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촛불을 들고 서울 노원구 동일로 롯데백화점 노원점 앞에 선 것은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지 일주일 뒤인 지난 26일이었다. 그동안 뉴스를 보고 있으면 순간 눈가에 눈물이 맺히다, 돌아서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을 하곤 했다.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잠시 멍하게 있다 다시 일하기를 반복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안을 맴돌기만 했다. 펑펑 울고 싶다가도, 함께 울어줄 사람조차 없어 그만뒀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지만, 죽음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무뎌지는 나를 보며 인간성마저 피폐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미친 세상에 미치지 않은 것이 비정상이라고 할 만큼 우리는 모두 병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면 지금 이 시간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갈 것 같았다. 안산에서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위한 촛불을 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 알고 지내던 시민사회단체 분들에게 노원구에서도 촛불을 함께 들자고 이야기했다.
제법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셨다. 지난 일주일 동안 다들 비슷한 마음으로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한쪽에선 준비한 촛불을 들고, 다른 한쪽에선 현수막에 기원과 추모의 메시지를 오고가는 주민들이 적을 수 있도록 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다.
"무사히 돌아와...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특히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찾아왔다. "기적처럼 다시 돌아오길… 친구들아 같이 수능 봐야지"라는 글귀가 가슴 한편을 때린다. '기다려라'는 말 한마디에 선실 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던 학생들이었다. 명령에 길들여지고 순종을 강요받던 학교생활의 결과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먼저 탈출한 선장의 모습에서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른들의 말만 믿고, 침몰해가는 배 안에서 친구 걱정, 선생님 걱정, 동생 걱정을 했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을 기다리며, 다른 학생들이 함께 수능을 보자고 한다. 한 번의 결과로 인생의 순위가 매겨지는 수능도 학생들에겐 그들만이 함께할 수 있는 출구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미안함이 더해졌다.
한 여성분은 글을 적다 잠시 멈춘다. 떨군 고개 아래로 눈물 자국이 남는다. "너무 미안해. 아직 할 일이 더 많을 텐데…"까지 글을 쓰고 미처 완성하지 못한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도 많았다. 고사리 같은 아이들 손에, 뭐라도 쓰길 바라며 볼펜을 쥐어준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을 함께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머리가 희끗한 한 시민은 정부의 무능함을 질타했다. 한참을 얘기하다 "내 친구들이…"라며 말끝을 흐리더니 갑자기 돌아서 눈물을 훔치신다. '무슨 사연이 있나?' 했지만 더 이상 묻지 못했다. 문득 초등학교 동창들이 환갑을 기념하기 위해 세월호에 올랐다가 한 날 한 시에 생을 마감하게 됐다는 사연이 떠올랐다.
아픔과 슬픔, 미안함과 분노를 표출하고 공유하는 법을 모르는 우리들에게 촛불은 그것을 채워주는 존재가 아닐까 한다. 실종자분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며 드는 촛불은 어쩌면 나와 우리를 위한 촛불이기도 한 것 같다. 기원과 추모의 글귀로 가득 채워진 현수막은 노원구 곳곳에 걸렸다. 이곳 사람들의 마음이 진도 앞바다에 닿기를 바란다.
침묵을 깨기 위한 촛불을 들자
"우리가 침묵하면 세월호는 계속된다." 참교육학부모회는 시민들의 모금으로 위와 같은 내용의 신문광고를 냈다. 이제 슬픔과 기원의 마음은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곳을 향한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한다고 하면 무엇 하나. 우리 기업들이 세계일류 기업을 향해 간다 한들 무엇하나. 눈앞에서 침몰해가는 배 안에서조차 제대로 된 구조가 이뤄지지 않은 이 나라. 무슨 정부가, 무슨 나라가 이런가.
학부모가 우리 아이를 살려달라고 대통령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아닌, 대통령이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해 잘못했다며 국민들 앞에 무릎 꿇는 나라를 소망한다. 경쟁과 이윤창출보단 사람이 중시되는 세상이 되길 소망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더 가치 있게 여겨지는 세상이 되길 소망한다.
세월호 사고는 어쩌면 침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단면일 것이다.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선장 앞에서 침묵한다면, 대한민국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침몰할 것 같은 불길한 마음이 가득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다시 드는 촛불이 침묵을 깨기 위한, 기울어져가는 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외침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