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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대흥 직원들로 구성된 '사랑의 고치미' 봉사단이 거동이 불편한 한 노부부의 집 옥상에서 방수공사를 하고 있다.
(주)대흥 직원들로 구성된 '사랑의 고치미' 봉사단이 거동이 불편한 한 노부부의 집 옥상에서 방수공사를 하고 있다. ⓒ 심규상
바닥이 갈라진 옥상,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방안, 홈통 없는 처마. 틈새가 벌어진 창문…….

대전 석교동에 있는 이성수(82), 박정자(75) 부부의 방안 살림살이는 곳곳이 상해 있었다. 방안으로 빗물이 스며든 때문이다.

수년 전 고관절 통증과 파킨슨병으로 쓰려진 남편 이씨는 집을 수리할 엄두조차 낼 수 없다. 부인 박 씨조차 기관지 천식으로 걷기조차 힘들다. 한숨만 내쉬고 있던 때에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일사불란... 복지발굴팀에서 기술팀까지

25일 오전 9시, 40여명이 이씨 부부의 집에 나타났다. 한 팀은 세간살이를 밖으로 빼내고 한 팀은 옥상 방수공사를 시작했다. 또 다른 팀은 처마홈통을 달고 또 다른 팀은 벽 구석구석 틈새를 메운다. 한편에서는 이들이 먹을 점심준비가 한창이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말 그대로 일사불란하다. 건축물 시설보수 및 아파트 전문관리업체인 (주)대흥 직원들로 구성된 '사랑의 고치미' 봉사단이다. 봉사단 회원만 540여명. 발굴팀, 기술팀, 봉사팀 등으로 체계가 잘 잡혀 있다. 여기에 청소에서부터 전기, 조석, 배관, 설비, 도배, 보일러수리 등 각 분야 전문 인력이 포함돼 있다. 방호창문 설치, 두꺼비집 교체, 보일러 수리, 나무전지 등 못하는 일이 없다.

"복지발굴팀이 미리 집수리 봉사가 필요한 가정을 물색해요. 직원들이 저소득가정의 수소문해 정보를 주면 발굴팀이 현장에 나가 도움이 필요한 곳인지, 집수리 분야 등을 조사합니다" - 장순천 고치미 봉사단 회장, 갈마 아파트 관리소장

"집에서 샤워하고 싶다는 시각장애인 기억에 남아"

 (주)대흥 직원들로 구성된 '사랑의 고치미' 봉사단이 거동이 불편한 한 노부부의 집 옥사에서 방수공사를 하고 있다.
(주)대흥 직원들로 구성된 '사랑의 고치미' 봉사단이 거동이 불편한 한 노부부의 집 옥사에서 방수공사를 하고 있다. ⓒ 심규상

 (주)대흥 직원들로 구성된 '사랑의 고치미' 봉사단이 거동이 불편한 한 노부부의 집을 수리하고 있다.
(주)대흥 직원들로 구성된 '사랑의 고치미' 봉사단이 거동이 불편한 한 노부부의 집을 수리하고 있다. ⓒ 심규상

이들이 집수리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17년 전인 1998년 4월이다. 이후 봄부터 가을까지 매월 한 가정씩 4개 팀이 번갈아 가며 집수리를 해왔다. 공사가 어려운 겨울철에는 연탄을 배달한다. 수리비용은 모두 회원들의 회비와 회사의 지원으로 충당한다. 그런데도 이들의 활동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장순천 고치미 봉사단 회장은 "봉사단 회원들이 보여주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며 일부러 외부에 알리는 것을 꺼리는 편"이라며 "하지만 자신들의 특기를 살려 이웃을 돕는 일에 보람이 커 신바람 나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이씨 부부의 집수리는 125번째 가정이다. 장 회장에게 기억에 남는 일을 물었다. 

"수통골(대전 유성구)에 있는 시각장애인의 집을 수리한 일이예요. 이 분이 소원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눈을 뜨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집에서 샤워하는 거라고 했다더군요. 집수리를 하면서 주방시설은 물론 샤워시설까지 해드렸어요. 소원 하나를 이뤘다며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딸 아이가 밤새 만든 노란리본" 세월호 아픔 곳곳에

 (주)대흥 직원들로 구성된 '사랑의 고치미' 봉사단 장순천 회장. 가슴에 세월호 침몰로 인한 희생자 애도와 구조를 바라는 노란리본이 눈에 띤다.
(주)대흥 직원들로 구성된 '사랑의 고치미' 봉사단 장순천 회장. 가슴에 세월호 침몰로 인한 희생자 애도와 구조를 바라는 노란리본이 눈에 띤다. ⓒ 심규상
봉사단원 가슴마다 노란 리본이 달려있다. 박순정 사무차장이 사연을 소개했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의 김oo 학생이 제 딸(oo여고 재학)과 친한 친구예요. 중학교도 같이 다니고. 물론 저도 잘 알고요. oo이가 안산으로 이사를 가 단원고에 다니는 동안에도 제 딸과 자주 연락을 하고 지냈어요. 수학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도 전화 통화했다고 해요.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겼으니…. 딸애가 고치미 봉사단원들 가슴에 달 수 있게 해달라며 새벽까지 만들어 전해 준 거예요.."

박 사무차장이 말끝을 흐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oo이는 화 한번 낼 줄 모르는 착하고 성격 좋은 아이였다"고 말하며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집수리는 도배와 장판 교체 등으로 오후 6시쯤 마무리됐다.

박정자 할머니는 "허름하지만 38년 전 이 집을 처음 장만한 이후 쭉 살고 있어 애착이 많다"며 "말끔히 집을 고쳐줘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봉사단원들은 이날 봉사활동으로 고치미 봉사단 발족 17주년을 자축했다.


#사랑의 고치미#(주)대흥#노란리본#17주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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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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