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삿포로 맥주박물관엘 가다
오후에도 시티투어 버스를 탔다. 오후 운행 코스의 핵심은 삿포로 맥주박물관과 히츠지가오카 전망대다. 삿포로 맥주박물관은 일본 유일의 맥주박물관이다. 그곳에 가면 일본 맥주의 산업화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다. 히츠지가오카 전망대는 삿포로 남쪽 도요히라구(豊平區)의 끝에 위치하고 있어 북쪽으로 펼쳐진 삿포로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시티투어 버스는 오후 2시 삿포로역을 출발한다. 히가시구(東區) 기타7조에 위치한 삿포로 맥주박물관에 도착하니 오후 2시 20분이다. 차에 내리니 앞에 붉은 벽돌 건물이 나타난다. 1890년 제당공장으로 문을 열었고, 1927년 대일본 맥주회사가 이 건물을 매입해 60년간 맥주 제조공장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삿포로 맥주공장이 삿포로 외곽의 에니와(惠庭)시로 이전하면서 이곳이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건물은 12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홋카이도에서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모방해 홋카이도 유산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1년 홋카이도 지역 역사 문화유산 25건을 홋카이도 유산으로 지정했다.
2003년에는 2차 선정에 들어가 2004년 다시 27건을 홋카이도 유산으로 지정한다. 이때 나에보(苗穂) 지구의 공장·기념관군이 홋카이도 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명치시대 이후 나에보역 인근에 공장과 창고가 지어졌고, 이들이 홋카이도 산업의 역사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삿포로 나에보 지구는 명치시대부터 산업지구로 발전해 왔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대표적인 건물로는 삿포로 맥주박물관 외에 홋카이도 철도기술관, 후쿠야마 양조주식회사, 유키지루시(雪印) 유업역사박물관이 있다. 삿포로 맥주박물관은 붉은 벽돌로 지은 3층 건물이다. 건물 지붕 꼭대기에는 빨간 별이 붙어 있다. 빨간 별은 홋카이도 개척사의 상징인 북극성이다.
우리는 맥주박물관으로 들어가 1시간 동안 내부를 견학하고 맥주를 시음하기도 한다. 이곳은 맥주박물관이어서 삿포로 맥주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맥주병, 포스터, 간판, 구 양조장 및 시설 전체의 미니어처 모형도 등이 보인다. 그리고 실제 맥주 양조에 사용한 용기와 기구도 전시되어 있다. 미니어처가 아주 현대적으로 만들어져 옛 것과 새 것의 대비를 보여준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아내와 나는 스타 홀로 이동한다. 스타 홀은 맥주를 시음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삿포로 클래식, 가이다쿠시 맥주, 무알콜 맥주를 선택해 즐길 수 있다. 나와 아내는 초창기 개척사 시대 만들어진 카이다쿠시 맥주를 마신다. 독특한 맛이다. 맥주 안주로는 홋카이도 치즈가 제공된다. 치즈와 맥주가 참 잘 어울린다. 박물관을 나오기 전 나는 뮤지엄 숍에서 노란 북극성이 들어간 맥주잔 세트를 기념으로 산다.
히츠지가오카 전망대는 어떤 곳인가?
삿포로 맥주박물관을 떠난 투어버스는 이제 도요히라가와(豊平川)를 건너 히츠지가오카 전망대로 향한다. 후쿠즈미(福住) 역을 지나 오후 4시 10분쯤 버스가 전망대에 도착한다. 2월 말인데도 전망대 주변은 온통 눈 천지다. 여러 가지 모양의 눈사람들이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곳이 양의 언덕임을 알려주는 그림과 캐리커처도 눈에 띈다.
전망대는 홋카이도 농업연구센터 부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1945년까지 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양의 종축장으로 사용되었다. 전후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이 지역을 전망대가 있는 관광지로 개발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그래서 1959년부터 삿포로 관광협회가 운영하는 히츠지가오카 전망대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1972년 삿포로에서 제11회 동계 올림픽이 열렸고, 이때 히츠지가오카 전망대가 삿포로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그때 사용한 오스트리아관을 이곳에 옮겨, 전망대가 이국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1976년에는 삿포로의 교육에 기여한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1826-1886) 박사의 동상이 이곳에 세워졌다. 1980년대 들어 이곳에 웨딩 팰리스와 휴게소가 건설되면서 전망대로서의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되었다.
2001년에는 이곳에 눈축제 자료관이 세워진다. 2003년에는 이곳 전망대에서 여름축제를 시작했고, 2004년에는 홋카이도에 니혼 햄 파이터스 야구단이 생긴 것을 기념해 이곳 전망대에 기념비를 설치했다. 기념비에는 개막전에 참가한 니혼 햄의 감독과 선수 손바닥 도장이 찍혀 있다. 그리고 전망대 아래로는 고래 모양의 삿포로 돔구장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2009년에는 전망대 개설 50주년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다.
