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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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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화

지난 5일, 새벽 5시 깨어 일어나 콜택시를 불러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경주행 버스를 탔다. 새벽 공기 역시 쌀쌀했다.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대기 중인 셔틀버스에 올라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도로를 겨우 뚫고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광장 앞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와보는 마라톤대회 현장은 새벽같이 깨어 일어나 모인 수많은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너무 추워서 나는 무료시식 커피를 마셨다. 남편은 옷을 가볍게 하고 번호표를 붙이고 칩을 달고 1만 여명의 대회 참가자들이 모여든 출발점에 섰다.

신라 천년의 숨결이 흐르는 경주. 벚꽃의 절정기인 4월에 개최되는 경주벚꽃마라톤대회는 이번이 제23회란다. 달리기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나는 마라톤대회 현장에 와 보는 것조차 처음이다. 남편 역시 생애 처음으로 마라톤대회에 참가자로 왔다. 현장은 생각보다 신선했다.

아... 이런 세계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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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화

경주시와 요미우리 신문의 주최와 경주시체육회 주관으로 개최한 마라톤의 참가 부문은 풀코스(42.195km), 하프코스(21.975km) 10킬로 단축코스, 5km 건강달리기 10km/5km 일본인 걷기 등으로 구성되었다.

남편이야 건강을 위해 그리고 새로운 분야에의 도전 정신으로 참가한 달리기지만 시상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시상은 풀코스 1위는 60만 원, 2위 50만 원, 3위 40만 원의 순위로 20위까지 있고 10km는 1등이 40만 원, 2등 30만 원, 3등 20만 원 등으로 잘 뛰는 사람들은 상금에도 도전해 볼만 하겠다. 하지만 초보 러너인 남편은 참가에 의미를 두었다.

벚꽃이 절정을 이룬 4월의 이른 아침.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광장에는 해일처럼 방방곡곡에서 모여 든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거로구나 생각했다. 사람들은 펄떡이는,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신선하고 생동감으로 넘쳐흘렀고 건강한 기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라톤…, 이런 세계도 있구나.

.. 이색 풍경...멋지십니다~
..이색 풍경...멋지십니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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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화

행사장은 사회자의 안내로 식전 행사 순서를 가졌고 곧 풀코스 하프코스 10km코스, 5km코스 등등의 순서로 스타트를 끊었다. 대회 참가자들은 자신이 참가한 분야에서 차례로 길고 긴 띠를 이루며 달려 나갔다. 퍽이나 다양한 풍경이었다.

남편이 참가한 10km는 6300여 명이 참가하였고 풀코스 하프코스 다음으로 달려 나갔다. 나는 앞으로 달려가는 남편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파도처럼 술렁이는 인파 속에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곧 수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10km와 5km 달리기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는 단체 참가자들도 많았다. 대학교 현수막을 들고 달리는 수십 명의 학생들도 있고 회사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도 있고 귀신 잡는 해병대들도 있었다. 교회에서 단체로 참가하거나 어린 아이들 손잡고 온 젊은 부부들도 있고 젊은 연인들도 있고 다양한 풍경들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출발점에서 달려 나간 사람들이 결승점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힘든 달리기를 하고 결승점에 다다르자 벅찬 기쁨과 환희의 웃음과 함께 두 팔을 높이 쳐들고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편이 오는 모습

나는 남편이 오는 모습 놓칠세라 잘 보이는 장소를 골라 고개를 내빼고 발돋움을 하면서 달려오는 사람들 속에서 남편 모습을 찾았다. 눈이 시리고 아프도록 보고 또 보았다. 저 먼데까지 시선을 두고 높이 발돋움하면서. 출발한 지 한 시간이 넘었으니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회색 머리띠를 이마에 두르고 연두색 등산티를 입고 하늘색 조끼를 입은 모습이 보일까 발돋움하고 서서 눈을 크게 떴다.

드디어 남편모습이 보였다. 차츰차츰 가까워졌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표정과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결승점에 들어섰을 때 그는 두 팔을 높이 쳐들었다. 우리는 마주보며 손바닥을 마주치며 완주를 축하했다.

"어땠어요?"
"응. 평소와 똑같이 달렸어요. 사람들은 언덕길을 만나자 멈추거나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오히려 오르막길을 치고 올라가서 끝까지 평상시 속도로 달렸어요."
"와~ 잘했어요. 대단해요!"

경주벚꽃마라톤대회... 10km 완주하고 달려오는 모습....^^
경주벚꽃마라톤대회...10km 완주하고 달려오는 모습....^^ ⓒ 이명화

대회 기록은 평상시 달리기 시간과 똑같았다. 1시간 20분. 달리기를 담쌓고 수십 년을 살아왔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결심하고 달리기 시작하더니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수개월 동안 꾸준하게 달리기 연습을 해 온 남편이었다. 그리고 평상시의 속도로 완주했다. 등수와 상관없이.

뒤늦게 달리기를 시작하고 또 마라톤까지 참가할 줄은 전엔 예상 못했던 일이었다. 새로운 도전이고 이색경험이었다. 나는 그저 남편 응원 차원에서 함께 동행한 것이지만 마라톤이 새삼 경이로운 운동 종목이라는 것을 간접 경험한 시간이었다.

달리기가 매력적인 운동종목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었던 것은 예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회고록을 읽고서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로 살기로 결정하면서 시작했던 달리기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읽고 쓰고 달리는 그는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쓰기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신체가 나에게 허락하는 한 가령 꼬부랑 영감이 되어도, 가령 주위 사람들이 '무라카미씨, 이제 슬슬 달리는 것은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제 나이도 먹었고"라고 충고해도 아마도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달릴 것이다. 설령 기록이 더 떨어진다 해도 나는 아무튼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다는 목표를 향해서 예전과 같이 때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많은-노력을 계속해 갈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의 나의 성격인 것이다. 전갈이 쏘는 것처럼, 매미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연어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원앙이 서로를 갈구하는 것처럼, 그것이 나에게 있어 그리고 이 책에 있어서 하나의 결론이 될지도 모른다."(p. 227)

구경꾼보다는 '달리는 사람'

완주한 남편은 옷을 갈아입고 칩을 반납했다. 우리는 행사장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를 마시고 국수를 먹고 도토리묵을 먹고 구운 계란을 먹었다. 마라톤도 재미있지만 소풍 나온 것처럼 잔디밭에 앉아 맛난 걸 먹으며 보내는 시간도 즐거웠다. 남편은 내년에도 꼭 참석하자고 했다.

나는 5km라도 도전해봐야 할 것 같다. 구경꾼보다는 달리는 사람으로 거기 있어야겠다. 그때까지 맘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남편 역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할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번 시작하면 꾸준히 하는 성정으로 봐서는 특히 요즘 달리기에 중독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내년 후 내년에도 계속하지 않을까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계속 달려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달리는 것을 그만 둘 수는 없다. 매일 달리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 둘 이유라면 대형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일 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115쪽)

이제 우린 행사장을 빠져나와 자전거 대여점에서 두 대의 자전거를 빌려 경주 보문호수 산책길을 따라 자전거 산책을 하였다. 경주의 봄도 벚꽃도 절정이었다. 자전거 산책 후 순두부찌게와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신라 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경주의 4월에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벚꽃 길을 걷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즐거운 한때였다.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양산행 버스표를 끊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봄의 절정인 4월에 경주벚꽃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난 구경하고) 벚꽃 강변길 따라 오붓한 데이트도 하고 두루두루 좋은 시간이었다. 즐거운 피로가 몰려왔다.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서 한참을 정신없이 졸다보니 양산에 도착했다.




#경주벚꽃마라톤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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