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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초등학교 1~2학년 중 희망하는 모든 아이들은 방과후 초등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맞벌이·저소득층 아이들이 방과 후 방치돼 사건·사고에 노출되는 것을 막고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의 성장과 발육을 돕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시행 한 달이 되도록 제대로 된 프로그램·시설·인력이 갖춰지지 않고 있어 일선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선 "준비없이 졸속 시행되는 바람에 재앙이 되고 있다"는 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돌봄교실이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이전의 돌봄과 2014년 돌봄의 차이는 무엇이고 올해 돌봄교실의 문제가 무엇인지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 보는 토론회가 지난 12일 서울시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발제자 및 토론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준비 안 된 돌봄을 전면무상이라는 미명하에 밀어붙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라며 제대로 된 돌봄을 위해서는 "예산 확보 또는 확보된 예산만큼 먼저 시행해야 하고, 현장과 상시적 소통 공간이 마련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충분한 검토와 준비 후에 시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영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서울지부 수석부지부장은 2014년 돌봄의 문제점으로 첫째, 어린 아이들에게 큰 고통이 되고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좁은 공간에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된 프로그램 없이 장시간 있어야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며 정신건강에도 문제가 될 수 있고, 시판도시락과 배달음식으로 장기간 식사를 할 수밖에 없어 아이들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고, 안전사고가 났을 경우 강사 1명이 25명을 돌보는 조건에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상처가 심해질 수 있다고 문제점을 나열했다.

일반 교실을 돌봄교실로 사용하는 겸용교실일 경우 책걸상으로 인해 교실 절반의 공간을 25명이 이용해야 하며 초등 저학년의 특성상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다칠 우려가 있고, 돌봄교실 이용 아동의 개인 사물함이 없어 책가방 등 소지품을 둘 공간이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하였다.

둘째, 학부모의 부담이 증가되었다고 했다. 2013년 월 6만 원으로 간식비, 교재비, 재료비, 수리비, 현장학습비, 보조강사 인건비, 특별활동 강사비 등이 모두 충당이 되었으나, 2014년은 간식비 3만원 + 방과후 프로그램비 3만원(1과목 기준)으로 현장학습이나 특별활동 등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에는 보조인력이 있어서 학부모 시간에 맞춰 상담을 할 수 있었으나 올해는 상담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고 했다.

셋째, 돌봄전담사 아닌 고통전담사로 전락되었다고 했다. 1교 1전담으로 기존 2~4명이 하던 행정업무를 1명이 담당해야 하며 겸용교실 업무까지 떠맡아야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방적인 근무시간 변경(11~20시)으로 퇴근이 늦어짐으로 인해 돌봄강사 본인의 어린 자녀 돌봄에 대한 대책이 없고 별도의 비용을 지출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

수시로 바뀌는 돌봄 지침으로 인해 쏟아지는 학부모 민원을 해결해야 하며, 25명의 아이들을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혼자서 돌봐야하는 상황에서 화장실조차 갈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야간 수당이 없어짐으로 인해 실질임금이 하락되었고, 겸용교실의 경우 교실 사용문제로 정규직 교사와의 갈등이 발생하고 있고 매일 책걸상을 돌봄을 위해 한곳으로 밀어두었다가 다시 원위치 시켜야 하는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였다.

넷째, 학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겸용교실의 경우 기존 반 아이들의 특성에 맞게 활용하기 힘들어져 환경미화, 학습 결과물 등 훼손이 우려되고, 정규직 교사의 경우 수업 끝남과 동시에 교실을 비워야하므로 다음날 수업준비, 학부모 상담 등 별도의 대책이 없을 경우 각종 업무를 하기 어려운 여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밤늦게까지 돌봄이 운영됨으로 인해 별도의 관리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벽 6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 길동이의 하루

길동이는 새벽 6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돌봄교실을 이용하는 학생이다. 그래서 길동이는 차라리 집이 학교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동시간을 줄여 좀 더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길동이는 집에서 부모가 해주는 따뜻한 한 끼를 먹지 못하고 1주일에 5일은 학교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

길동이도 친구들처럼 아침에 밥 먹고 8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해서 등굣길에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학교에 오고 싶지만 엄마, 아빠가 나를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것을 생각해 투정 한번 부리지 않는다.

