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고 승객을 책임지어야 할 세월호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이 "제자리를 지키세요" 란 말을 남기고는 수 백 명의 승객들을 배에 남겨 둔 채 배를 빠져 나왔다고한다.
학생들은 "객실에서 대기하라"는 선내 방송 때문에 배 밖으로 대피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이 이들은 평소 익숙한 통로를 이용해 탈출에 성공했다.
특히 선장 이씨는 첫 구조선에 몸을 싣고 육지에 도착함으로써 승객이 모두 대피할 때까지 배를 지켜야 하는 선장의 의무를 완전히 저버렸다.
선사의 위기대응 매뉴얼대로라면 선장은 선내에서 총지휘를 맡고 1항사는 현장지휘, 2항사는 응급처치와 구명정 작동, 3항사는 선장을 보좌해 기록·통신 업무를 담당해야 했지만 모두 무시됐다.
반면, 하위직인 사무장과 여 승무원등은 선박 직 직원과는 대조적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의 탈출을 돕다가 유명을 달리했거나 실종됐다.
사무원 박지영(22·여)씨는 구명조끼를 학생에게 양보하고 승객의 대피를 돕다가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왜 구명조끼를 입지 않느냐"는 한 학생의 걱정 어린 물음에 박씨는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 가겠다"고 했지만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사무장 양대홍(45)씨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는 "수협 통장에 돈이 좀 있으니 큰아들 학비 내"라며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한다"며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 양씨는 실종돼 현재 생사가 불투명하다.
사무원 정현선(28·여)씨와 세월호 불꽃놀이 행사 담당 김기웅(28)씨는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었지만 같은 날 세상을 떠나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세월호 사고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선박의 노후와 무리한 증축이 원인이라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20년 가까이 일본에서 운항되다가 2013년 국내로 들여온 세월호는 승객을 더 태우려고 무게를 200톤 이상 늘리는 무리한 개조 작업을 했다. 즉, 무리한 돈벌이가 참사를 불러왔다는 말이다.
20년 넘은 낡은 선박을 돈벌이 위해 무리하게 개조이런 일은 대한민국에서 잊을 만하면 되풀이 되고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그랬다.
1995년, 삼풍백화점 이준 회장은 "제자리를 지켜"라는 지시를 하고 임직원들과 함께 제일 먼저 삼풍백화점을 유유히 빠져 나왔다. 당시 이 회장은 기자들이 "건물이 붕괴되고 있는 걸 알면서도 고객의 대피를 지시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보쇼, 무너진다는 건 손님의 피해도 있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진다는 것이야"라고 답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삼풍이 붕괴된 원인은 부실공사에 이은 무리한 증축이었다. 삼풍백화점 건설 방식은 대들보 없이 슬래브 위에 기둥이 직접 연결된 '플랫슬래브구조' 방식이다. 층과 층 사이의 공간을 넓히고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한 방식이다.
거기에, 지하에 설치 돼야 할 냉각탑을 지하 주차장 확보를 위해 옥상으로 무리하게 끌어 올렸고, 스케이트보드장으로 운영했던 5층을 수익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식당으로 개조하면서 바닥에 온돌을 깔게 됐는데 온돌을 깔기 위해 사용된 콘크리트 양이 무려 30톤 이었다.
백화점은 예고 없이 그냥 무너진 게 아니었다. 몇 달 전 부터 식당가 천장에 금이 가고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고 지반이 기우는 등 붕괴 조짐이 눈에 보였지만 경영진은 이를 무시하고 돈벌이에만 열을 올렸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삼풍백화점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502명, 실종자는 6명, 부상자는 937명이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였다. 재산 피해액은 2700여 억으로 추정되었다.
부실하게 지은 건물, 돈벌이 위해 무리하게 증개축큰 사건에는 늘 예고가 있다. 그 사회 전체 분위기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이 같은 장애 현장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
두 사건은 기묘하게 닮아 있다. 근본 원인이 '돈' 이었다는 점, 거기에 최고 책임자의 비겁이 피해를 눈덩이처럼 키웠다는 점이 닮았다. 돈 벌이가 지상 최고의 목표가 된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맨얼굴이 두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우리사회 지도층 가운데는 뻔뻔하면서 비겁한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리고, 잘못을 저질러도 사과를 하지 않는다.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겁도 없이 선거에 개입하고, 간첩 잡는다며 허위 증거조작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 재벌 총수는 회사 돈을 쌈짓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횡령한다.
우스운 것은, 이렇듯 국가기관이 부정을 저질러도 누가하나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재벌이 아무리 많은 회사 돈을 빼돌려도 휠체어만 타면 풀려난다는 점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더 한심하다. 낯 두껍고 비겁해야 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한말, 을사늑약에 서명을 한 이른바 을사오적들은 그 이후에 일본의 보호를 받으며, 일본의 신민이 되어 잘 살았다. 해방 후, 친일파들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정부 요직을 독차지 했고, 그 후예들은 지금도 대한민국의 지배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동안의 대한민국은 비겁하고 뻔뻔해야 목숨 부지하며 잘 살 수 있는 사회였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이런 모습이, 침몰하는 배에서 수 백 명의 승객을 버려둔 채 제일 먼저 빠져 나오는 선장과 항해사를 만든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