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왕시 내손동은 재개발된 아파트와 재개발 몸살을 앓는 서민주택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동네는 전철역에서도 한참 떨어진 한갓진 동네이기에 봄밤이 되어도 주민들이 모이는 일이란 거의 없다. 그런데 아파트 주민과 주택가 주민들이 슬픔과 분노의 촛불을 들고 모였다.
세월호 참사가 아니었다면 한 자리에 마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스스럼없이 모여 촛불을 켜면서 희생자들과 실종자 그리고,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함께 눈물 흘렸다.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 학부모와 교사 등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포스트잇에 적어 놀이터 벽면에 부착했는데 그 내용이 절절했다.
- 언니오빠 나중엔 대한민국 말고 좋은 데서 태어나. 미안해 정말 미안해….- 마음으로 울고 행동으로 분노하려고 합니다.-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았을 텐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그렇게 추위, 고통, 두려움에 떨며 있으셨을 텐데…. 이렇게 잘 살고 있어서 더 미안해요. (김혜민, 초등학교 6학년)- 나의 나약함과 무기력함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어른이라는 게 부끄럽다. 내가 교사라는 게 더 많이 아프게 한다.- 촛불 말고 횃불 들고 싶다! (함박꽃)동네주민 300명 촛불... 신부님 "촛불이 횃불 됐으면"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위한 의왕시민 촛불문화제'가 의왕시 내손동 사거리 놀이터에서 지난 4월 30일부터 2일까지 열렸다. 날마다 100명 가량, 사흘간 300여 명의 동네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촛불문화제가 진행됐다.
최재철(천주교 수원교구 의왕 왕곡성당) 주임신부는 2일 촛불문화제에서 언론과 정부를 성토했다.
진도에 다녀왔다고 밝힌 최 신부는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외면한 채 정부를 대변하는 앵무새 방송을 하고 있다"면서 "참사 초기에는 분노했는데 참사의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경악하고 있다. 이게 나라이고, 정부인가"라고 규탄했다.
최 신부는 또한 "자식이 없는 저의 가슴도 이렇게 미어지는데 유족과 실종자 부모님의 가슴은 얼마나 미어질지 헤아리기조차 힘들다"면서 "이대로 가만 있다가 아이들에게 이런 사회를 물려주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다. 가만 있으면 안 된다. 촛불이 횃불이 됐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등대안벼리학교' 학부모인 이미래심(여, 49)씨는 "20대를 전두환 노태우 독재정권과 싸웠고, 30~40대에는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그것은 자식들에게 마음껏 뛰노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였다"며 "그런데 정부는 언론을 통제하고, 자본은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면서 세월초 참사를 일으켰다"고 성토했다.
이씨는 또한 "이대로 가만 있으면 아이들에게 나쁜 세상을 물려주게 된다. 나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독재 권력과 나쁜 자본과 싸우겠다"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 주려면 촛불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돈과 권력이 아닌 사람 중심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서는 국악인과 동네 학생들의 연주가 진행됐다. 문경종(54) 경기국악교육문화원 예술감독은 영화 <타이타닉> 주제가와 찬송가 '하늘가는 밝은 길'을 해금산조로 연주했다. 장유리(중3)양은 플루트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했고, 윤화선(초4), 김서희(초4), 박현영(초3)은 오카리나로 '운명과 연심'이란 곡을 트리오로 연주했으며, 참가자들은 '상록수' 등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7일부터 다시 촛불... 동네 시인 "두려움과 무기력함 떨치겠다"
이날 행사를 진행한 백승연(45)씨는 "안산에서 살다가 내손동으로 이사 왔는데 만일 그대로 살았다면 고등학생인 우리 아이가 참사의 피해자가 됐을 수도 있다"면서 "뉴스를 보며 혼자 울고, 분노하다가 뜻 있는 동네 주민이 제안해서 촛불을 들고 모이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백씨는 "마음 같아선 진도 팽목항과 안산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자녀 양육과 가정살림 때문에 동네에서 촛불문화제를 계속할 계획"이라면서 "프로그램을 준비할 여력이 없지만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힘들지만 촛불문화제를 계속 진행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3일부터 6일까지 연휴기간은 쉬고, 7일 저녁 7시30분부터 촛불문화제를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촛불문화제를 제안한 동네 시인 박정일(49)씨는 "다시는 이런 일은 없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괴로워했다"면서 "어른들에 의해 희생된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이 두려움과 무기력함을 떨치고 촛불 하나 올리기 위하여 문화제를 제안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