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한 지 8일째.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실종자가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생존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전남 진도에서 실종자 구조 작업이 한창이라면 경기 안산에서는 '생존자' 구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난 340명 중 262명이 죽거나 실종된 단원고의 교직원·학생들을 상대로 심리치료 작업이 준비 중인 것이다.
경기도 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고대 안산병원에 입원 중인 단원고 학생 73명에게 병원 측이 우선적으로 심리지원을 하되, 향후 단원고 교사들과 학부모, 재학생들에게는 교육부 산하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가 심리 치료를 전담하기로 했다.
지난 21일 오후,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장을 맡아 치료 준비에 한창인 정운선 경북대 의대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정 교수는 "생존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에 짓눌리지 않도록, 예전처럼 평범하게 생활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느낄 아이들, 보듬어야"
- 앞으로 단원고 생존 학생과 교직원 등을 대상으로 심리 치료를 한다고 들었습니다."예. 지금도 세월호 구조작업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부모님과 학생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해서 감당하기 벅찰 거거든요. 일단 제일 중요한 건 죽음에 근접했다가 돌아온 아이들이 병원에서 신체적인 부분을 점검하는 거고요, 저희들은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와서 다시 원래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엄청난 일을 겪은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와서 인지적인 뇌를 다시 쓰면서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말이죠.
또 교사들은 당장 학생들을 맞이할 때 어떻게 인사 나눌지부터 걱정하는데 그런 것부터 세세하게 알릴 예정입니다. 저희는 앞으로 정신과 전문의 1명, 경기도 Wee(위)센터 선생님 1명씩 짝을 지어 반마다 들어갈 거예요. 이 분들 역량을 키워서 앞으로 오랫동안 아이들을 품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할 일입니다."
- 학부모 요구에 따라 당장 다음 주부터 단원고 수업 정상화가 예정돼 있는데요.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단원고 내 상황은 어떤지, 아이들 복귀 준비는 어떻게 진행 중인지 궁금합니다."일단 학생들은 사고를 크게 겪었기 때문에 학교가 많이 낯설게 느껴질 거예요. 이걸 되도록 원래 모습, 익숙한 공간으로 되돌려 놓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학교 안에 있던 대책본부가 안산교육청으로 옮겨졌지만 학교 안에는 여전히 자원봉사자들이 있고, 4층 강당에는 실종자 가족들도 계세요. 이 분들도 힘드시겠지만 결국 학교가 정상화되는 게 지역사회나 국민들을 위해, 또 무엇보다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현재 학교 곳곳에는 실종 학생들에게 쓴 편지가 가득해요. 또 숨진 학생들 유품도 있고 해서 공간 정리가 필요할 텐데, 이걸 마음대로 해버리면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 있거든요. 생존 학생들과 함께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고 기억이 상기되거나 할 때마다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반응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선생님들과 토론하고 나누고 있습니다. 교사도 그렇지만 학생들도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느낄 텐데, 그걸 어떻게 헤쳐 나갈지가 중요하거든요."
- 학교 강당에는 실종자 가족을 위한 대형 TV가 설치돼 있어, 실시간으로 계속 사고 뉴스가 흘러나옵니다. 재학생 40~50여 명도 여기서 함께 뉴스를 지켜보던데 이런 것도 영향을 미칠까요? "당연하죠. 청소년기 아이들의 뇌는 성장하는 중이고 20대 초반에 완성되기 때문에 아직 뇌 조절 능력이 떨어집니다. 한 마디로 민감한 소재일수록 뇌에 불이 반짝반짝 들어온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동영상이 제일 크게 영향을 미치거든요. 사고 상황과 유가족이 오열하는 모습, 게다가 슬픈 음악을 깔아 감정적으로 만든 뉴스에 아이들이 계속 노출될 경우 사고를 겪지 않은 학생들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걸 '트라우마 리마인드 기능'이라고 하는데 사고를 겪은 학생들은 더더욱 조심해야 해요. 사실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이 사망할 가능성이 있어 사고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건 뭐든 주의해야 합니다. 이건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예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거나 상실감을 느낀 사람들은 뉴스를 보며 예전 기억을 상기할 수 있거든요. 괴로워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보는 건데, 별로 좋지 않아요."
"단원고 교사들에게 '웃어도 괜찮다'고 조언"
- 동료와 학생들을 한꺼번에 잃은 선생님들의 고통도 클 것 같습니다."지금 단원고 선생님 90%가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고 계세요. 어둠을 무서워하고, 밤이 오는 걸 두려워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며칠 사이 너무 큰 일을 겪은 데다 새로운 업무들을 맡으면서 심리적 스트레스가 과한 거예요. 심신이 지쳐 있는 상태인데 아이들은 선생님 얼굴을 보고 좋아지거든요. 때문에 일부러라도 쉬면서 자신을 돌봐야 합니다.
지난주 금요일(18일)에도 선생님들이 제자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 심리 지원을 요청해서 그날 밤 12시까지 울면서 얘기를 나눴어요. 지금 제가 안산에 도착한 게 5일째인데, 첫 날 아예 무표정이었던 데 비하면 웃는 게 좀 편안해지신 것 같아요. 선생님들께 '쉽지는 않겠지만 학생들을 위해 먼저 웃어야 된다, 웃어도 괜찮다, 또 슬플 때는 무작정 참는 것보다 우는 게 더 애도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려드리고 있어요."
- 오늘도 단원고에서 정신건강 문제 대응 교육을 하셨다던데, 어떤 내용이이었나요?"앞으로 재학생·교직원들 상담을 맡을 경기도 Wee센터 교사 30여 명을 대상으로 했고요. 지난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 등 제가 이제껏 위기관리에 개입해 상담한 경험들을 나눴어요. 사실 전문가들도 굉장히 두렵거든요. '내가 저 아이들에게 또 상처 주지 않을까, 내가 먼저 울면 어떡하지' 이런 부분을 준비하실 수 있도록 교육했습니다.
그리고 학부모 교육도 필수적인 게, 아이들은 어려서 회복력이 빠른데 부모들은 성인이라 트라우마가 강하게 각인될 수 있거든요. 일단 고대 안산병원 등에 계신 생존 학생 학부모님을 대상으로 2번 가량 교육을 했고, 앞으로는 선생님들과 상담교사들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도록 교육하고 함께 준비할 겁니다. 23일에도 선생님들 대상으로 그룹면담 등 집단치료와 교육이 진행된다."
-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단원고 고등학교 3학년 친구들은 지금 많이 불안할 거예요. 공부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 입원해 치료 중인 학생들도 살아남은 자로서 죄책감을 느낄 거고요. 그런 아이들이 혼자 있지 않게, 함께 모여 웃을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제일 중요해요. 단원고 교사들에게 쏟아지는 비난도 멈췄으면 좋겠고요. 그 외에도 앞으로 쭉 지켜보면서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심리적 지원뿐 아니라 실제 지원도 하면서 다함께 응원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