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갖고 싶어 하기보다 권력자와 친하고 싶어 하는 속물이에요."
내가 만난 조민기 작가는 뻔뻔할 정도로 솔직해서 미워할 수가 없는 캐릭터다. 새치름한 표정으로 자신을 '속물'이라고 말하면서도 어딘지 수줍어 보이는 그녀의 말속에서 알 수 없는 호기심이 일어났다. 권력자와 친해지고 싶다는 소망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라고 하니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소망을 이루는 건 쉽지 않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역사 속 권력자들이에요. 이미 세상에 없는 역사 속 권력자들은 현실의 권력자들보다 훨씬 거대한 인물들일 뿐 아니라 이들과 친해지는 건 속물처럼 보이지 않거든요. 역사 속 권력자들과 친해지면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워가는 중이에요."
한양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다양한 문명을 공부하며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역사 속 인물들을 비교해보는 것이 오랜 취미가 되어버렸다는 조 작가는 역사를 이끈 절대자들에 대해 언제나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조선의 임금'으로 한 시대를 살아냈던 왕들의 진짜 얼굴이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조선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임금이 어떤 가계도를 가지고 태어나 어떤 과정을 거쳐 왕위에 오르고, 어떤 업적을 세웠으며 어떤 문제를 일으켰고 결국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궁금했다는 것.
그중에서도 작가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조선의 임금들은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였다. 그러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조선 임금 잔혹사-그들은 어떻게 조선의 왕이 되었는가>는 기존의 조선왕조실록의 나열이 아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시선을 가진 역사서라 할 수 있다. 왕으로 태어난 사람과 왕으로 만들어진 사람, 왕자로 태어났지만 왕이 되지 못한 사람. 그들의 불안하고도 우아한 공존을 통해 진짜 조선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조선의 왕과 왕의 자리'라는 주제를 가지고 조선의 임금들이 얼마나 힘겹게 왕의 자리에 오르고, 이루어내고, 지켜냈는지를 담담하게 때론 흥분하며 말하고 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처럼 분명 독자들도 작가와 호흡을 같이 하며 딱딱한 실록이나 가공된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닌, 조선의 임금으로 살았던 왕들의 진짜 모습을 입체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조선 임금의 희로애락에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쾌하고도 깊이 있는 글로 조선과 조선 임금의 진짜 모습을 알기 원하는 이들을 새로운 길로 안내하는 책이다.
조선의 왕, 그들은 어떻게 왕의 자리에 오르고 지켜갈 수 있었나?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임금의 자리에 앉은 이들은 모두 26명이다. 이중 강제적인 절차를 포함한 양위가 5번, 공식적으로 성공한 반정이 2번 있었고, 왕과 왕비의 아들로 태어나 세자 시절을 거쳐 임금이 된 이들은 채 절반도 되지 않는다. 왕과 왕비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정치적 계산에 의해 엉뚱한 인물이 왕위에 오르기도 했고, 세자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 무사히 왕위에 오르는 것만도 아니었다. 왕과 왕비의 장남으로 태어나 선왕이 승하한 후 임금의 자리에 오른 조선의 임금은 26명 중 단 2명, 연산군과 숙종뿐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왕들은 어떠한 방법과 과정을 거쳐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또한 그 자리를 지키고 물려주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군분투했을까?
성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성종은 세조의 장남인 자신의 아버지 의경세자가 젊은 나이로 사망하자 왕위 계승 서열에서 멀어진다. 그러나 예종이 일찍 승하하고 난 후 세조의 왕비 정희대비와 한명회의 정치적 결탁에 의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성종이 선택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한명회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정조는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노론과 가족들이 얽힌 정치적 이해관계에 희생되어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정조는 죄인의 아들이라는 치명적인 상처 속에서 성장하였고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왕이 된 후에도 수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지만 초인적인 노력으로 왕위를 지켜냈다.
우리는 그동안 교과서, 야사, 드라마에서 들려주는 조선 왕들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는 것에만 익숙해진 나머지 그들이 왕위를 이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겪었던 진짜 이야기에는 무관심했다. 역사란 한 개인이 당시의 시대와 환경을 어떻게 인지하고 풀어나갔는지를 의미한다. 이 책은 조선의 왕들이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왜 임금이 되고자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왕위에 올랐는지, 어떤 고민을 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문제와 대면했는지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을 지배했던 왕들의 역사는 곧 오늘을 살고 있는, 내일을 살아갈 우리의 거울이다. 단순히 머리로 배우는 역사가 아닌 한 시대를 살았던 왕들의 숨소리를 느끼고 이해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