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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시 양남면 상계리 구암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345kV 전기를 실어나르는 상계리 14호 송전철탑이 절반 정도 건설된 채로 서 있다.
경주시 양남면 상계리 구암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345kV 전기를 실어나르는 상계리 14호 송전철탑이 절반 정도 건설된 채로 서 있다. ⓒ 박석철

"밀양 어르신들이 목숨을 걸고 송전탑을 반대할 때 정부는 '원칙대로 해야 한다'며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주민들에게 한 설명회와 달리 설계를 변경해 사람 머리 위로 선로가 지나도록 송전탑을 건설하려는데, 그 의도가 무엇입니까."

지난 27일 오후 1시. 경북 경주시 양남면 상계리에 있는 사찰 구암사에서 바라본 14호 송전탑은 반쯤 올라가다 공사가 중단돼 있었다. 구암사 주지 법공 스님은 "고압 선로가 스님과 신도 머리 위로 지나게 됐다. 밀양 어르신들이 목숨걸고 송전탑을 반대하는 이유를 알겠다"며 철탑을 가리켰다.

한전은 월선 원자력 2, 4호기에서 나오는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경주시 외동읍 입실리에서 울산 북구 대안동까지 1만3554㎞를 연결하는 345kV 송전탑을 진행하던 중 상계리 구간에서 돌연 설계를 변경해 공사를 시작했다. 이에 양남면 상계리 주민들이 설계변경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고 있다.

사람 머리 위로 지나가는 345kV 송전탑 선로... 도대체 왜

현장에서 본 변경된 송전탑은 선로가 상계리 마을 인근을 지나고, 특히 구암사의 경우 사찰 바로 위를 선로가 가로지르는 형태였다. 이 때문에 구암사 스님들은 물론 이곳을 찾는 1400여 명의 신도들은 처음 설계대로 송전탑을 건설할 것을 요구하며 집단 행동과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전은 지난 2008년 용역에 착수해 2011년 7월부터 경주시 외동읍 입실리에서 울산 북구 대안동까지 1만3554㎞를 연결하는 345kV 송전탑 공사를 시작했다.

경주 양남면 구암사와 상계리 주민들, 한전측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2013년 3월 상계리 주민설명회를 갖고 이 지역의 공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설명회가 열린 후 6개월쯤 지난 지난해 가을, 송전탑은 갑자기 당초 주민설명회 때 밝힌 계획안과 달리 마을쪽에 가까이 근접하도록 건설되고 있었다.

이에 이곳 주민들이 대책위를 구성해 철탑건설을 반대하는 한편 일부 주민은 지역 국회의원에게 민원을 제기하며 맞서자, 한전은 12, 13호 송전탑 건설 후 14호 철탑을 반쯤 올린 채 지난 2월 20일부터 공사를 일시중단한 상태다.

 경주시 양남면 상계리 구암사 입구에 신도들이 송전탑공사 반대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경주시 양남면 상계리 구암사 입구에 신도들이 송전탑공사 반대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 박석철

한전의 설계 변경으로 345kV 송전탑 선로가 사찰 위를 지나게 된 구암사의 주지 법공 스님은 "종교가 세간의 시시비비에 개입하는 것을 머뭇거려 주민들이 동의하는 송전탑은 넘어 가려고 했다"며 "하지만 지난해 가을 헬기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위치가 변경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급히 상계리 주민들에게 물어봤지만 선로 변경에 대해 아는 사람도, 설계 변경을 합의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이상하다 싶어 다시 이장에게 물어보니 현재 이장은 '전 이장과 이야기가 된 것으로 우리도 지금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법공 스님은 "법당은 스님들이 하루 열 시간 넘게 기도를 하고 신도들도 자신의 괴로운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수시로 찾는 곳"이라며 "송전탑 고압 선로가 법당 바로 위를 지나는데 스님들과 신도들이 어떻게 기도를 하겠냐"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송전탑 설계는 왜 갑자기 변경됐을까. 구암사와 일부 주민, 한전에 따르면, 당초 송전탑 건설 설계안에 포함된 부지에 관광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양남영농조합법인측이 민원을 제기했고, 이에 한전측이 주민들에게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설계를 변경해 공사를 진행했다는 것.

양남영농조합법인은 양남면 상계리 청수폭포 일원 10만 평에 영농관광개발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당초 송전탑 선로가 해당 개발지 위를 지나려 하자 지난해 2월 28일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으로 반대했고, 한전측은 이를 받아들였다. 

"고압전기 흐르는데... 어느 신도가 사찰 찾겠나"

 경주 양남면 상계리 345kV 송전탑 위치. 당초 직선 선로에서 송전탑 위치가 변경돼 선로가 'ㄱ' 자 형으로 꺽인다
경주 양남면 상계리 345kV 송전탑 위치. 당초 직선 선로에서 송전탑 위치가 변경돼 선로가 'ㄱ' 자 형으로 꺽인다 ⓒ 박석철

사정이 이렇자 지난 5일 상계리 주민 공아무개씨는 "한전의 설계변경으로 집 인근에 철탑이 세워지고 있어 피해가 우려된다"며 한전측에 선로변경 최종결정자 등 철탑위치 변경과 관련된 자료를 정보공개청구 했다.

공씨는 "설계 변경으로 일자형이던 선로가 'ㄱ'자 형태로 바뀌면서 특수공법으로 공사를 하고 있는데, 이에 따른 비용 증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라며 "왜 한전이 국민의 세금으로 이런 일을 강행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어떤 큰 힘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한전에 이의를 제기하고 공사를 반대하며 주민대책위가 구성됐는데 어찌된 일인지 차츰 주민들이 흔들리고 있다"며 "우리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집 인근에 고압 전선이 건설되는 것 자체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구암사의 한 신도는 "사찰에 오는 신도들은 불안한 심정을 기도로 달래고 신병을 치유하자는 이유가 있다"며 "하지만 언론보도 등으로 고압 전기가 사람 몸에 해를 미칠 수 있다고 다들 알고 있는데, 앞으로 어느 신도가 사찰을 찾겠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전 대구경북개발지사측은 2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양남영농조합측이 피해 발생을 우려하며 자신들의 토지 밖으로 송전탑을 빼달라고 민원을 제기해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양남조합 측이 송전탑을 이설하는 곳의 필지를 제공하고 인근 지주들의 동의서도 받아왔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주민설명회 때와 달리 변경된 공사를 주민들에게 설명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공사의 효율을 위해 설계가 변경되는 것을 주민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경미한 변경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책사업이라 80% 가량 진척된 공사를 다시 변경할 수는 없다"며 강행 의사를 밝혔다.


#양남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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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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