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노인이 된 아버지와 더불어 소와 관련된 추억을 이야기하던 중에 '전국시대 백락(伯樂)의 고사'를 들려 드리며, 소에 관한 한 아버지는 백락에 버금가는 분이라고 했더니, 흐뭇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다.
아버지는 소를 대할 때 여느 가축과는 달리 대접했다. 소는 영혼이 있는 영물이라며 존중했다. 아버지가 소에게 쟁기를 채워 논밭을 갈거나, 소달구지를 끌면서 소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그때의 소는 동물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객체로 보였다.
때로는 달래가며 때로는 이놈저놈하고 어르면서 소를 능숙하게 다루었다. 아버지는 소가 원하는 것을 알아주었고, 소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듯 했다. 아버지와 소는 궁합이 잘 맞는 친구였다.
이렇게 마음을 다해 잘해 주었으므로 우리 집의 소들은 아프지 않고 먹이도 잘 먹고 잘 자랐다. 그리고 비리비리하거나 약간 병든 소도 우리 집에 오게 되면 잘 나았다. 그래서 불과 서너달이면 털에 기름끼가 자르르 흐르고 엉덩이 살이 투실투실한 일등급 한우로 탈바꿈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외양간은 늘 만원이었고, 덕분에 나는 싫든 좋든 소와 더불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도수장에 인도할 때까지 몇 달 동안 무얼 먹이고 어떻게 키워서 살진 소로 만들 건지 등의 소의 비육(肥肉)에 관한 전체적인 계획은 아버지 머릿속에 있었을 것이다. 우선 형이나 내가 할 일은 그 소들을 데리고 벌판으로 나가 풀을 뜯게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무조건 소를 데리고 싱싱한 풀이 있는 곳으로 나가야 했다. 소도 종일 외양간 안에서 답답했는지 나를 무척 반겼다. 소는 싱싱한 풀을 좋아한다. 풀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풀을 다 먹는 것은 아니다. 소가 먹어도 되는 풀이 있고, 먹어서는 안 되는 풀이 있었다.
보통은 소 스스로가 먹어서는 안 되는 풀을 냄새로 가릴 줄 알았다. 하지만 먹어서는 안 되는 풀이라도 냄새가 없으면 가리지 못하고 먹으려 했다. 그럴 때는 소몰이가 고삐를 당겨 제지해야 한다.
그러나 독성이 있는 풀들이 찾기 쉽게 구분돼 있는 게 아니었다. 대개는 좋은 풀이 있는 곳에 먹어서는 안 되는 풀이 조금씩 섞여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소몰이들은 소가 무엇을 먹는지 늘 신경을 써야 한다.
소가 좋아하는 풀은 바라구풀, 독새기, 토끼풀, 쇠비듬, 명아주, 돼지풀, 쇠뜨기, 담배초 등이 있다. 그리고 씀바귀 종류는 먹어도 탈은 나지 않지만 그 쓴맛에 먹기 싫어했다. 반면에 애기똥풀은 절대로 먹여서는 안 되는 풀이었다.
아무거나 잘 먹고 웬만하면 배탈이 나지 않는 돼지와는 달리 소는 먹이에 있어서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하다. 소가 먹이를 먹을 때 우적우적 대충 풀을 뜯어 씹는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씀바귀 잎처럼 싫어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섞여 입속으로 들어가면 긴 혀를 이용하여 솎아 내거나 삼킨 것을 도로 게워 내곤 한다.
애기똥풀을 소가 먹으면 바로 설사를 했다. 소가 설사를 하면 보통 큰일이 아니다. 그 즉시 아버지에 의해서 집안의 모든 업무가 중단되고, 비상사태가 선언된다. 치료 후에 반드시 따르게 되는 원인 규명을 위한 수사의 칼끝은 항상 우리 형제를 향하여 겨눠진다. 소를 뜯길 때 옆에서 지켜보지 않고 딴 짓을 했다는 것이다.
