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이 60년대 후반 TV매체를 통해 지구촌 사람들이 상호공존 속 인종과 국경을 넘어 어떤 소통방식을 통해 인류공동체를 구현하려 했는지 알아보자 - 기자 말 60년대 세계격변기에 꽃핀 '비디오아트'
1960년대 냉전의 와중 독일과 일본은 경제부흥을 이뤘고 미국은 대량소비사회로 들어서 각 가정에 TV가 90% 보급돼 미국대선에서도 TV논쟁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미디어환경 속에서 백남준은 'TV가 캔버스'라며 '비디오아트'를 선보인다.
유럽에서는 68년 20세기의 분수령이 된 '5월 혁명(Mai 68)'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미디어의 발달로 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인가. 이 결과로 권력을 쟁취하진 못했지만 프랑스에선 대학 운영에서 교수와 학생이 반반씩 참여하는 교육민주화를 이뤘고, 노동계도 보다 개선된 최저임금보장 등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68혁명은 주동자 없는 시위로 정치보다는 성 혁명이었고 삶을 바꾸는 문화혁명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50년대 호황으로 여성의 대학진학이 높아져 60년대 사회진출이 많아졌다. 그리고 기존 결혼에 저항해 독신 여성이 급증했고 이혼율도 높다졌다. 피임약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동성애 등 성의 금기도 많이 깨졌다.
68년 당시 "금지를 금지하라" "상상력에게 모든 권력을" "행복을 사지 말고 쟁취하라" "선거는 아무것도 못 바꾸니 투쟁은 계속된다" "바리케이드는 거리를 막지만 새 시대를 연다" 등 기발한 표어가 난무했다. 그 시절은 암울했으나 문화는 풍요로웠다.
1969년 미국에서는 TV전성시대를 맞아 베트남 전쟁의 참상이 안방에까지 전해지면서 반전운동은 극에 달한다. 반면 그해 7월 20일에는 미국의 우주비행사가 인류최초로 달에 착륙하여 첨단우주과학의 승전보를 알리는 인류역사의 신기원을 이룬다.
1960년대 백남준의 실험적이고 전위적 전자아트는 이런 유럽의 68혁명과 미국의 과학혁명이라는 맥락에서 태어난 것이다. 휘트니미술관이 편저한 <미국의 세기(The American Century, 1950-2000)>를 보면 "비디오아트는 60년대 미국의 반체제문화 속 세 가지 경향 즉 뉴 테크놀로지 통해 확장된 지식에 대한 유토피아적 욕망과 반전운동과 주류텔레비전의 제도적 권위에 대한 반항심에서 태어났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백남준은 1970년에 발표한 '종이 없는 사회(the paperless society)'라는 글에서 "철학이 수세기동안 유지해왔던 헤게모니를 되찾으려면 양피지 문헌학 대신 지금 같은 전자공학상황(모니터)으로 노출돼야 한다"며 오늘날 인터넷신문을 예고했다.
백남준과 미디어이론가 마셜 맥루한
백남준은 1967년 <신동아> 12월 호에 '전자와 예술과 비빔밥'이라는 제목으로 60년대를 읽은데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인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 '노버트 위너'와 미디어의 권위자 '마셜 맥루한'을 한국독자에게 소개한다. 지난번 기사에서 위너는 길게 맥루한은 짧게 소개했지만 이번엔 맥루한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마셜 맥루한(M. McLuhan 1911-1980)은 캐나다출신의 언어학자, 미디어학자로 우리시대 고전이 된 <미디어의 이해>를 1965년에 냈고, 그의 탁월한 미디어이론은 정보기술혁명시대의 앞길을 예견해 단번에 그를 세계적 명사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의 저서에서 맥루한은 '지구촌'이란 처음 말을 썼고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도 했다. 이는 미디어가 그걸 만든 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회를 반영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미디어와 그 기술은 '인간의 확장'내지 눈·코·귀 같은 '인간신체의 확장' 혹은 '우리자신의 확장'과 '우리의 감각·사고·기억을 확장한다"고 봤다.
맥루한은 언어학자답게 히틀러를 독일영웅으로 만든 보다 집중적인 라디오는 '뜨거운 미디어'로, 산만한 TV는 '차가운 미디어'라고 명명하며 미디어를 분류했다. 또 그는 인류역사를 '구어문화·필사문화·인쇄문화·전자문화'로 구분하면서 전자시대에는 지구촌이 미디어로 하나의 부족이나 공동체가 되는 시대가 된다고 예언하기도 했다.
