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밑단이 뜯어져 있다. 벌써 며칠 전부터 아이가 바지 밑단을 꿰매 달라 했는데 이제야 생각났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 아이는 중간고사라며 도서관에 갔다. 아이가 아침에 교복을 입다가 깔끔하게 꿰매진 교복을 보면 좋아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가슴 한 편이 서늘해졌다. 우리 아이와 같은 학년인데, 어떤 아이들은 이제 교복을 입을 수가 없다.
'팽목항'이라는 처음 듣는 항구 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 그 배 안에 아이들이 갇혀 있다. 벌써 열흘이 지났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것일까? 불과 두 달 전엔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간 아이들이 체육관 붕괴로 죽거나 다치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작년 여름엔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고등학생들이 교관의 지시를 따르다가 죽는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우리 집 아이도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간다고 했다.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체험학습을 갈 청소년수련장 홈페이지를 찾아서 위험한 시설물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병영체험장이 마음에 걸렸다. 병영체험을 하는 것인지 학교에 전화해서 묻고 싶었지만 망설이다가 하지 못했다. 그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해병대캠프를 앞으로 어떻게 관리 감독하는가에 맞춰져 있었다. 사고가 해병대 캠프에서만 나는 것도 아닌데 해병대 캠프만을 문제 삼는 정부의 태도가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교통시설 안전점검, 국가가 해야하는 당연한 일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한 나는 아이에게 주의를 줬다.
"엄마, 물 쪽으로는 아예 가지도 않는다니까 걱정은 하지도 마." 학교에서 엄마들이 걱정하는 바를 알고 미리 아이들에게 안내한 모양이었다.
"물에 안 가도 위험할 수 있어. 교관들이 시키더라도 위험 한 건 절대 하지 마. 차라리 못하겠다고 해."아이는 내 말을 귀찮아 했다. 아이의 마음은 알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냥 낼 돈 없다고 하고 안 가면 안 될까?""엄마, 그걸 누가 믿어?"아이가 꽥 소리를 지르며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이번 세월호 사고가 나고 정부는 모든 체험학습을 보류 시켰다. 덕분에 우리 집 막내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어 가는 첫 소풍을 못 가게 되었다.
"엄마, 우리 소풍 못 가는 게 그 세월호 선장 아저씨 때문이지?" 막내가 물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도 잘못을 했는데, 그 아저씨만 잘 못한 건 아니야."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소풍을 왜 못 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여객선은 정말 누구나 사용하는 교통시설이다. 이런 가장 기본적인 교통시설의 안전조차 지켜지지 않을 때 국민들의 안전은 보호되기 힘들다. 복지국가, 선진국, OECD 가입, 이런 말들까지 할 필요가 없다. 국가가 있다면, 정부가 있다면, 기본 교통시설의 안전점검은 해야 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과적 단속, 승무원들의 안전 교육, 대피 훈련, 안전시설물을 점검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사고가 절대 나지 말게 하라는 게 아니다. 기본적인 규정을 안 지켜서 생기는 사고는 안 나도록 힘써 달라는 거다.
한 사회의 기본 시설이 안전하지 않으면 학생들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가 1차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런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면 엄마들이 할 일이 많아진다. 학교에서 가는 단체체험학습을 세세히 챙겨보고 위험은 없는지 확인하고 아이들을 조심 시켜야 한다. 엄마들이 그것만 해야 한다면 엄마 노릇 할 만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위험은 곳곳에 있다. 학교 폭력이나 성폭력이나 학업 스트레스 등 곳곳에 아이들을 괴롭히는 위험이 존재한다. 그런데 기본 교통시설의 안전까지 걱정하며 살아가야 한다니...
선령만 연장되지 않았어도, 아이들이...."그냥 부패만 안 됐으면 해요. 딱 한 번이라도 내 새끼 품어주고 보내줘야지, 엄마가 어떻게 그냥 보내."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절규하는 실종자 엄마의 모습을 지켜볼 때 그 슬픔이 내게로 밀려왔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엄마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을까? 진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이 나라에서 엄마가 된 건지 후회가 되었다. 솔직히 이럴 줄은 몰랐다. 이제야 우리 사회의 민얼굴을 보았다.
이렇게 기본 교통시설에 대한 안전 관리 시스템이 잘 안 갖춰진 사회에서 여객선의 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다니, 정말 한참 잘못된 정책이다. 규제를 완화하기 전에 그로 인해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먼저 따져 보아야 했다. 제대로 따져보기나 한 걸까? 만일 그랬다면 선령 연장은 통과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선령을 연장하고 나서 선박사고가 두 배 이상 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제라도 정책을 당장 바꿔야 한다. 관리 감독도 제대로 못 하면서 일본에서는 안 쓰는 노후 배를 가져다가 잘 점검하고 수리해서 쓰겠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그건 정말 우리 능력 밖의 일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공짜가 제일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것을 몰랐나? 선령을 완화하는 규제 개혁이 없었다면 18년 된 세월호는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을 것이며 우리 아이들이 세월호에 갇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무책임한 선장은 비정규직이었다. 선장은 월급 270만 원에 1년 단위 계약직이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비정규직에 선장에게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여객선의 책임을 맡겼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런 노동조건을 고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여객선 참사는 막지 못할 것이다. 대형 여객선의 선원을 정규직으로 바뀌어야 한다. 돈이 없어서 그렇게 못하겠다면 선주가 직접 배의 키를 잡고 승객들과 생사를 같이해야 할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사업주들이 얼마나 많은 수익을 올렸는지는 모르겠다. 그 수익이 얼마가 되더라도 귀한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하다
모든 것을 돈으로 따져서 생각하더라도 지금 세월호 참사로 야기된 경제적 손실은 선령을 연장해서 얻은 이익과 선원들을 비정규직으로 해서 얻은 사업주의 이익을 몇 백 배 몇 백만 배 능가하는 수치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규정들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어서도 아니고 경제규모가 세계 상위권 안에 들어서도 아니고 OECD 가입 국가여서도 아니다. 그냥 국가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다. 국가라면, 정부라면, 이 정도의 관리 감독은 해야 한다. 기본 교통시설의 안전 관리도 못 하는 정부는 국가가 무슨 일을 하려고 존재하나 묻고 싶다.
지금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하다. 그 꿈 많은 아이들에게 우린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그리고 살아남은 우리 아이들은 2014년, 대한민국을 어떤 모습으로 각인할까?
교복을 다 꿰매고 도서관에 간 아이가 언제 오나 궁금해서 카톡창을 열었다. 어느새 아이의 카톡 대문 사진이 노란 리본으로 바꿔있다. 옆에는 "친구야... 집에 가자..."라고 쓰여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