애기똥풀은 국화잎이나 쑥처럼 생겼는데 줄기를 꺾으면 아기똥색갈의 샛노란 즙액이 나온다. 이 즙액이 한방에서는 무좀약이 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에겐 무서운 적일 뿐 이었다. 꽃이 필 정도로 성장하면 옆에만 가도 고약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소가 알아서 먹지 않지만, 어린 싹은 아직 냄새가 안 나기에 무심코 먹기 쉽다. 그래서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소가 먹어서는 안 되는 풀을 먹지 않게 하면서 좋은 풀로만 배를 채우게 하려면, 고삐를 바투 쥐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소가 좋아하는 풀만을 찾아다니면 된다. 하지만 그래서는 나는 온 종일 소에게 매이게 되고, 아울러 소몰이의 로망이 사라져버린다.
모름지기 소몰이의 매력은 소를 한곳에 매어 놓고 우리끼리 즐기는 딴짓에 있다. 소들을 좋은 풀이 많으면서도 주변에 큰 나무가 없어 줄이 꼬일 염려가 없고, 절벽이나 급경사가 아닌 안전한 곳, 반드시 콩밭이나, 고구마밭 같은 농작물을 피한 곳. 이런 곳이 소를 매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다.
거의 같은 시간에 소를 몰고 나온 동네 친구들은 각자 신속하게 평소 파악해 둔 나만의 장소에 소를 매어 두고 우리는 한적하고 후미진 계곡에 모인다. 그곳에서 우리는 소몰이들만의 행복한 파티를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구슬치기나 딱지 따먹기를 했다. 놀이가 끝나면 우리는 점심을 보리밥 한 그릇으로 때운 허기진 시장기를 달래야 했다. 간식은 각자 집에서 숨겨 가지고 나온 고구마나 옥수수였다.
우리는 양철판을 네모나게 자른 조각을 석쇠삼아 불에 올려 고구마를 넓적하게 썰어 얹어서 고구마 철판구이를 해 먹거나, 잉걸불이 타고 남은 재속에 옥수수를 넣어 노릇하게 구워 먹기도 했다. 계절에 따라 덜익은 밀이나, 보리, 콩 등을 베어다가 불에 끄슬러 비벼 먹는 서리도 맛있지만, 개구리를 잡아 살이 통통하게 오른 뒷다리를 구워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은 아주 별미였다.
그렇게 소를 핑계로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것도 잠깐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공기 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소가 좋아하는 좋은 풀들이 지천이던 여름이 가고 시나브로 세월이 흘러 가을이 온다. 이제 벌판의 풀들도 꽃이 지고 제 각각 씨앗을 맺어 억세어진다. 소가 먹을 연한 풀들이 사라지는 계절이다. 이제 소는 우리들과의 즐거운 소풍을 끝내고 외양간으로 들어 가야한다. 먹이도 생풀을 졸업하고 여물을 먹기 때문에 1주일에 한두 번 외양간을 청소할 때 말고는 밖으로 나올 일이 없다.
사실 지금부터가 소 사육의 절정기다. 다른 집과는 차별화된 아버지만의 사육 방식이 빛을 발한다. 아버지는 이때를 위해 준비해 둔 온갖 영양가있는 사료를 소에게 먹이는 것이다. 먼저, 고구마 줄기, 콩잎과 콩깍지, 연한 옥수수대를 작두로 잘게 썰어서 볏집에 섞어 가마솥에 삶는다.
아버지는 가마솥의 여물이 한번 끓으면 뚜경을 열고 쌀겨와 메주콩을 듬뿍 퍼 넣고 잘 저어 한참을 더 끓인다. 이때 아버지는 쌀겨와 콩 뿐만 아니라 자잘한 고구마나 밀기울, 싸래기 등 사람이 먹기에도 충분할 정도의 양식을 아낌없이 여물솥에 넣곤 했다. 그럴 때마다 소가 사람보다 중하냐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들려오지만 아버지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공부하거나 책을 읽다가 가끔 소들이 궁금해서 외양간을 들여다보면 좁은 공간에 소의 콧김이 자욱하다. 그것은 마치 안개가 낀 듯하다. 어둠속에 대고 얼룩아! 누렁아! 불러본다. 소들은 내 목소리가 반가운지 워낭을 세차게 흔들며 나를 향해 콧김을 더 세게 불어 준다. 소의 콧김이 풍성해지는 것은 공기가 차가워진 탓이다. 나에게 가을은 소의 콧김에서부터 온다. 찬바람이 불고 건장산 산태나무 잎이 붉게 물들면 가을이 깊어진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추석 명절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