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진도 현장을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함께 아픔을 나눈 것은 국정최고책임자로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본인이 직접 해주겠다고 단언한 것이다. 그 자리에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과 목포해양경찰서장이 있었는데 대통령이 이들에게 이런 조치들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어야 했다. 현장지휘자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는 사고 직후 탈출자들 외에는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이재은(49)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구조자 0'라는 악몽을 낳은, 정부의 위기·재난관리의 총체적 실패의 원인을 '단순화의 원리'를 위반한 것으로 정리했다.
국내 행정학자로는 드물게 위기관리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참여정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자문위원과 이명박 정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국가위기관리실 자문위원으로 역대 정부의 위기·재난 관리 상황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국가위기관리학회 1기(2009년)회장과 희망제작소 재난안전연구소장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재난관리 이원화 정책, 위기관리 실패의 핵심원인"지난 4월 30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그는 구체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재난관리 이원화 정책을, 위기관리 실패의 핵심원인으로 꼽았다. 노무현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안전행정부(안행부) 장관이 맡고, 재난 전문성이 있는 소방방재청장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차장을 맡아 전체 재난에 대응토록 했으나, 박근혜 정부는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을 분리해 자연재난은 소방방재청장이, 사회재난은 안행부 2차관이 맡게 해, 통상 재난업무는 잘 모르는 비전문가들이 세월호 사태 대응을 맡게 됐다는 것이다.
아래는 관련 문답 전문이다.
- 세월호 사건을 담당해야 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유명무실했고, 각 단위의 대책본부가 12개나 꾸려질 정도로 극심한 혼선을 보였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재난관리의 특성과 원리원칙에 대해서 파악을 못했다고 본다.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화의 원리다. 신속한 조치와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명령-지휘체계가 단순해야한다. 그러나 부처 이기주의로 단순화되지 못했다. 물론 많은 대책본부들이 위기상황에서 책임을 지고 함께하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청와대에 보고하기 위해 별도로 만든 측면도 있다."
- 사고 이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어떤 체계로 움직였어야 했나. "체계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운영하는 소프트웨어가 문제였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 현장지휘 책임을 지고 관리를 했어야 했다. 현장에서 사고 사망자나 실종자, 구조자와 관련해서는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서와 전라남도청, 진도군청의 재난안전대책본부와 유기적으로 연결됐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중대본이 욕심을 냈다. 대통령한테 보고를 하고 생색을 내려고 한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지금 중대본은 시·군·구 재난안전대책본부나 현장 지휘체계에 대해 지원이나 협조가 아니라 지시·통제·명령·감독을 하려고 한다. 근데 이런 명령이나 통제는 현장의 상황을 알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중대본은 시·군·구 재난안전대책본부에 와서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다가 피해현황을 보고하라고 요구한다. 지금 그곳들은 현장에서 긴급구조도 해야 하고 위기대응도 해야 하는데 거기에 대고 계속 보고를 요구하는 거다. 그러다보니 초기에 전원구조라는 잘못된 보고가 올라가는 등 이번 사건 초기에 혼선이 심각하게 발생했다. 숫자가 다르면 구조 대응 자세가 달라질 수 있다. 거의 구조됐다고 하면 맘 놓고 들어갈 수 있다. 중대본이 질타 받아야 하는 이유다."
"현장지휘자 제외한 모든 부처와 대통령은 지원업무만 해야"
- 대통령, 안보실장,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 총리, 안행부 장관, 안행부 차관, 해수부장관, 소방방재청장, 해양경찰청장, 해군, 전라남도의 책임자, 진도군 책임자 등은 각각 무슨 일을 했어야 하나."현장지휘자를 제외한 모든 부처 장·차관 및 대통령은 지원 업무만 했어야 한다.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이런 것만 물어야 한다. 이번에는 해상사고이므로, 진도군이 아니라 전적으로 해수부와 해경이 현장 지휘를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 모든 지휘체계의 중심으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 지휘를 했어야 하는데 지금은 간섭하고 지시하는 참견꾼이 너무 많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 사실상 서해전체를 맡기 때문에 목포해양경찰서장이 현장 지휘자가 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사건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목포해양경찰서보다는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 맡는 게 낫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 현장을 방문한 것은 어떻게 평가하나.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함께 아픔을 나눈 부분은 국정최고책임자로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유가족들이 요구사항을 말했을 때 본인이 직접 해주겠다고 단언한 것이다. 유족들이 TV설치 해달라고 하니 해주겠다고 하고 관계자들에게 인명구조 최선 다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목이 아쉽다. 사실은 그 자리에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과 목포해양경찰서장이 있었는데 대통령이 이들에게 이런 조치들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어야 했다. 현장지휘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래야 현장 지휘체계를 살릴 수 있다.
