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사상사 혹은 철학사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축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말인지 플라톤 자신의 말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통해, 플라톤이 세워놓은 어떤 이론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계승하기도 하고 반박하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또 한 축을 이룩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중세신학의 출발점이었던 그리스도교 최고의 신학자로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영어식으로는 어거스틴)는 플라톤 철학을 밑바탕으로 그의 신학을 세웠고, 중세신학의 완성자로 일컬어지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와는 다르게 아리스토렐레스의 철학을 그의 이론적 근거로 삼았었다.
이러한 양상은 서양사상사와 철학사를 관통하는 흐름이다. 오죽했으면 알프레트 화이트헤드가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했겠는가. 어떻게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도 플라톤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했으니 화이트헤드의 말이 더 일리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플라톤을 극복하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노력 중에는 플라톤의 국가 이론도 포함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전개해 나갔던 플라톤의 국가 이론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주 정교하게 비판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라톤 국가 이론 비판이 그렇게 많은 빛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엽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칼 포퍼의 명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도 분명히 나타나는 바와 같이 플라톤의 국가 이론은 '전체주의' 혹은 '닫힌 사회'로 오용될 소지가 분명히 있었다. 어쩌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라톤 국가 이론 비판은 이것에서부터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플라톤의 국가 이론 자체가 추구하는 통일성이 가장 핵심인 국가 이론을 극복하고자 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이 남긴 수많은 책들 가운데 <국가>를 선택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를 중심 대화인물로 등장시켜서 공유 문제를 논의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에 대한 비판은 국가 전체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플라톤이 제시하는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 '하나의 폴리스'(mia polis)를 구체화하기 위한 장치들에 비판이 집중되고 있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아름다운 나라는 구성원들이 한 사람처럼 된 나라이며, 이것은 처자와 재산 공유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 이 부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유'의 문제점(dyschereia)을 지적함으로써 플라톤이 구상하는 국가의 모델이 어떤 논리적 결함과 비현실적 기획인지를 증명하려고 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정체(politeia) 중 가장 훌륭한 정체가 무엇인지를 고찰하기로 했기에, 다른 정체, 즉, 이른바 좋은 법에 의하여 통치되고 있다는 국가들 중 몇몇이 취하는 정체들과 몇몇 이론가들에 의해 훌륭하다고 주장되고 생각되는 몇몇 정체들도 검토해야 한다."그렇게 출발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내가 읽기에 플라톤에 대한 가장 핵심 비판으로 보이는 말을 한다.
"국가는 다수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사람들(ex eidei anthropôn)로 구성된다. 서로 같은 사람들로 국가가 만들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추구하는 하나로 통일된 국가 이론은 그 자체가 국가를 무너뜨리는 시도라고 비판한다. 즉 하나로 통일된 국가는 가족들이 사는 곳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집에서 가장 권위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움직여지듯이, 이것이 확대된, 현명한 철학자가 다스리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뜻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바로 플라톤이 이상으로 삼았던 하나로 통일된 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좁게는 박근혜로 통일된 국가, 조금 더 확장하면 새누리당으로 대변되는 보수들이 다스리는 통일 국가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라면 이건 국가가 아니라 그냥 박씨 집안일 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울려내는 다양한 이야기와 비판에 재갈을 물리고 오직 한 목소리를 내기를 바라고 오직 한 사람의 목소리만 듣기를 바라는 국가 말이다. 신문사들의 기사도 하나, 방송사들의 뉴스도 하나이기를 원하고 만드는 모습 말이다. 이게 가능하기나 한 말인지 모르겠다.
손석희씨가 진행하는 JTBC방송의 9시 뉴스에서 이종인 대표를 인터뷰한 부분에 대해 방송위원회가 징계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러한 생각들이 떠오른 것이다. 국가, 뭐가 옳은 모습이 자꾸만 모호해지가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