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한데 대통령만 신적인 존재가 되서 국민의 모든 니즈를 충족 시키길 기대하는 게 말도 안 되는 거지…'새누리당의 서울특별시장 선거 예비후보인 정몽준씨의 막내아들이 SNS에 올린 글입니다.이 일로 정몽준씨는 즉시 사과성명을 내고, 고개를 숙여 국민들 앞에 사죄했습니다. 그러나 나라 사람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자기 자신과 상대를 장난삼아 '미개하다' 이르는 '미개 놀이'를 시작했고, 사실상 선거 운동을 중단한 상태에서 벌어진 '자책골'에 새누리당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분노의 당위성은 분명하죠. 자식을 잔인하게 잃은 부모들에게 있을 수 없는 발언 아니겠습니까. 혹자는 글을 올린 주인공의 어린 나이를 애써 강조하더군요. 그러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현재 재수 중인 성인입니다. 언어영역 문제집을 수권씩 풀어제끼고 있을 그에게 '단어 선택이 아직 미숙할 나이'란 말은 핑계에 불과해요. 저건 그냥 잘못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분노를 잠시 접고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저 문장 곳곳엔 흥미로운 구석이 보입니다. 연속극에 나오는 부잣집 아이들 말고, 진짜 이 나라의 '상속자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이 세상을 어떤 틀로 읽는지가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나요. 겨우 한 문장인데도 말입니다.
이는 저 문장 하나만 가지고 '정아무개군'의 사람됨을 짐작해 보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글 자체는 정말 '욱'해서 쓴 것일 수 있어요. 아닌 말로,정아무개군이 쓴 글로 정몽준 후보의 자질을 판단하는 것도 무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식과 부모 생각이 같나요? 훌륭한 부모 아래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하고 다니나, 싶은 경우... 우리 살면서 너무 쉽게 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미개하다'는 표현만큼은 '욱'해서 나올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란 겁니다. 술만 들어가면 '이 나라 사람들은…' 소리부터 뱉는 사람들도 이 나라 사람들 죄다 제정신 아니다, 미성숙하다 소리는 할지 몰라도 '미개하다'는 표현을 쓰는 경우는 별로 없죠. 저 '미개하다'는 말 표현엔 '계급의식'이 녹아 들어 있습니다. 그런 사고가 뿌리깊은 이에게 '그러는 너는 이 나라 국민 아니냐'는 반론은 공격력이 없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인식도 흥미로워요. 틀린 소린 아니죠. 신도 아닌데 어떻게 모든 것을 합니까. 하지만 정아무개군은 저 글에서 '대통령은 신이 아니다'란 말을 하려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고자 한 것은 '모두를 만족 시키길 기대하는' 미개한 국민들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에요.
그의 사고 체계 안에서 대통령은 '권력자'입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저 문장 안에 녹아든 왜곡된 생각은, '비록 신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로 교정돼야 해요. 하지만 손만 뻗으면 가까운 곳에 모든 것이 있는 그에게, 자신의 믿음을 깨고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기회가 과연 있을까요.
세월호 사건은 어느새 이레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린 오열했고, 오열하는 가운데 이 나라의 바닥이란 바닥은 죄다 목격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구급약품을 밀어버리고 라면을 먹는 장관,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려는 공무원들,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 정부, 사실 확인도 제대로 않는 거대 언론들, 그리고 기득권이 뼈에 박힌 이들의 저렴한 사고방식까지. 대한민국이란 배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