삿포로 시내를 내려다보며 손으로 뭔가를 가리키는 사람
클라크 박사는 미국의 매사추세츠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괴팅엔 대학에서 식물학, 원예학, 광물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삿포로와 인연을 맺은 것은 매사추세츠 농과대학 교수로 있던 1876년이다. 그는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1년간 삿포로 농업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한다. 그는 1877년 출국했지만 삿포로와 홋카이도의 농업과 교육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라크 박사는 1년 후 학교를 떠나면서 학생들에게 'Boys, be ambitious!'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클라크가 학교 창립기념식에서 이 말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젊은이이여, 야망을 가지라'는 이 문구가, 1960년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회자된 적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젊은이'라는 말은 '제군(諸君)'이라는 일본식 군국주의 용어와 상통하는 점이 있어 그 구호가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삿포로 사람들은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이렇게 대단한 동상을 만들어놓고 있다. 2005년에는 클라크 박사와 이 동상을 설명하는 비문까지 만들어 붙였다. 채 1년도 머물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영향을 끼쳤길래 이렇게 대단한 대접을 하는지 모르겠다. 일본인에게서 볼 수 있는 미국과 유럽에 대한 사대주의 때문은 아닐까?
유키마츠리 자료관을 찾아
더 나가 이곳에는 클라크 교회까지 만들어 놨다. 나는 이 교회 옆에 있는 유키마츠리 자료관으로 간다. 유키마츠리는 일본어로 눈축제를 말한다.
이곳 자료관에는 유명한 삿포로 눈축제와 관련된 자료와 전시물이 있다. 삿포로 눈축제가 1950년에 시작되었으니 2014년이 65회째가 된다. 2014년 삿포로 눈축제는 2월 5일부터 11일까지 오도리 공원을 중심으로 스스키노 지역, 츠도무 행사장에서 열렸다.
그동안 제작되었던 대표적인 눈조각 건물로는 영국박물관, 자금성, 파르테논 신전, 앙코르와트, 이집트 유적, 숭례문 등이 있다. 우리나라 건축물로는 그 외에 백제 왕궁, 대전광역시 시가지 등이 만들어졌다.
숭례문은 한국의 상징이기 때문에, 백제왕궁은 백제와 일본과의 문화교류 때문에, 대전시는 삿포로와 자매도시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눈 건축물을 일본 자위대가 만든다는 사실이다. 홋카이도 사람들은 자위대의 해외 파병에 반대한다고 한다. 그것은 자위대가 홋카이도의 눈 치우는 일을 담당할 뿐 아니라 눈축제 행사의 지원 요원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곳 눈축제 박물관은 2층으로 되어 있다. 2층에 설상모형 전시실이 있고, 1층에 기념품 전시실이 있다. 기념품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고, 포스터, 기념 배지, 패널 등이다.
눈축제 박물관을 나와 나는 잠시 휴게소와 웨딩 팰리스에 들른다. 겨울이라 두 곳 모두 쓸쓸한 편이다. 그렇지만 웨딩 팰리스는 옥상 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다. 그곳에 오르니 히츠지가오카 전망대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눈 쌓인 하얀 언덕 너머로 삿포로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서쪽 모이와야마 스키장 너머로는 해가 서서히 기울고 있다. 오후 5시가 되어 투어버스는 히츠지가오카 전망대를 떠난다.
삿포로에서 라면을 안 먹을 수 없지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우리는 니혼 햄 파이터스 홈구장인 삿포로 돔을 좀 더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었다. 삿포로 돔은 은회색을 띤 건물로 2001년 개장했다. 지상 4층 지하 2층의 돔형 건물로 4만1000개의 좌석에 5만3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돔을 지난 버스는 후쿠즈미역을 지난다. 그리고 도요히라바시(豊平橋)를 건넌 다음 우리를 스스키노 역에 내려준다. 투어버스가 삿포로 역까지 가지만 우리는 스스키노 역 근처 라멘 요코초(橫丁)에서 라면을 먹기 위해 내렸다.
그런데 라멘 요코초를 찾기가 쉽지 않다. 두어 번 물어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라면 골목이 그렇게 길지 않은 편이다. 백화산장(白樺山莊)부터 화룡(華龍)까지 골목 양쪽으로 삼십여 가게가 성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중 한 가게에 들어가 미소라멘과 가리비 라면을 먹었다. 우리 라면보다 기름기가 많고 텁텁한 느낌이다.
저녁을 먹고 나는 근처 백화점에 있는 서점으로 간다. 국내에서는 살 수 없는 책을 사기 위해서다. 일본 작가 다나카 요시키(田中芳樹: 1952-)가 쓴 역사소설로 제목이 <천축열풍록(天竺熱風錄)>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특별한 경험을 한 천축 사절단의 이야기를 그린 통쾌 모험 로망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이 책은 실크로드문화연구소 김규현 소장이 구입을 부탁했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나라 태종(太宗) 황제의 명을 받은 문관 왕현책(王玄策)이 부하 삼십여 명을 이끌고 천축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마가다국이다. 그들의 앞길에는 하늘만큼 높은 히말라야가 우뚝하다. 그 산 사이로 어렵고 험한 길이 놓여 있다.
그들은 수많은 난관과 고난을 이겨내고 간신히 마가다국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훌륭한 왕이 서거하고 왕위 찬탈자에 의해 악정이 행해지고 있었다. 왕현책은 결국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힌다. 그는 탈옥을 결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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