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눈물이 나와 뉴스를 못 보겠다. 너무 가슴이 아파 글도 못 쓰겠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슬프다. 꽃다운 생명을, 눈부신 청춘을 이런 봄날에 눈앞에서 보내는 것이 너무 슬프고 너무 화가 난다.
최악의 사고에 최악의 구조다. 사고 소식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진다. 그런데 구조활동은 차마 눈뜨고 볼 수도 없을 정도다. 새삼 깨닫는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나라에 살고 있었구나. 아이들이 살아 있는 게 운이었구나. 누구도 나의 안전,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었던 것이다.
불행은 갑자기 찾아와 우리의 수준을 묻는다언제나 그렇듯이 불행은 갑자기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에게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물어본다. 불행은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다. 태풍, 폭우, 지진, 쓰나미 등 자연재해는 물론 이번처럼 인공적인 재해도 있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이러한 재해와 불행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어떤 공동체는 불행을 최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공동체를 우리는 선진사회라고 부른다. 사람이 우선인 사회, 사람이 중심인 사회인 것이다.
다른 공동체는 불행을 방치한다.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불행에 놀라고 엄청난 피해에 슬퍼할 뿐이다. 이런 공동체를 우리는 후진사회라고 부른다. 사람이 우선이 아닌 사회인 것이다. 안전을 내팽개친 사회이다.
불행은 있을 수 있지만 부정의는 막아야 한다불행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특히 자연재해는 그렇다. 사회규모가 커지면서 인공재해의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현대사회는 위험사회이므로 자연재해만이 아니라 대형 위험도 품고 살아가야 한다. 조그마한 실수도 대형참사로 이어진다.
하지만 같은 불행이 계속해서 발생한다면 그것은 불행이 아니라 부정의(不正義)이다. 그리고 불행을 최소화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부정의다. 그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참사일 뿐이다.
불행은 그냥 불행일 뿐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불행은 슬픔을 낳을 뿐이다. 그러나 부정의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부정의는 분노를 낳는다. 책임을 묻지 않으면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할 수 없다. 정의를 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책임을 묻지 않으면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이번 사고에서 책임은 두 군데로 모아진다. 선사의 책임이 우선 크다. 정확한 수사결과가 나와 봐야겠지만 지금까지의 사실에 비추어 보면 선장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리고 선박을 부실관리한 선사의 책임도 크다.
그러나 더 큰 분노는 정부로 향한다. 완벽한 대책을 가진 사회나 정부는 없다. 나도 잘 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왕좌왕하는 것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렵다.
선사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정부,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정부, 구조라고 부를 수도 없는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 정부,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과연 묻고 싶다. 지금까지 진실로 최선을 다해 구조작업을 펼쳤는가?
아무런 계획도 대책도 없는, 무능력의 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정부를 가지고 있다는 게 너무 불안하다. 불행은 언제든지 찾아오는 것인데 불행을 불행으로, 그것도 최소한의 불행으로 만들 대책이 없는 것이다. 정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유물론자로 종교를 믿지 않는다. 기도할 줄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부처님의 법력으로, 하느님의 기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살리도록, 세월호를 건져 올리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싶다. 아니 제발 1주일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싶다. 구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해야 하는 이 기막힌 현실이 원망스럽다.
덧붙이는 글 |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지냈으며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