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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우리는 학생들을 비롯한 꽃다운 생명이 속절없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가슴 찢어졌습니다. 선박회사와 선장을 비롯한 선원, 그 회사를 비호해온 관계당국 그리고 정부조직의 무책임과 무능력에 분노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우리 학교(서울E초등학교)에서 일어날 일을 알리고자 합니다. 지난 4월 18일은 우리학교 4학년 현장학습일이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었지만, 한 달 전에 예정된 것이라 서울시청과 시의회 그리고 서울역사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국민 생명 보장... 정부의 중요성" 문구, 문제일까요

그후로도 침몰된 세월호 안 학생들은 구조되지 못했고, 기적이 가능한 시간마저 다 지나가고 있어 많은 이들의 속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학년부장으로서 다녀온 현장체험학습에 대해 정산하고 그것을 가정통신문으로 보내게 돼 있어 지난 23일 문서를 작성해 기안을 올렸습니다. 그 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름답지만 잔인한 4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생명들이 책임 있는 사람들의 총체적 부실과 무책임, 무능에 의해 스러져가는 참담한 상황속에서, 무엇보다 사람들 또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와 정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현장학습 정리·정산 내용은 생략)
 
그런데 다음날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수업 중 전화가 왔습니다. 교감선생님의 말은 '침몰 관련 부분을 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장 명의로 나가는 가정통신문에 정부의 책임을 언급하는 게 교장선생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듯해 그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 구절이 실감나는 4월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생명들이 스러져가는 가슴 아픈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사회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현장학습 정리·정산 내용은 생략)

그런데도 교감선생님과 교장선생님께서는 '가정통신문은 학교장의 이름으로 보내지는 것이라 교장선생님의 뜻이 전달되도록 작성돼야 한다'면서 제가 기안한 가정통신문을 수정했습니다. 두 분은 "온화한 날씨 속에 꽃향기가 가득한 계절, 학부모님 가정에도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라는 식으로 시작 부분을 수정해 재기안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제가 "교장선생님의 이름으로 나가지만, 담당자의 이름도 있고, 실제적으로 통신문은 담당부장이 만드는 것이며 제 머리말(인사말)은 아무 문제 될 내용이 아닙니다"라고 했지만, 결국 결재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 가정통신문이 발송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28일 4학년 현장학습 가정통신문은 정산 내역만 담긴 채 학교 누리집에 올려졌습니다.

 4월 28일 올라온 서울 E초등학교의 가정통신문. 정산 내역만 올라와 있다.
4월 28일 올라온 서울 E초등학교의 가정통신문. 정산 내역만 올라와 있다. ⓒ E초등학교 누리집 갈무리

아픔 나누고 책임 환기하고자 했을 뿐인데...

제가 교장·교감선생님들과 논쟁을 벌이던 중, 저는 지역 교육청 과장님으로부터 "교장선생님 말씀을 따르라"라는 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지역 교육청 과장님에게 제가 작성한 통신문 머리말 부분을 읽어드리면서 "아무 문제 될 게 없는 내용"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교장선생님께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씀 드려 달라"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습니다.

교감선생님은 "민감한 시기에 어떠한 말이나 글이 다르게 해석돼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격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라면서 "신중하게 작성해야 한다, 좀 더 간단 명료하게 작성해 달라"라고 말했습니다.

"언니, 오빠들 마음이 너무 아파요" 세월호 침몰사고 13일째인 28일 오전 전남 진도 향토문화회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진도 의신 초등학교 학생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언니, 오빠들 마음이 너무 아파요"세월호 침몰사고 13일째인 28일 오전 전남 진도 향토문화회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진도 의신 초등학교 학생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 이희훈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교육부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한 유언비어를 엄단하겠다고 밝혔더군요(관련기사 : 교육부, 학생들에게 세월호 '입단속' 논란). 하지만 제가 쓴 가정통신문 머리말은 유언비어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교육계가 정부의 '유언비어 엄단 방침'에 위축된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전 국민이 가슴 아파하는 이때, 교사와 학교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의견을 제시하는 게 잘못된 걸까요. 가정통신문 문구까지 삭제해야 할까요. 이럴 때일수록 교사·학교의 의견 개진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교육과 사회의 발전도 가능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영훈님은 서울 E초등학교에서 4학년 학생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세월호와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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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서울교육대학 졸업. 한국학중앙연구원대학원 교육사회 전공 수료 ·1986년 12월 시험점수경쟁위주 교육 반대와 이승만대통령 묘소에 대한 무조건적 묵념 비판 등으로 해직, 1987년 복직. ·1988년 이후 전교조 정책연구원,초등기획실장등 역임. 20여년간 참교육을위해노력하고 학교 교장등의 불합리,비민주,비교육과 싸워온역사가있음. 현 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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