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하월곡동에 사는 김씨(57)는 출생신고를 하러 서초구청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가족관계등록 공무원이 아이 출생신고 접수를 거부하고, 변호사와 동행하여 가까스로 출생신고서를 접수했으나 접수증 교부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김씨는 악성 민원인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김씨는 미국 시민권자인 조씨(47)와 사실혼 관계에서 딸을 낳았다. 미국에서 출생신고를 하고 미국에서 살다가 조씨와 헤어지고 딸과 함께 몇 년 전에 국내로 입국하여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딸에 대한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학교도 편법으로 다니고 각종 사회보장수급권도 제대로 향유하고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가족관계증명서나 주민등록등본을 통하여 아버지와 딸이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것이 많았다. 국적법에 의하면, 출생당시 아버지나 어머니가 대한민국 국민이면 그 자녀는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다.
미국에서 출생한 김씨의 딸은 미국 법에 의하여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국적법에 의하여 대한민국 국적자이기도 하다.
혼인외의 자, 생모가 출생신고하지 않으면 못하는 것으로 인식'혼인외의 자'란 '부모가 법률상 혼인상태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자녀'를 말한다. 혼인외의 자를 가족관계등록법에 의하여 출생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생모의 도움이 없어서 생부(미혼부)가 겪는 고통은 김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SBS는 지난 4일 방송된 <궁금한 이야기 Y>에서 일명 '유모차남'이라는 미혼부의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혼외자의 경우 친모만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법 규정 때문에 미혼부의 아이는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의 생모는 출산 직후 아이를 맡기고 떠나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아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강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지 않아 기초적인 예방접종도 할 수 없다고 한다.
혼인외의 자, 생부도 인지신고에 갈음하는 출생신고 가능현행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아래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는 혼인외의 출생자는 신고 의무자를 '어머니(생모)'로 규정해 두고 있다. 생모가 신고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생모의 동거친족이나 분만에 관여한 의사·조산사가 대리할 수 있다. 하지만 생모와 연락이 끊어진 경우에는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유전자 검사 등 친자관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현재 상황과는 맞지 않는 것으로 아버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김씨는 이와 같은 불편함을 호소하다가 최근 이혼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혼인외의 자녀에 대한 인지절차를 통하여 딸을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릴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서초구청을 방문했다.
그런데 서초구청 가족관계 담당공무원은 서초구청에는 관할이 없다고 하면서 등록기준지나 주민등록지 구청에서 신고를 하라고 하였고, 이에 김씨와 동행했던 변호사가 현재지인 서초구청에서 신고서를 제출하겠다고 하자 "왜 변호사가 일을 키우려고 하느냐, 다른 구청에 가서 신고를 하라"고 거듭 요구하였고, "서울가정법원에 가서 문의를 하는 것이 빠르다"고 하면서 거듭 신고 접수를 거부하였다.
이에 김씨와 동행한 변호사가 "서울가정법원과 대법원 법원행정처 가족관계등록업무 질의회신 부서 담당자와 전화통화를 한 결과 혼인외의 자에 대한 인지신고에 갈음하는 출생신고를 하고 신고서가 수리되지 않으면 관할 가정법원에 그 처분에 대한 불복을 신청하고 가정법원의 결정을 받아 가족관계등록부를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을 통보받고 서초구청에서 절차를 밟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서초구청에서 신고를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불수리처분을 받아 가족관계등록법 제109조에 의한 불복신청을 하기 위하여 신고서를 제출하려고 하니 신고서를 접수하고 불수리 사유가 있으면 불수리처분을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팀장이라는 공무원은 접수를 받은 담당자에게 "접수를 받고 불수리 처분을 해주라"고 지시하였다. 김씨가 출생신고서를 작성한 후 담당자에게 제출하자 팀장은 담당자에게 "시간을 끌기 위하여 불수리 처분을 바로 하지 말고 질의회신을 넣어서 시간을 끌라"고 김씨 및 김씨와 동행한 변호사가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에 의하여 아버지(생부)가 혼인외의 자녀에 대하여 친생자출생시고를 한 때에는 인지의 효력을 부여하고 있다. 혼인외의 자로서 가족관계등록부가 창설되지 않은 경우에는 인지신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인지신고에 갈음하여 친생자출생신고를 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가족관계등록 예규(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에 대한 출생신고 처리방법 제정, 가족관계등록예규 제108호)'에 의하면, 한국인 남자와 외국인 여자 사이의 출생한 혼인외의 자는 '외국인(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인지절차에 따라 아버지(생부)가 인지신고를 한 다음 자녀가 국적법에 따라 법무부장관에게 신고함으로써 국적을 취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가족관계등록선례 제201002-1호'에 의하더라도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는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사이에도 적용된다. 그렇다면, 김씨의 사례에서도 외국인(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인지절차에 따라 아버지인 김씨가 인지신고를 통하여 가족관계등록부에 자녀를 올릴 수 있다.
가족관계등록 관련 법률과 예규 및 선례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공무원이 신고서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앞서 본 김씨의 사례도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가족관계등록 공무원은 신고서를 접수하였다고 불수리 처분할 수는 있지만, 신고서 접수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 신고서 접수 거부는 명백히 위법하다.
아버지(생부)는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에 의하여 혼인외의 자에 대한 인지(인지신고에 갈음하는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이때 가족관계등록 공무원이 불수리 처분을 하면 가족관계등록법 제109조에 의하여 가정법원에 불복신청을 하고 가정법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 기입 처분을 받아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릴 수 있다.
성 문화가 개방되면서 혼인외의 자가 증가하고 있다. 생모가 출산 직후 사라지거나 출생신고를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초구청과 같은 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률을 개정하지 않거나 현행 법령의 제도를 활용하는 것을 공무원이 사실상 거부할 경우 버려지는 아이는 증가할 것이다. 입양허가제가 도입된 이후 아이를 버리는 사건(베이비 박스 사건 등)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은 당분간 개선된 것 같지 않아 안타깝다.
공무원이 모르면 되는 것도 안되는 것이라는 것을 민원인이 되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관련 법률 규정 :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
제46조(신고의무자) ① 혼인 중 출생자의 출생의 신고는 부 또는 모가 하여야 한다. ②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신고를 하여야 할 사람이 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이 각 호의 순위에 따라 신고를 하여야 한다. 1. 동거하는 친족 2. 분만에 관여한 의사·조산사 또는 그 밖의 사람
제57조(친생자출생의 신고에 의한 인지) 부가 혼인 외의 자녀에 대하여 친생자출생의 신고를 한 때에는 그 신고는 인지의 효력이 있다.
제109조(불복의 신청) ① 등록사건에 관하여 이해관계인은 시·읍·면의 장의 위법 또는 부당한 처분에 대하여 관할 가정법원에 불복의 신청을 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신청을 받은 가정법원은 신청에 관한 서류를 시·읍·면의 장에게 송부하며 그 의견을 구할 수 있다.
제110조(불복신청에 대한 시ㆍ읍ㆍ면의 조치) ① 시·읍·면의 장은 그 신청이 이유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지체 없이 처분을 변경하고 그 취지를 법원과 신청인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② 신청이 이유 없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의견을 붙여 지체 없이 그 서류를 법원에 반환하여야 한다.
제111조(불복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 ① 가정법원은 신청이 이유 없는 때에는 각하하고 이유 있는 때에는 시·읍·면의 장에게 상당한 처분을 명하여야 한다. ② 신청의 각하 또는 처분을 명하는 재판은 결정으로써 하고, 시·읍·면의 장 및 신청인에게 송달하여야 한다.
|
덧붙이는 글 | 패밀리 타임스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