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면, 6자회담을 할 의미가 없어진다." - 박근혜 대통령
"북한 핵은 미국에 대한 직접 위협이다.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하거나, 두 가지를 다 하면 추가 압력 방법을 찾고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 오바마 대통령예상대로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5일 오후 정상회담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을 고강도로 비판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예고한 가운데 열린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현안은 북핵문제였다.
두 정상은 회담 직후 발표한 '한미관계 현황 공동 설명서(Joint Fact Sheet)'를 통해 "한·미 양국은 우리 두 나라는 물론 국제사회의 공동 목표이기도 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도 확고한 의지를 갖고 북한과 관련된 모든 사안들에 대해 계속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 달 전인 지난 달 25일 두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네덜란드 헤이그 3자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재확인한 것이다.
오바마 "'자유시장경제 통일' 드레스덴선언 지지"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전제조건을 완화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몇 년 동안 일관되게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보상하지 않았다"며 "협상테이블에 비핵화 문제가 반드시 올려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북한의 '무조건적인 6자회담 재개'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축한 것이다. 두 대통령dl26일, 한미 양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함께 한미 연합사령부를 방문하는 것도 이런 강경분위기를 과시하는 이벤트로 해석된다.
두 대통령은 또 "북한 주민에 대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인권 침해에 대해 북한 당국의 책임을 묻는 데 전념해 나가고자 한다"고 북한 인권 문제를 정면 거론했다.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책임자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방안을 논의하는 데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 4차 핵실험 막을 마지막 기회 날아간 것 같다"우려 제기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서 구체화된 바 있는, 핵무기와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기반으로 평화적으로 통일된 한반도에 대한 박 대통령의 비전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드레스덴 선언의 이런 성격을 '흡수통일 논리'라고 비판하며 거부한 바 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명분을 줘야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북한의 4차 핵실험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날아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오바마 대통령이 독일식 흡수통일을 지향하는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양국이 인권침해에 대한 북한당국의 책임을 묻겠다고 북한을 강력하게 압박함에 따라 북한의 강렬한 반발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한미의 대북 입장이 더욱 강경해진 것을 확인한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중장거리 로켓 발사→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북한의 4차 핵실험→ 안보리 추가 제재 결의→ 북한의 전시 상태 선언' 같은 지난해 3월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을 막기 위한 중국의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날 "고무적인 건 북한 핵이 중국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점에 대해 중국이 조금씩 눈을 뜨고 있다는 점"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지만, 중국이 적극적 행보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일본과 한국 방문에서 한미일 군사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또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전제조건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어, 중국이 움직일 공간도 극히 협소하다.
아베는 만족, 오바마는 씁쓸, 박근혜는?대북 강경발언으로 한반도 긴장이 더 높아진 것을 비롯해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방한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두 정상은 "한미 동맹을 현대화 하면서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상호 운용성도 개선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이 더 나와야 분명해지겠지만, 미국이 그토록 바라는 MD(미사일방어)체제에 대한 한국 참여 문제에 어떤 '진전'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은 한·미·일 3국 간 정보공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와 연결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와 대한제국 국새 환수에 대한 대가로 MD, 한미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무기 구입 등의 문제에서 미국에 끌려가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반면 아베 일본 총리는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중일 영유권 갈등지역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문서로 "미·일 안보조약 대상"이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도 공동기자회견 자리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 면전에서 "나의 야스쿠니 신사 방문은 국가를 위해 싸우다 상처 입고 쓰러진 분들에 대해 손을 모으고 명복을 빌기 위해서다. 세계의 많은 리더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자세라고 생각한다"고 정면승부를 걸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18년 만에 일본을 국빈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아베 총리에게 면죄부를 준 꼴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에는 실패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씁쓸한 상황이다. 김창수 실장은 "북한에 대한 공세를 통해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번 아시아 순방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기본 구상"이라면서 "이를 위해 한일관계 개선을 끌어내려 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한반도 상황도 더 불안해진 형국"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