TV와 비디오 등 뉴미디어 시대 도래
백남준은 그의 연구가인 리비어와 인터뷰에서 "진실로 난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다시 말해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실험미술에 도전하고 싶다는 뜻인데 마침 뉴욕 보니노갤러리가 운 좋게 그를 받아줘 1965년부터 1974년까지 당시로는 상업성이 없는 실험미술인 전자예술(Electronic Art)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영화, 사진 등 올드미디어가 아닌 텔레비전, 비디오 등 뉴미디어로 주류미술계를 능가해 인류문화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창조적 매체가 될 수 있음을 알린다. 이런 미디어아트는 훗날 '모바일아트', '네온(빛)아트', '레이저아트'로 발전된다.
백남준은 "비디오는 한번 찍히면 죽을 수가 없다"며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예술세계를 열어놓았다. 그래서 일회성 퍼포먼스 같은 시간예술도 영속화할 수 있었고 시차반영을 통해 시간을 무한정 연기하거나 보존하거나 분리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 자신이 이런 극단적인 것을 좋아하는 건 "중심만 보려는 농업중심의 중국과 달리 선사시대부터 우랄 알타이와 시베리아에서 네팔, 한반도, 라플란드 등에까지 말을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더 멀리 있는 지평선을 보려고 한 유목중심의 몽골 유전자 때문이다"이라고 좀 엉뚱하고 재미있는 의견을 내놓았다.
1969년에 백남준은 하워드와이즈갤러리에서 '창조적 매체로서 TV'라는 제목으로 무어만과 함께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브라'도 공연했고 또한 관객이 TV앞에 설치한 카메라로 자신을 비춰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미지를 관객이 직접 조절할 수 있게 하는 '참여TV'도 선보인다. 날로 그의 예술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갔고 결국에는 이를 증명하듯 미국에서 처음으로 그의 '참여TV'가 팔려나갔다.
시대를 성찰하고 문명도 비평하는 TV
앞에서 언급한대로 맥루한은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으로 봤다면 백남준은 TV를 오감을 갖춘 인간의 연장으로 봤다. 백남준에게 TV는 회화이자 조각이고, 언어이자 기호이었고 또한 한 시대를 성찰하고 문명도 비평하는 지성인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예술이란 원래 물질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아닌가. 백남준은 TV를 오브제가 아니라 신경계가 작동하고 혈액이 순환하는 생명체로 봤기에 거기에 기와 혼을 불어넣어 그런 기계마저도 사람과 하모니를 이루는 이상적 세계를 꿈꾸었다.
백남준은 또 전자예술을 기술을 쓰되 기술에 예속되지 않는 '반기술적 기술'방식과 미디어 사이의 경계를 넘는 인터미디어 방식 그리고 비선형적인 사이버네틱스이론으로 결합한 방향으로 진화시켜나갔다. 그러면서 TV가 돈벌이로만 악용되자 "TV가 우리 삶을 공격할 때 이젠 우리가 거기에 반격할 차례다"며 이에 반발했다.
비디오합성기, 비디오아트에 날개 달아주다
1969년 백남준은 록펠러재단과 보스턴공영방송(WGBH-TV)의 지원을 받아 9년에 걸려 '영상마술사'라 불리는 비디오합성기 신디사이저(Paik-Abe Video Synthesizer for WNET TV Channel 13, 미국 MIT소장)를 아베(1932-)와 공동 개발한다.
백남준이 이를 발명하는 지난한 노력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달마의 고행에 비유했을까. 달마가 9년 동안 부동한 자세로 좌선하느라 배설물이 다리를 녹여 좌상의 부처가 되었듯 자신의 신서사이저 발명도 9년 동안의 'TV 배설물'의 축적이라고 했다.
이는 비디오아트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그 형태와 색채를 무한히 변형시키고 다양한 추상화로 변주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전자터치방식으로 새 이미지를 창조한다기보다는 기존의 이미지를 변형시킨다는 의미가 강하다. 백남준 말대로 "다빈치처럼 정확하고, 피카소처럼 자유롭고, 르누아르처럼 현란하고,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고, 잭슨 폭록처럼 강렬하고,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인" 그림도 다 가능해졌다.
1969년엔 '보스턴공영방송'에서 백남준 외 앨런 카프로 등 6인과 함께 '매체는 매체다(30분)'를 발표해 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걸 증명해보였다. TV방송에서 터부시하는 사회비평이나 에로티시즘까지 다루면서 대중취미가 아닌 보다 예술적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밖에도 '전자오페라 1번' 등을 발표한다.
'비디오(TV) 코뮨', 비디오합성기로 만든 첫 작품
백남준은 '보스턴공영방송'에서 신디사이저를 활용해 드디어 1970년에는 비틀즈, 조지 해리슨 음악과 함께 자막도 없이 통째로 4시간짜리 일본방송 등을 내보내 동서양간 균형감 있게 문화를 주고받은 장을 마련하며 'TV실험을 위한 비디오 코뮨(Video Commune: Beatles from beginning to end_An experiment for TV)을 생방송한다.
