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유성 물감을 떨어뜨려 마블링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다 - 이상옥 디카시 <봄비>지난 금요일 퇴근하고는 토요일 하루 종일 고성집에 칩거하다시피 했다. 취미로 하는 양봉이지만 그 일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에는 벌이 너무 많아져서 내가 감당 못해 벌을 줄이고 나서 월동하면서도 2통이 죽고 겨우 3통만 남아 좀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토요일 집에 있으면서 지난해 마당에 옮겨 심은 단감나무와 무화과, 단풍나무, 소나무, 모과나무, 앵두나무, 자두나무, 석류나무 등에 새순이 싹트는 걸 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지난 가을에 옮겨 심어서 겨울을 거치고 초봄까지만 해도 죽은 듯 있던 것이 봄비가 몇 번 내리고 나니 저마다 다투어 새 생명이 움튼다.
지난 2일 개교기념일 묘목을 사서 심은 살구나무, 엄나무 등에도 새순이 막 돋아나서 더욱 신기하고 기뻤다. 아직 나무 키우는 것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이지만, 그냥 나무가 좋아서 묘목을 사 심은 것뿐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하나도 죽지 않고 옮겨진 상태에서 그냥 뿌리를 내리고 새 생명을 싹틔우는 것이 대견스럽고 경이롭기만한 거다.
얼마 전에 분양 받은 호랑이 사냥개 '라이카'. 이 녀석은 워낙 잘 짖는 개라서 자기 주변에 사람 기척만 있어도 짖어대는 통에 동네에 미안해서 짖을 때마다 좀 조용히 해라고 야단을 친다. 도심지 같으면 키울 수 없을 것 같다. 적막한 시골동네니 예사로 개 짖는 소리가 들려도 그렇거니 하고 이해를 해주니까 좀 나은 편이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담장 건너편에 사시는 할머니가 드디어 오신다. 주인이 계시네요, 하시면서. 나는 깜짝 놀라 라이카 이 녀석 때문이구나, 했다. 그런데 하시는 말씀이, 벌 때문에 무서워서 안 되겠다면서, 벌을 치우라고 한다. 할머니 집벌은 사람을 쏘고 그러지 않아요, 하니까. 낮이 되면 벌이 할머니 집 앞에 많이 나와서 무섭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 집창고 뒤(할머니집 바로 앞)에 빈 벌통에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쌓아둔 빈 벌통에 벌떼가 있다. 이상하다, 빈 통 속의 소비장에 꿀을 먹으러 이웃 벌(주변 대규모 양봉)이 왔나 하고, 자세히 관찰을 해봤다. 그러니 그 빈 통에 엄청 많은 군사의 벌들이 새 둥지를 틀어 살고 있는 것이다.
봄날 도무지 예측조차 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 왔다아마, 벌이 분봉을 하여 들어온 듯하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도 없고. 급히 그 벌들을 마당의 봉군으로 옮겼다. 여왕벌도 아주 좋고, 일벌들도 대군이어서, 갑자기 4통의 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행운이라니.
살다보면, 도무지 예측조차 하지 않는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봄날은 이런저런 희망들로 가득하다. 봄날이 아니면 맞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옆집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여전히 빈 벌통이겠거니, 하고 방치해두었을 텐데.
작년에 벌들이 제법 많을 때 나의 벌도 분봉을 하여 어디로가 사라져버린 경우도 있었다. 벌들은 군사가 많아지면, 작은 집에 다 살 수가 없어, 분가, 즉 분봉을 한다. 이때 분봉한 봉군이 적당한 집을 찾지 못하면 산으로 가서 바위틈 등에서 둥지를 틀어 야생벌이 되기도 한다.
튼실한 새 벌 한 통 생긴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건 역시 나무에 새싹이 돋는 모습을 보는 것. 새 생명이 움트는 것만큼 더 신기하고 감동적인 것이 없는 듯하다. 올해는 봄비가 잦은 것 같다. 토요일에도 하루 내내 벌을 돌보고, 마당을 거닐고, 새싹에게 눈을 맞추고 하다 보니, 하루가 훌쩍 가버린다.
새싹에 눈을 맞추다 보니 하루가 훌쩍 간다다음날 일요일 아침에 봄비가 왔다. 마당의 연못이 갑자기 살아 굼틀거리는 것 같다. 그러니 한 폭의 멋진 그림이 그려진다. 연못을 한참 지켜보다가, 다시 나무 하나 하나에 돋은 새 싹에 한참 눈을 맞추었다.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