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의 합동군사훈련으로 고래들이 집단으로 해안으로 떠밀려 와 죽는 좌초 현상이 발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지난 3월 말부터 그리스 크레타섬 인근에서 미국 해군과 그리스 해군 등이 합동으로 해상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는데, 4월 1일부터 민부리고래(Cuvier's beaked whale)들이 크레타섬 남부 해안으로 떠밀려오는 좌초 현상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크레타섬 인근 해안 고래들 좌초, 왜?
크레타인들은 이것이 해군의 해상훈련과 관련된 것임을 즉각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최근에 크레타섬 인근에서 고래들이 집단 좌초 현상을 보인 것은 20년 전에 있었던 일로, 당시에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의 군사훈련이 있었다고 합니다.
민부리고래는 고래류 가운데 가장 깊이 잠수하는 종으로, 최근 언론에 소개된 기사에 의하면 몇 달간의 연구 끝에 민부리고래가 수면 3천미터 아래까지 잠수해 약 38분간 머무른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어떤 해양포유류보다도 깊이 잠수하는 것으로, 보통 깊이 잠수하는 것으로 알려진 향유고래보다도 더 깊이 잠수해 바다 밑에서 먹이는 구한다고 합니다. 향유고래는 약 2000~2500미터를 잠수해 먹이 활동을 한다네요.
이와 같이 깊이 잠수해 생활하는 민부리고래의 습성상 이들이 해안으로 좌초해 떠밀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살아 있는 채로 해안에 떠밀려오거나 집단으로 좌초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지난 1일 낮 12시경 먼저 3마리의 민부리고래가 크레타섬 남부 해안에 살아 있는 채로 좌초됐습니다. 얼마 후 약 1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2마리의 민부리고래가, 그리고 바로 옆에서 다시 2마리의 민부리고래가 좌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1996년과 1997년에 펠로포네스 해안에서 수십 마리의 민부리고래가 좌초돼 발견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1년에도 이오니아 해를 중심으로 그리스의 코르푸 섬과 이탈리아 동해안에서 민부리고래들이 좌초해 죽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번의 경우 모두 인근에서 해군이 고출력 소나(음파탐지장비)로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미소니언박물관과 국제포경위원회의 연구에 의하면, 지금까지 세계 전역에서 기록된 부리고래류의 좌초 사례는 모두 인근 해역에서 해군이 해상훈련을 하고 있을 때 일어났습니다.
고래 서식처 훈련 금지 조약 무시한 그리스 정부이번 크레타섬의 민부리고래 좌초도 인근에서 미국, 그리스, 이스라엘 해군이 합동으로 노블디나훈련(Operation Noble Dina)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훈련은 특히 '대잠훈련'에 역점을 두고 잠수함 탐지를 위한 초강력 수중음파(소나)를 집중적으로 발사했다고 하네요.
이미 지중해와 흑해에서 해군의 훈련으로 고래와 돌고래들이 좌초되거나 죽는 경우가 많아서 유럽에서는 고래류 서식처 인근 바다에서는 해군 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흑해지중해고래류보존협정(ACCOBAMS)이 맺어졌습니다. 즉, 흑해지중해고래류보존협정 과학위원회에서 흑해와 지중해에서 고래와 돌고래 서식처를 지도에 표기하고, 이렇게 표기된 지역에서는 소나 사용을 자제하기로 나라들 사이에 협약이 맺어진 것이죠.
크레타섬 남부해안 역시 고래류보존협정에 의해 소나 사용금지 구역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크레타섬은 그리스 해안에서 여러 멸종위기 해양동물들이 서식하는 헬레닉 트렌치(Hellenic Trench)로 알려진 구역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해군의 해상훈련시 소나의 사용은 치명적입니다.
그러나 그리스 정부는 이와 같은 흑해지중해고래류보존협정의 결의사항을 무시하고, 초강력 소나를 사용한 해상훈련을 강행함으로써 민부리고래의 집단 좌초 현상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그리스에서는 크레타섬 인근에서 소나의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청원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해군의 해상훈련으로 죽어가는 고래류를 살리기 위한 국제적인 캠페인과 맞물려 많은 이들이 해양포유류의 생존을 위해 해군훈련을 자제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소나 사용 자체 촉구 캠페인 홈페이지는 이곳에 있습니다. 영화배우 피어스 브로스넌도 해군훈련으로부터 고래류를 살리자고 호소하네요. 한국에서도 제주해군기지 공사로 제주도에 약 백여 마리 남아 있는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처 파괴가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특히 해군기지 공사가 완공되고, 지금처럼 제주도 남방 해역에서 미국, 한국, 일본의 대규모 해군합동훈련이 실시된다면 제주도의 고래들은 서식처를 잃고 죽게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국 해역에서 해군의 훈련으로 좌초되어 죽거나 청력을 잃는 고래류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을 쓴 조약골님은 핫핑크돌핀스에서 일하며 핫핑크돌핀스는 고래류 보호운동을 펼치는 조그만 환경운동단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