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1일부터 새 도로명 주소가 전면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여전히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국민들이 느끼는 것보다 더 큰 고충으로 하루 하루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집배원 노동자들인데요. 겸배문제 등 새 도로명 주소를 실시하기 이전부터 산적했던 집배원들의 업무 실태에 대해 알아봅니다. [편집자말] |
[기사수정 : 4월 29일 오전 10시 25분] OO우체국 집배원 정OO(46)씨는 올해로 집배경력 17년이 되었다. 그는 17년간 지역의 우체국을 돌며 우편물·택배 등을 분류·적재·운반배달 하는 일을 해왔다.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아주 건강한 청년"으로 집배일을 시작했다는 정씨. 그런 그가 지금 남은 것은 골병뿐이란다. 지난 17년간 정씨에겐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입사 초기에 제가 맡은 집배구역을 숙지하고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우체국 건물 내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일했어요. 업무를 다 처리하려면 새벽 5시~6시부터 일을 시작해도 밤 늦게 끝나기 때문에 집에 갈 시간조차 아까웠죠.사람들은 집배원들이 배달하는 모습만 보니까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을까 싶을 텐데, 우편물을 분류하는 시간도 배달하는 시간만큼 오래 걸리고 힘들어요. 집배인원도 부족하고, 겸배(집배원 결원시 팀원들이 일을 나눠서 하는 시스템)까지 겹치면서 일은 더욱 힘들었죠. 처음에는 '처음이라 그런 거겠지' 생각하고 참았는데, 전혀 나아지질 않더라고요. 저를 더 힘들게 한 건 집배구역 변경이었어요. 17년 동안 13번이나 바뀌었어요. 하나의 집배구역을 숙지하기 위해서는 6개월~1년 정도 걸리는데, 익숙해졌다 싶으면 바뀌는 거죠. 그때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어요. 이렇게 일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교통사고와 과로로 병원신세를 졌어요. 지금은 촤측주관절 외상성 관절염(척골 주두 골극 형석 및 연골 손상)과 요천추만성염좌, 좌측견봉하충돌증후군, 유착성관절막염으로 2번 수술 후 재활치료 중이에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 병을 심각하게 키운 거였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 17년 차가 되었고, 저에게 남은 것은 아픈 몸 뿐이네요."공무상 요양은 하늘에서 별 따기, 우체국 사고 대처 미비 2010년, 이륜차를 타고 배달하던 정씨를 승용차가 교차로에서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이 교통사고로 팔·다리·목 타박상, 찰과상, 관절부 염좌 및 경추 추간판탈추증으로 147일간 입원 및 재활치료를 받았다. 정씨는 사고 후 공무상 요양을 신청하기까지 매우 힘든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당시 공무상 요양 신청을 하려고 아픈 몸으로 필요한 서류를 직접 준비하고 제출해야 했어요. 정말 힘들었죠. 단순한 외상은 준비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경추 추간판탈출증 등 관절부 근골격계 질환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했어요. 현장근로환경과 여건을 입증할 증명자료를 제출하라는데, 이건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우체국에서도 협조를 해주지 않았고요. 결국 경추 추간판탈출증은 자료가 불충분하여 불승인되었어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무상 요양 신청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자료를 혼자 준비하기 버겁고, 개인이 노무사를 고용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경영평가 점수가 깎일까봐 사고가 났다고 말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이 문제가 지적되자 지금은 경영평가 점수에 반영이 되지는 않지만, 우체국마다 진행하는 '무사고 OO일'은 여전히 심리적으로 부담을 얹어준다. 지난 3년간(2011~2013) 산업재해로 인정된 건수는 무려 1440건이지만 실제로 더 많은 사고가 있을 것이라고 집배원들이 입 모아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얼마 전 ○○우체국은 '무사고 100일'이라고 회식을 했어요. 그 돈들 모아서 사고를 막을 수 있게 인력충원 같은 예방책을 마련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은데. 정작 집배원들은 아파도 병원 못 가는 게 현실이거든요. 이러다가 정말이지 큰일나지 싶어요."(○○우체국 집배원 김아무개씨)산업안전공단에서 발표한 자료가 심상정 의원실의 자료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우정사업본부는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고에 대한 파악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못했다. 국가기관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리고, 집배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바로 우정사업본부임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공공기관인 우체국에서 현장직원이 사고가 난 것에 대해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대처가 없다는 것이 정말이지 안타깝습니다. 우체국 내에 공무상요양신청에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대변할 부서조차 없으니 대처가 미비할 수밖에요. 전문적으로 업무대행을 할 수 있는 곳이라도 제발 있었으면 합니다."'행복배달 집배원'도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현장 필요우체국의 메인슬로건은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한국우정'이다. 하지만 정작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달해야 할 우체국노동자들은 행복하지가 않다. 고객에게 인사 한 마디 나눌 시간도, 웃음 한 번 지을 힘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정사업본부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우체국노동자들에게 '행복'을 강요하고 있다.
"집배원은 이륜차를 통해서 배달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요. 무거운 택배와 무수히 반복되는 우편물 구분은 근골격계질환으로 이어지고, 점점 복잡해지고 힘들어지는 노동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마음까지 병들어가지요.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동시에 하는 우체국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보다 체계적인 전문의료기관 및 산업의료기관에서 노동환경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봐요." 2013년 11월, 집배원 2분이 연달아 사고로 세상을 등지면서 슬픔에 빠진 집배원들이 모여 '집배원 장시간·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를 만들었다. 말 못할 비밀처럼 숨겨왔던 우체국의 현실을 알려내고, '골병'말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달라고, 집배원이 행복한 우체국을 만들자고 외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시민사회단체들도 함께 발 벗고 나섰다. 집배원 정씨 역시 우체국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꾸는데 작은 희망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이 인터뷰에 용기를 내어 응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우편물의 증감에 따라 비수기, 폭주기, 특별기로 들쑥날쑥한 노동시간과 겸배 등으로 불규칙하고 과중한 노동환경을 보며 조용히 숨죽이며 생활하는 것은 우리의 노동환경을 더 나쁘게 할 뿐이라 생각해요. 공무상요양·산재신청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는 데 노력할 겁니다. 그게 우체국에서 고통 받는 분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 4월 28일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먼저 떠나간 우체국 동료들과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현장을, 세상을 바꾸겠습니다.
- 글쓴이는 집배원 중대재해 해결을 위한 연대모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