고객 가입률이 46.8%라는 L사(치과보험 비교 사이트 참조)의 치과보험 상담 내용을 들여다보자. 직원 남편은 35세이며 1년 전에 치료를 마무리하여 현재는 치료할 치아가 없다. 어릴 적부터 충치가 많이 생기는 상황을 겪다보니 불안감에 치과 보험을 가입하려고 한다. 3만 원이 조금 안 되는 월 보험료(특약 포함 2만8500원)를 내고 이 환자가 5년(5년 만기 상품) 안에 받을 수 있는 보장은 어느 정도일까?
보험에 가입하고 나면 충전치료(썩은 곳을 제거하고 때우는 치료)는 3개월이 지난 후부터 보장이 가능하며, 보철치료(결손부위가 심해서 씌우거나 틀니, 임플란트 등의 치료)는 6개월 후부터 보장이 가능하다. 물론, 2년 이내에 치료를 받으려면 50% 감액된 금액만 지급받게 된다.
다시 말해, 이 환자가 충치가 한 개 생겨서 3개월 후에 치료를 받고 보장을 받는 금액은 9만 원 가량(8만5500원)을 납입하고 5만 원(2년 이내 50% 지급)을 보장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약 일로부터 2년이 지나서 100% 보장 받는 시점에서 두 개의 충치가 생겼다면? 25개월째 충치를 발견하고 충전 치료를 했다고 치자. 치료비로 20만 원을 보장받는다. 단, 그간 납부한 보험료는 70만 원쯤 된다.
대부분의 보험사의 보장 내용은 충전치료든 보철치료든 1년에 3개를 넘지 않는다. 한해에 3개까지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해 동안 납입한 보험료는 34만 원. 충전 시 지급되는 비용은 30만 원. 보험회사는 웬만해선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
위의 예로 든 환자의 경우는 현재 치아 상태가 비교적 깨끗하고, 잇몸상태도 양호하며,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오는 환자이다. 다시 말해 5년 만기 상품에 가입했을 때, 5년 이내에 사고가 아닌 이상 기껏해야 충치치료 정도 받는다는 얘기다. 또한, 해마다 3개 이상 치료를 받을 가능성도 매우 낮다. 충치는 관리하기에 따라 1~2년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임플란트, 보험 들면 싸게 할 수 있다고?
임플란트 수술도 적용해 본다. 이 환자가 한 개 치아에 풍치가 존재하여 2년쯤 지나서 이를 뺄 가능성이 있다면?(물론, 치과의사인 나도 치아의 예후를 몇 년이라고 못 박을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가입 후 3년쯤 지나서 풍치로 치아 하나가 빠졌다고 치자. 감액 기간이 지났으므로 50만 원의 보험료가 나온다.
그럼 3년간 납입한 보험료를 계산해보면? 36*3=108만 원이다. 3년 동안 108만 원 내고 임플란트 한 개 심고 50만 원 보장 받은 것이다(특약을 포함하면 보장액이 2배로 오른다. 예로 든 직원 남편의 월 납입료 2만8500원은 보철치료 특약이 포함된 비용이다. 그래도 3년 후에 100만 원 밖에 보장 받지 못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비교적 구강건강이 양호한 상황에서는 치과 보험을 가입해도 보장받는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거기에다 회사에서 정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의 수까지 대입하면, 그 혜택은 더욱 소수만이 맛볼 뿐이다.
현재 구강 내 상태가 치료할 치아도 없고, 치주(잇몸)상태가 정상인 사람이라면, 특히나 정기적으로 내원하여 치과 검진을 받는다면, 치과보험이 과연 얼마나 효용성이 있을까? 직원에게 한 조언은 간단했다.
"차라리 적금을 부어라." 다음 회에서는 어떠한 경우에 보험이 도움이 되는지, 예를 들어 살펴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