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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인간>의 리뷰를 쓰기에 앞서서 이 책의 지은이 한스 올라브 랄룸에 대해 언급하고 들어가야 하겠다. 
우리에겐 장르 소설 <파리 인간>의 저자이지만, 노르웨이에서 이 사람은 SV(social left/ new left)당의 일원이자, 노르웨이 각 방송 프로그램의 단골 초청 인사로 미디어를 통해 더 익숙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노르웨이 정치사의 전문가로 노르웨이와 미국 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고 강연을 하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러던 그가 자신의 전문 분야였던 노르웨이의 정치사를 근거로 한 추리 소설 <파리 인간>을 출간을 시작으로, 범죄 스릴러 작가로도 새롭게 진출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치적 활동의 소산물로 혹은 자신의 연구의 결과물을 소설을 집필하는 건 최근 북유럽 지식인들에겐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가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여러 출판사를 통해 다양한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고, 최근 영화로도 선보인 밀레니엄 시리즈의 스티그 라르손 역시 몇십 년에 걸친 스웨덴에서의 그의 좌파 할동의 결산을 소설로 엮은 것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극중 주인공 미카엘에게서 스티븐의 흔적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리하르트 다비드 프레히트의 <살인은 없었다> 역시 형사 외르겐센의 지식 수사 소설이라는 부제가 달렸듯이 수사보다는 리하르트 다비드 프레히트에 의해 각색된 덴마크의 사회사 한 챕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이 작품들 중,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과 한스 올라브 랄룸의 <파리 인간>은 상당히 흡사한 구조를 가진다.

우선 밀레니엄의 남자 주인공 미카엘과 <파리인간>의 남자 주인공 콜비외른 크리시티안센은 잡지 편집장과 경감이라는 사회적 위치는 다르지만, 적극적으로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하는 입장에서 동일한 위치에 놓인다.

또한 스웨덴에서 상대적으로 좌파이자, 그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는 정통 언론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미카엘의 위치는, 그가 접하는 과거 혹은 현재의 비리들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크리티안센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중산층의 자녀이지만 경찰 내에서는 처음으로 단독 사건을 맡은 직업적 의지가 넘치는 신참 경관에, 스스로 노동당의 일원임을 밝히는 사회적 입장을 견지한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정치적 상황이다. 물론 밀레니엄의 배경이 되는 현대와, <파리인간>의 배경이 되고 있는 1968년은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상대적으로 진보적 입장에서 과거의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밀레니엄> 시리즈와 <파리 인간> 두 책의 지배적 정서라는 걸 우선 전제해야 하는 것이다.

<밀레니엄>과 <파리인간> 모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치의 침략 혹은 영향력이 있었던 과거로 시점이 옮겨져야 한다. <밀레니엄>의 경우, 현재의 억압, 혹은 비리를 낳은 신자유주의 시대 스웨덴의 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그 유래를 2차 대전 당시의 부적절한 과거사로 이어지는 것이고, <파리 인간>에서는 현재의 사건의 유래가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대항한 저항군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두 작품 모두 조력자 이상의 역할을 하는 여성 파트너들을 등장시킨다. <밀레니엄>시리즈에서는 지금까지 스토리텔링 사상 전무후무한 여성 캐릭터인 해커 리스베트가 등장한다. 잡지 편집장이지만 사건을 위탁받아 사건의 중심으로 뛰어드는 미카엘과 소년원과 정신병원을 들락거린, 그래서 스스로 삶의 자구책을 마련하는 데있어 그 어떤 스파이보다 뛰어난 리스베트의 콤비 이야기. 이는 <밀레니엄> 시리즈를 그저 평범한 추리 이상의 스파이 물이 가지는 박력 넘치는 활극을 탑재한 액션물로 버전업 시킨다.

그에 비해 아가사 크리스티와 셜록 홈즈을 추종하는 한스 몰라브 랄룸의 <파리 인간>은 보다 추리 소설의 정석에 가깝다. 조력자로 등장하는 파트리시아도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로, 탐정물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의자 탐정의 유형이다. 그래서 사건에 공식적으로 해결할 위치에 놓인 크리티안센 경감과 파트리시아는 꼬이고 꼬인 사건을 추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공을 들인다.

하지만 의자 탐정 파트리시아와 크리티안센 경감의 추리에 방점이 찍힌 <파리인간>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의 특징과 매력을 배가시킨다.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야기 중 파트리시아가 정의내리듯 쓰레기 더미를 벗어나지 못하는 파리들처럼, 자신이 겪은 과거의 사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파리 인간>은 그래서 추리의 방점이 과거에 찍힌다.

여전히 현재를 규정하는 과거, 구체적으로는 2차 대전 노르웨이를 점령했던 나치 치하에서 서로 다른 입장과 처지에 놓여있던 사람들의 과거사가 현재의 살인과 살인 혐의로 이어지는 것이다.

선량한 시민이었지만 양심에 근거해 나치를 피해 도망치던 사람들을 숨겨주다 그 일로 인해 나치의 고문을 받고 총살 위기까지 처해지다 겨우 풀려났지만 평생 그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해 알콜 중독 속에서 일생을 마쳐야 하는 남편. 그리고 그런 남편을 지켜야 하는 아내. 어린 나이에 나치에 저항하다 잡혀 총살 당하는 아버지를 목격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저항군의 길 안내자 노릇을 하다, 겨우 16살에 네 사람을 죽이고, 그 트라우마로 평생을 자신을 지우며 살다 살인에 이르른 사람. 그와는 반대지만 나치에 동조했던 시간들 때문에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의 자식. 또 유대인이라서 죽임을 당한 부모님을 찾아 헤매는 딸. 그런 우리가 미처 몰랐던 노르웨이의 과거사가 <파리인간>이라는 작품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비록 아픔이지만, 그 아픔의 성격은 우리 작품 속 과거사와는 뉘앙스가 다르다. <파리 인간> 속 사람들은 나치에 복무했단 사실로 몇 십년이 지나도 손가락질을 받는다. 우리처럼 과거사를 세탁하며 살아가지는 못한다. 그랬던 사실로 인해 감옥을 다녀오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지만 그것이 미화되거나 왜곡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래도록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망자들을 피신시킨 저항군이었지만 극한의 추격전에서 살기위해 저질렀던 단 한번의 살인이, 암으로 생의 마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전직 장관의 목숨줄을 죈다. 그가 저질렀던 단 한번의 부도덕조차 결국 단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파리인간>은 깔끔한 범죄 스릴러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와 셜록 홈즈를 오마주했다는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등장하듯이, 전체적인 플롯에 잔재주를 피우지 않고, 사건의 근원을 캐는 데 충실한다. 그래서 흔한 밀실 살인 사건은 결국, 노르웨이 근대사 복기와 전쟁과 침략의 잔상에 고통 받는 인간 군상에 대한 보고로 결말을 맺게 된다.

덧붙이는 글 | http://blog.naver.com/cucumberjh에 같이 실립니다.



파리인간

한스 올라브 랄룸 지음, 손화수 옮김, 책에이름(2013)


#파리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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