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이맘 때 즈음 유라시아 횡당여행을 떠났습니다. 변변한 외국어 실력 없이 오롯이 패기 하나로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배낭을 짊어지고 낯선 땅을 돌며 보낸 4개월의 시간은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10여개 국가를 여행했고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늦었지만 서랍 속에 간직했던 묵혀둔 일기장을 공개합니다.- 기자 말
한낮에 도착한 울란우데의 하늘은 흐렸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한 날씨다. 희뿌연 하늘을 닮은 거리는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다. 겨울 나라다운 풍경이다. 하얀 도화지 같은 세상에 색깔 옷을 입은 기차역이 도드라져 보인다. 역 앞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니 마치 봄이 오는 풍경을 담은 듯하다. 스케치북 대신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찰칵"하고 사진을 찍는다.
빙판길서 호랑나비 춤, 거북이 걸음이 되다 숨 가쁜 기차역서 홀로 가방을 짊어지고 우두커니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행객이다. 그때 등 뒤에서 걸어온 러시아 남성이 길을 가로막으며, 묻는다.
"차이나(China)? 재팬(Japan)?" 매번 듣는 똑같은 질문이다. 지금껏 한 번도 '코리아(Korea)'라고 묻는 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서양인의 머릿속엔 동양인은 중국→일본→한국 순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 머릿속 서양인 순서도 미국이 가장 먼저다. 마주한 서양인에게 소리치듯 "코리아"라고 대답했다. 그가 더듬거리며 이번에는 한국어로 응한다.
"오~한국사람. 택시 싸요" 낯선 땅에서 또다시 듣게 된 한국어. 반가운 마음에 귀가 쫑긋해진다. 하지만 가난한 여행객에게 택시는 언감생심. 끈질기게 따라붙는 그를 손사래 치며 어렵사리 뿌리치고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빙판길에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본다. 조심스레 종종걸음을 내딛는다. 긴장하고 걷는데도 몇 차례 중심을 잃고 몸을 휘청거렸다. 우습게도 그럴 때마다 김흥국의 '호랑나비 춤'을 추듯 흐느적거린다. 아무래도 자꾸 혼자 키득대는 게 아드레날린 분비가 과도한 듯하다.
들뜬 기분과 달리 걸음은 거북이 속도다. 인터넷에 소개된 "20분 거리" 숙소까지 40분 가까이 시간을 소요했다. 다행히 길은 헤매지 않았지만 긴장한 탓에 숙소에 도착하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됐다.
숙소는 주택가에 위치한 일반 가정집이다. 초인종을 누르자 인상 좋은 러시아 아낙이 제법 몸집이 큰 개를 동반하고 현관문으로 뛰쳐나왔다. 반갑게 맞아주는 집주인이 고맙다. 집 안에 들어서자 이번엔 집주인 아들이 반긴다. 숙소에 머물고 있던 유일한 여행객 '청(Cheong)'도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홍콩인과 중국인은 다르다? 1층 6인실에 홀로 묵게 됐다. 2층은 홍콩에서 온 '청'이 머물고 있다. 밀린 빨래를 세탁하고 근처 마트에 가 장을 본 후 그와 마주앉았다. 대화를 위해 짐 가방에서 와인을 꺼내 그에게 권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마트에서 산 아껴둔 술이다.
스포츠 머리에 서구적인 이목구비의 청은 "사진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중국과 몽골을 거쳐 사흘 전, 울란우데에 도착했고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란다. 평상시 탐하던 직업의 그가 흥미롭다. 하지만 정작 관심을 끈 것은 딴 이야기다. 내가 먼저 물었다.
"어디서 왔나"
그가 답했다.
"홍콩에서.""아~ 중국 사람이구나.""아니. 난 홍콩 사람이야.""홍콩이 중국 아니니? 1997년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 중국에 반환됐잖아.""물론 그렇지. 하지만 나 그 이전에... 그러니까 아주 어릴 적에 홍콩으로 건너가 자랐어.""중국인과 홍콩인의 차이가 뭐니?""정서가 다르지. 문화 차이도 상당히 크고... 홍콩 사람은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말하지 않아.""특별한 이유가 있니?""오랫동안 서로 다르게 살아왔어. 홍콩은 경제사정도 좋고 사람들 수준도 높아. 중국과는 다르지. 홍콩 사람도 다른 나라 사람과 마찬가지로 중국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대화가 거듭될수록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의 태도가 북한을 향한 나의 태도와 닮은 듯하다. 나도 그처럼 '경제발전이 더디다'는 이유로 북한과 구분 짓기를 원했다.
오버랩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갑자기 "잘 산다"는 이유로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졸부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낯부끄러웠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손가락질했던 존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못 산다"는 이유로 북한과 남한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숱한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코리아"라고 대답하면서 꼭 뒤에 "사우스(South, 남한)"라고 사족을 달았다. 술기운 탓일까? 자꾸만 무거운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잡생각을 훌훌 털어버리기 위해 술잔을 비웠다. 얼굴이 화끈거리다. 술 때문인지 부끄럼 탓인지 모르겠다.
이국땅서 분단된 현실 체감... "씁쓸한 밤이다"중국인을 거부했던 청은 정작 중국 국적 덕분(?)에 무비자로 몽골과 러시아를 여행했단다. 두 나라가 모두 중국과 비자 면제 협정을 체결한 국가란다. 나로서는 러시아 여행을 위해 18만 원의 비자피(visa fee)를 지출했기에 그가 부럽다. 갑자기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는 러시아와의 비자 면제 협정 체결이 원망스럽다.
이야기는 꼬리를 물어 북한 여행으로 이어졌다. 내가 "한국 사람은 북한에 못 간다"라고 말하자 청은 노트북과 핸드폰에 저장돼 있던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모습은 그가 두 차례 북한을 여행하며 찍은 것들이란다.
사각 프레임에 담긴 북한의 모습은 신기했다. 도심을 걷는 북한 사람들, 낯선 북한 용어로 적힌 선전문구와 곳곳에 내걸린 김일성·김정일 그림. 모두 내겐 이색적인 것들뿐이다. 특히 지하철 풍경을 담은 사진은 유독 눈길을 끌었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사진을 감상하는데 청이 물었다.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선뜻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얼버무리듯 "홍콩 사람이 중국인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라고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난 그에게 사진 몇 장을 다운받아 노트북에 저장했다. 그리고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침대에 눕자 취기가 오른다. 술기운 때문인지 자꾸만 청이 보여준 북한의 풍경이 떠오른다. 일기장 끝 부분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제3국가 사람들은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데 한민족의 남·북한은 둘로 나뉘어져 쉽게 여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만약 통일됐다면 부산역서 세계여행을 떠날 수 있었겠지... 분단된 현실이 씁쓸한 밤이다." 덧붙이는 글 | 여행과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오블(http://blog.ohmynews.com/kaos80)에서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