여기서 백남준은 전자색채와 피드백도구를 활용해 색채의 폭발력이 가히 초현실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거기에 움직이는(kinetic) 리듬감에 변화무쌍한 추상이미지도 연출해 뉴미디어아트라는 새로운 영역과 그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는다.
문화민주주의자인 백남준은 TV를 처음 만든 사람들이 비록 군사용이거나 정치권력과 경제이득 의도였다 해도 이를 뒤집어, 보다 교육적이고 철학적이고 예술적 도구로 활용해 TV를 인간화시키려 했다. 이를 통해 맥루한처럼 전 인류의 다양한 문화가 보다 평화롭고 평등하게 상호 공존하게 되는 인류공동체를 꿈꾸었다.
백남준이 이런 사고를 하게 된 배경은 그가 어려서 겪은 식민지경험이나 한국전쟁 같은 분단의 아픔을 다른 나라사람이 알 리 없고, 홍콩, 일본, 독일 등에서 유학할 때 체감한 텃세라는 게 결국 국가 간 정보교환의 부족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번역 없이도 소통이 가능한 춤과 음악 같은 콘텐츠가 작품에 단골메뉴로 쓴다.
그러면서 백남준은 공영방송이 오히려 국가주의를 강조해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을 낳고 타문화에 대한 무지로 세계평화를 위협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서구사회의 동양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인해 발생하는 단절과 불통을 가능한 해소하려했다.
이에 대해 1970년 '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공동시장'이라는 글에서도 백남준은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TV공영방송이 자국의 문화만 소개하고 상이한 문화를 알리는데 편협함을 보인다면 세계평화는 위협받을 것이고 […]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패한 것은 근본적으로 아시아에 대한 정보부족에서 온 것이다"이라고 지적한다.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초대관장도 이에 대해 "백남준의 이런 철학은 '해원상생(解寃相生)', 즉 원한을 풀고 서로 살자는 뜻일 것이다. 백남준이 바라는 세상은 세계적 차원의 상호이해, 투명하고 전쟁 없는 사회, 서로 연대하는 사회, 지구촌을 향한 행복한 꿈이 어우러지는 그런 이미지세계는 현대의 만다라 풍경 같다"라고 해석했다.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만우)에서는 2014년의 첫 번째 백남준 전으로 '말에서 크리스토까지'를 연다. 이 전시는 '커뮤니케이션 예술'이라는 새 영역을 개척해나간 백남준 작품을 통해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미디어환경에서 진정한 소통에 대해 고민한 그의 사유를 추적하게 한다.
제1섹션 '말, 마을, 마음'에서는 이동과 통신수단이 분리되지 않던 시대에서부터 백남준이 '전자초고속도로'로 표현한 인터넷시대에 이르기까지 백남준에 의해 변주되는 인류문명의 여정을 알아보고, 제2섹션 '전자 달'에서는 TV라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백남준의 해석과 변형을 엿보게 한다.
백남준은 춤과 음악이라는 비언어적 소통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방송용 비디오작품을 제작하고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비디오공동시장을 주창한다.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소통은 인류가 함께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백남준에게 이는 포기할 수 없는 주제였다.
['달의 변주곡(Variations of the Moon)'] 백남준아트센터 2층에서 2014년 2월 26일(수)-2014년 6월 29일(일) 참여 작가 : 백남준, 다비드 클라르바우트, 료타 쿠와쿠보, 안규철, 안세권, 조소희, 히라키 사와(총7명) 장르 : 사진, 영상, 설치(총18점)
'달의 변주곡'은 삶의 시간성을 다루는 작가를 주로 소개한다. 유래 없는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현대인에게 명상과 관조와 사유의 시간을 제공해주고 또한 시적인 순간을 만나게 한다. 가상의 이미지가 창조한 허구의 시간을 곱씹게 하면서 개인의 생각에 따라 해석되고 이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역시 그런 시간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백남준의 '달은 가장 오래된 TV'이다. 백남준은 이 작품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공간에 재현하는 동시에, 인간의 상상을 달에 투영하던 전자시대 이전의 삶의 풍경과 함께 달의 변화라는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 언어로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안규철 작가의 '하늘 자전거'는 '오래된 TV'를 패러디한 것으로 우주를 자전거에 실고 다니며 시공간을 누빈다.
덧붙이는 글 | 백남준아트센터 (446-905)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백남준아트센터 www.njpartcenter.kr
전시정보 관람시간 : 평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둘째·넷째 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4,000원(1일, 1인 입장료) 학생 2,000원, 학생단체 1,000원(20인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