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자락, 그것도 백두대간의 등줄기 한 가운데 위치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 오색의 봄은 도깨비 같은 날씨다. 4월에 눈 내리는 것쯤이야 예사로운 일이고, 5월 하순에도 대청봉 정상엔 눈이 언제든 내릴 수 있는 곳이니 눈 속에 핀 꽃을 만나려는 이들에겐 항상 기대를 갖게 한다.
지난 주 주중에서 주말로 이어지는 며칠이 그랬다. 목요일부터 밤새 대설주의보가 내린 상태에서 제법 굵은 빗줄기가 퍼부었다. 금요일 새벽녘 잠 깨어 창문을 열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어둠 속으로 마당에 하얗게 눈이 쌓여있는 게 보인다. 날이 밝으면 카메라를 챙겨 나서야겠다. 두어 시간 뒤척이다 다시 선잠이 들었으나 아이들 때문에 맞춰둔 알람에 깼다.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카메라를 들고 나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다시 돌아서 들어와 잠시 기다리는데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진다. 서둘러 나선다.
마당에 쌓였던 눈은 흔적 없이 녹았고, 먼 산만 하얗게 눈이 덮여있다. 막 꽃망울을 여는 목련에 눈이 녹아 물방울이 울먹이는 아이마냥 그렁그렁하다. 올 봄은 참으로 이상한 기후다. 생강나무꽃이 지고 며칠 지나야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는 게 정상인데, 이 봄은 생강나무가 꽃을 피우자 이내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앞 다퉈 목련과 복숭아, 살구, 자두, 돌배나무까지 일시에 꽃을 피운다. 괴불주머니와 냉이, 꽃다지는 말 할 것도 없고 하순에나 꽃을 피워야 정상인 금낭화까지 꽃대를 올렸다.
4월에 눈 내리는 것이야 한 두 해 보아온 것이 아니니 이상할 일도 없으나 나무들까지 잎을 내고 온산에 진달래 붉은 시점에서 폭설이라니…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돌배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돌배나무부터 찾았다. 막 꽃망울을 터트리려는 돌배나무에도 눈이 아직 남아있다. 온전히 피면 온통 하얗게 보이겠지만 아직은 진분홍빛이 선명한 돌배나무 꽃망울에 수정 같은 눈이 쏟아지는 햇살에 물기를 가득 머금었다.
몇 장 꽃과 풍경을 촬영하고 발걸음을 재촉해 단목령 방향으로 길을 잡아 들어섰다. 토종벌들도 꽃들이 피니 분주할 터인데 눈이 내리니 오늘은 조용하다. 몇 년 전 일대 토종벌들이 원인도 모르게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몇 통 남은 벌들을 애지중지 기르는 이들에게 일찍부터 온 산야를 곱게 수놓은 꽃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겠다.
벌통을 지나 언덕을 향해 걷는데 눈에 휘어진 버드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일찌감치 잎을 낸 버드나무는 많지도 않은 눈에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누었다. 유연함 덕에 큰물이 나가도 끄떡없이 견디고, 스스로 몸을 눕힐 줄 아는 덕에 부러지지 않으리라.
해토(解土)가 되고 볕이 길어지자 쟁기질을 하고 비닐을 덮은 밭고랑도 눈이 덮였다. 요즘이야 소로 쟁기질 하는 모습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소를 대신해 사람이 쟁기를 끄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대부분 작은 밭은 사람이 쟁기를 끌어 밭을 갈거나 조금 더 큰 밭이나 마을 단위로 트랙터를 불러 로타리를 친다. 비닐도 관리기를 사용해 일손을 던다.
이른 아침엔 제법 많은 눈이 덮였을 밭이랑도 햇살이 든 자리는 눈이 녹고, 이제 막 볕이 들기 시작하는 쪽만 눈이 성글게 무늬를 만들었다. 씨앗을 품어 싹을 틔울 수분은 충분히 이번 눈으로 머금어 농부의 마음도 흡족하겠다.
문제는 옥수수나 감자가 싹을 낸 뒤 눈이 내리는 일이다. 눈만 내리면 큰일은 없지만 기온이 뚝 떨어지면 애써 심은 작물을 다시 심어야 한다.