과거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빈라덴 사살 작전시 상황실 내에서 탁자를 합동특수작전사령부의 마셜 B. 웹 준장에게 내주고 그 뒤의 오른쪽 구석에 쪼그린 듯 앉은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국 대통령도 지휘관의 지휘체계를 흐트러트리지 않은 것이다."
"중대본 설치에 50분 걸려...분명히 책임지고 넘어가야"- 중대본부장인 안행부 장관은 어떤 지시를 내렸어야 했나. "중대본부장은 즉각적으로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중앙사고대책본부를 설치하고 거기 따라서 각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하고 시도 및 시군구까지 일원화 해놓았어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 항해사가 제주 해상교통관제(VTS)센터로 오전 8시 55분에 신고했고, 오전 9시 45분 중대본이 가동됐다. 중대본이 설치될 때까지 50분이 걸린 것이다. 대책본부 설치 경험이 없는 거다. 늑장대응이다. 이 부분은 분명히 책임지고 넘어가야한다. 상황파악이 제대로 안된 것이다. 현장에서는 30초만에 숨이 허덕이고 애들이 죽어갔다. 얼마나 늦은 건가."
- 중대본부장이 현장 컨트롤타워를 지정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반적으로 육상사고의 경우 중대본이 지정하고 있으며, 해양사고도 중대본에서 지정할 수 있다. 법 조항에 그렇게 돼 있다. 다만 해양사고의 경우 해수부장관이 중앙사고수습본부장으로서 지정할 수도 있다. 이번 사고의 경우 중대본부장이 해수부와 해경의 의견을 듣고 우선적으로 컨트롤타워를 지정했어야 했다." - 화제가 되고 있는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작성자 박성미씨는 리더라면 밑의 사람이 비용을 걱정하지 않고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법에는 필요한 비용을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필요한 응급조치를 실시하고 사후에 원인책임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만약에 산사태가 나서 긴급 구조대를 투입해야 하는데 비닐하우스가 가로막고 있다면 비닐하우스를 없앨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문제가 안 된다. 근데 안했다. 공무원의 문제다."
- 노무현 정부에서는 중대본 본부장을 안행부 장관이 맡고, 소방방재청장이 중대본 차장을 맡아 전문성을 보완토록 했다. 이에 비해 박근혜 정부는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을 분리해, 자연재난 경우에는 소방방재청장이 중대본 차장을, 사회재난은 안행부 2차관이 차장을 맡게 했다. 이에 따라 세월호 사건은 재난업무 비전문들가인 안행부 강병규 장관, 이경옥 2차관, 이재율 안전관리본부장이 초기 상황을 관리했다. 이런 이원화가 극심한 혼선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 이전에는 재난을 자연재난, 인적재난, (에너지·통신·교통·금융·수도 등) 국가기반체계재난 등 크게 3가지로 나뉘었다. 그런데 지난 2월 7일 개정된 재난 및 안전관리법은 인적재난, 국가기반체계재난을 사회재난으로 통합됐다. 공무원의 부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거다. 안행부가 청와대 보고에 대한 욕심을 내, 사회재난을 맡았지만 전문성이 떨어졌다.소방방재청은 안행부가 상급기관이라 말도 못했을 거다.
그 직후인 2월 17일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가 발생하면서 안행부 장관들이 자신들이 재난관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해난사고는 다르다. 용어도 어렵고 선박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우왕좌왕 하며 완전히 흐트러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바뀌어야 한다. 이름만 안행부이지 안전 행정을 책임질 휴먼웨어가 빠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