아침돌봄선생님, 담임선생님, 오후돌봄선생님, 저녁식사 선생님, 저녁돌봄선생님... 학교에 오면 수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므로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는 길동이는 선생님 얼굴과 이름 익히기에도 너무 바쁘다.

길동이는 11시에 잠든다. 엄마, 아빠와 이야기 나눌 시간은 없고 내일 새벽 6시 30분까지 아침돌봄교실에 참여하기 위해 잠도 깊게 들지 못한다. 착한 아이가 되려면 일찍 일어나야 한다....

황진우 초등학교 교사는 길동이라는 아이를 예로 들며,  "이게 진정한 돌봄인가? 포퓰리즘[Populism]의 논란을 뒤로 밀쳐버리고, 미발달을 지나 발달 훼손까지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사태를 수습할 새로운 돌봄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지역아동센터는 학교의 쓰레기통이 아니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정책위원장은 "초등학교 돌봄교실과 지역아동센너의 연계는 말뿐"이라며,  "오랫동안 운영해왔던 지역아동센터를 그만 두자니 아동들의 요구가 간헐적으로 계속되고 있고, 특히 학교를 부적응하거나 학교 돌봄에서 제외가 된 아동들은 더욱 그 요구를 외면할 수가 없어 시설 운영을 하고 있지만 전망을 잡을 수가 없어 개인적으로 갈등이 매우 크다"고 하였다.

그는 "현재 상황은 학교 돌봄 위주의 정책뿐이고, 지역아동센터는 학교가 어려운 야간 돌봄이나 특수한 어려움을 가진 아동 혹은 학교 부적응 아동에 대한 돌봄 등을 요구받고 있다"며 "그러나 그에 대한 일체의 지원은 없으며 종사자들에게 최저 임금 정도는 보장하라는 복지부의 권고만이 있을 뿐이다. 지역아동센터는 학교의 쓰레기통이 아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초등 볼봄교실인가?

돌봄교실 확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충분한 검토와 준비 없이 2014년부터 초등학교 방과후 돌봄교실을 초등학교 1~2학년 학생 중 희망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문제였다.

학생 수 예측도 빗나갔다. 교육부는 돌봄교실 참여 학생 수를 45만4000명으로 내다봤다. 이는 당시 돌봄교실 참여학생 15만9000여 명의 3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예산 확보되지 않은 졸속 발표였을 뿐만 아니라, 일부 학교에서는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돌봄교실을 열었다. 또한 일부 학교에서는 일반교실과 함께 쓰는 겸용교실을 사용하다보니, 정규수업이 끝난 후 책상을 뒤로 밀어놓고 돌봄교실 학생들을 받고 있다.

또한 성의있는 프로그램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그냥 장시간 학생들을 잡아두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일방행정으로 돌봄교육의 질도 크게 떨어졌다. 아울러 1교 1전담으로 기존 2~4명이 하던 행정업무를 1명이 담당해야하며 겸용교실 업무까지 떠맡아야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돌봄교사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고 행정업무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돌봄교실이 파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돌봄교사 처우가 낮아 질 높은 교육을 보장하기 어렵다. 현재 돌봄교사는 시간 당 6640원을 받는다. 월 120만 원가량이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돌봄교실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 그리고 민원이 쏟아지는 것은, 한 마디로 "교육논리 상실"이다. 정치 논리에 의한 정책 추진 탓에, 붕어 없는 붕어빵처럼 교육이 없는 학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정치 실험실이 아니고 학생은 실험용 쥐가 아님에도, 일선학교에서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급하게, 졸속으로 일방적으로 하향식으로 돌봄교실을 밀어붙이다 보니 온갖 문제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의미 있는 교육 내용도 없이 무작정 어린학생들을 붙잡아 두는 것이 과연 교육이고 돌봄인가? 어린학생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돌봄교실은 혼란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교육당국은 이제라도 문제점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형태 시민기자는 현재 서울시 교육의원입니다. 이와 유사한 글을 서울시의회 공보실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초등돌봄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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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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