양지와 응달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길을 사이로 두고 밭과 산비탈이 나뉘어 있는데 산쪽은 햇살이 아직은 더디게 들어 눈이 쌓인 그대로다. 이제 1시간 정도만 해가 들면 저 눈도 다 녹겠다. 산딸기 덤불에 쌓인 눈을 보니 양지쪽에서 봤던 산딸기 덤불에 한껏 움을 틔웠던 덤불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사람도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조금 더디고 빠르게 삶의 적응력을 보이지 않던가.
5월에나 꽃을 보리라 싶은 고광나무도 꽃망울을 맺었다. 올해는 계절이 이렇게 일순간에 변하니 은근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무언가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식물들도 서둘러 씨앗을 맺으려 꽃을 피우는 법 아닌가. 여름철 2006년 폭우 같은 큰 비라도 또 닥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미리 대비해 나쁠 것 없다.
가파른 언덕엔 소나무가 제법 능선을 따라 사철 푸르다. 그 아래로는 진달래나 철쭉이 일찍 봄을 알린다. 서둘러 왔으면 진달래에 덮인 눈도 보았을 것을 사진 촬영을 하며 걷다보니 물방울을 떨고는 말간 진달래가 햇살이 투명한 분홍빛을 드러낸다. 진달래 핀 언덕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단목령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 오솔길을 따라 내려서면 냇물을 건너 다시 집으로 갈 수 있다. 여느 때라면 내를 건너 이곳을 지났겠지만 어제 하루 내린 비로 물이 불어 제법 먼 길 돌아 온 참이다.
박달폭포 위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와폭(臥瀑)이 나온다. 와폭 부근엔 예전엔 양쪽으로 밭이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골짜기가 된지 20여 년 제법 숲은 울창해졌고 밭들엔 잡초만 무성하다. 오래전 기억이 없다면 밭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챌 수 없게 나무들이 무리를 지어 자라기까지 한다. 이곳부터 서북향으로 둘러앉은 산자락으로 지난 새벽 내린 눈이 그대로 덮여있다.
두 번째 물을 건너기 전 가끔 주인이 친구들과 찾는 외딴 집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터잡이로 이곳을 지키는 목련이 꽃망울을 알차게 맺었다. 목련만 아니라면 한겨울 풍경으로 착각할 정도로 작은 내 건너 산자락 솔숲은 겨울 풍경이다. 저 산등을 넘어 작은 골짜기로 내려서면 홀아비꽃대와 대극이 한창 꽃대를 올리겠지만 눈길에 실족이라도 하면 낭패라 그만둔다.
작은 내를 건너 묵정밭이 시작되는 곳부터 눈은 많아졌다. 등칡이 무성하게 자라고 억새가 점령한 이곳이 한때는 몇 가족 그곳에 목숨 줄 기대 살았던 제법 넓은 삶의 터전이다. 밭은 고르며 쌓은 돌무더기가 곳곳에 무덤처럼 남겨진 것으로나 밭이었단 사실을 알 수 있다. 두럭도 이젠 곳곳이 무너져 서서히 본디 풍경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입산금지 푯말이 붙은 곳에서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미나리냉이가 오래지 않아 흰 꽃을 피울 이곳부터 본격적으로 단목령으로 들어가는 숲길이 시작된다. 잰걸음으로 1시간 남짓 거리가 단목령이다. 70년대 어린 눈으로 만난 진동리 설피마을 사람들은 이 길을 넘어 아이들 급식용 건빵을 받으러 다녔고, 양양읍으로 장을 보러 넘었다.
지금이야 조침령터널을 이용해 양양장을 보러 다니는 그들에게 단목령은 또 다른 세계와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오색초등학교로 건빵을 받으러 지게를 지고 넘어 온 그들은 한껏 차려 입었어도 어린 눈으로 봐도 촌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순박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14살 어린 나이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던 내 모습을 보고 서울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촌스러움 말이다. 입산금지 푯말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걷는데, 까닭 모르게 그 시절이 그립다. 길은 되짚어 걸을 수 있으나 세월을 되돌릴 수 없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www.drspark.net/의 ‘한사 정덕수 칼럼’에도 동시 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