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개입을 누가해요, 우리가 범죄잡니까?"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총장에서 강 의원은 벌떡 일어난 채 "우리가 언제 부당한 개입을 합니까, 대표께 우리가 (결정 권한을) 다 위임한 건 우리를 존중하라는 거 아닙니까"라고 외쳤다.
고성이 오간 건 '현역 국회의원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방선거 정당공천에 부당하게 개입할 수 없다. 현역 의원의 정치적 기득권은 결코 보호받을 수 없다'는 당의 결정 때문이다. 하루 전, 기초단체장 후보자자격심사위원회의는 회의를 통해 이 같은 안을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전병헌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개혁 공천 회의에서 기초 선거 공천에 의원이 관여하지 않기로 의견 모았다, 의원이 부당하게 기초 선거 공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박수로 보여드리자..."라며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는 말을 마칠 수가 없었다. 의원들이 격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최규성 의원은 "그걸 어디서 결정했는데 박수로 결정하래"라고 외쳤다. 노영민 의원은 "비공개로 전환하자"라고 제안했다.
생각 밖의 격한 반응에 당황한 전 원내대표는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이 갖는 기득권을 내려놓자는 거..."라고 설명하려 했지만 한 의원은 "뺏어가는 거"라고 소리쳤다. 오영식 의원은 "그런 결정을 의견 수렴도 안 하고 하냐"고 비판했다. "중앙위원회를 구성해 결정하자"는 목소리도 튀어나왔다.
"의원들 손 떼면 개판된다, 현실 잘 모르고 하는 얘기"참다못한 설훈 의원이 공개 발언에 나섰다. 설 의원은 "우리 지구당은 상황을 정리해야 해서, 경선을 통해 정리하기로 했고 지금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과정"이라며 "현 상태에서 의원에게 손 떼라고 하면 상황이 개판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의원들 모두 개혁할 자세를 갖췄다"라며 "(지금) 의원들에게 손 떼라는 건 현실을 잘 모르고 오해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렇다"고 날을 세웠다. 지도부가 '현실 정치'를 잘 모르고, 의원들의 '개혁 의지'를 믿지 못해 내린 결정이라는 일갈이다.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자 김한길 공동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의원의 부당한 공천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자, 이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자 한 의원은 "당연한 걸 왜 박수로 의결하냐"고 퉁을 놨다. 김 대표는 "현역 의원이 기득권을 갖고 줄 세우기 하지 말자는 의지를 밝히자는 게 뭐가 그렇게 잘못됐냐"라며 "여러분은 '의원은 무조건 공천에서 손을 떼라' 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 같은 데 그것과는 다르다"라며 상황을 수습했다.
최종 정리는 박병석 국회부의장이 주도했다. 박 부의장은 "130명 의원은 두 대표를 신뢰해야 하고, 두 대표는 130명 의원을 존중해야 한다"라며 "대표님들이 말씀하신 건 떳떳한 개혁공천을 하자는 말로 이해하고 구체적인 방법은 논의하면 된다, 여기서 논란을 벌이는 건 적절하지 않다, 박수로 동의해달라"라고 요청했다. 의원들은 박수로 동의 뜻을 표했다.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 의원과 악수를 나누며 '사태 수습'의 고마움을 전했다.
의원들이 강력히 반발한 것은 공천심사위의 결정을 "공천에서 의원들은 모두 손 떼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결국 '오해'가 빚은 소동이다. 그러나, 이처럼 작은 오해가 큰 갈등으로 불거진 것은 당내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강기정 의원이 격분한 이유 갈등이 폭발한 사정은 이렇다. 지난 13일 광주지역 의원 5명이 광주시장 선거에 출마한 윤장현 전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을 "지지하겠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상황적 요건'이 직접적으로 작용한 것. 현역 의원들이 나서 안철수 대표 측 후보를 공개 지지함에 따라 '지도부와의 사전 교감'설이 나돌았다. 광주 지역 의원들은 "절대 교감한 게 아니"라며 수습하려 했지만 당 내 기류는 악화되기만 했다.
윤 위원장을 공개 지지한 김동철 의원은 이날 의총에서 "광주는 역사의 고비마다 민주주의를 선도해왔다, 광주 시민들은 지금 광주가 또 다시 모범이 되길 기대한다"라며 "거기에 맞는 후보를 발굴해 광주가, 새정치연합이, 지방자치가 변해야 한다는 그 뜻을 (의원들이)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지도부와 어떤 교감도 없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김 의원의 이 같은 발언 직후 전병헌 원내대표가 '의원들의 부당한 공천 개입 금지' 조항을 박수로 의결하자고 제안하자, 상황이 극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마치 광주 지역 5명 의원들을 향해 '부당한 개입을 했다'는 비판을 제기하는 모양새가 연출됐기 때문이다. 김 의원과 함께 윤장현 위원장을 공개 지지한 강기정 의원이 "누가 부당한 개입을 하냐"고 격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