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달 내내 뱃속에서 키운 내 자식,이 세상, 뭐가 그리 보고 싶었는지 안간힘을 쓰며 나의 자궁 밖으로 나온 우리 아가,그 아이와 만남을 통해 나는 엄마가 되었습니다.본능적으로 허둥지둥 젖을 물리고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아 목욕시킬 때 어깨에 힘을 주고 씻겼던 내 자식, 방긋 웃는 그 웃음에 나의 가슴은 콩당콩당 뛰었습니다.'엄마'인지 '어마'인지 태어나서 처음 불러주는 아이의 목소리에 나는 여자에서 엄마가 되었습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이제라도 우리는 나서야 합니다.'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나는 나의 '안녕'이 제자리에 있는 것을 보며 '감사해야지, 더 잘해야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죄책감에 휩싸이고, 나에게 언니이고 동생인 단원고 엄마들이 영영 엄마이기를 포기하고 살아갈 것입니다.촛불을 들어주세요!내 아이를 위한 저녁밥을 더 일찍 먹이고 친구들과 한 약속은 전화 안부로 대신하고 쌓인 일들은 낮에 열심히 하고 저녁마다 촛불을 들어주세요!"
위 글은 경기도 안산에 살고 있는 엄마가 세월호 희생 학생 가족을 위해 지난 4월 28일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한 카페 '엄마의 노란손수건'(
http://cafe.daum.net/momyh)에 올린 글의 일부다.
세월호 참사로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간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엄마들이 '작은 행동'에 나섰다.
이 글을 쓴 카페 운영진 '정인맘'은 노란손수건 제안과 관련 "우리들이 직접 피해 당사자는 아니지만 우리들의 언니이고 동생들인 단원고 부모님들과 가족들 옆에서 슬픔을 함께 나누자는 것"이라며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엄마들의 목소리로 작은 행동을 통해 단원고 엄마들에게 용기를 주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열 달 내내 뱃속에서 키운 내 자식, 금쪽같은 내 새끼'를 잃고 억장이 무너진 단원고 엄마들과 가족들을 위로하고 함께 용기와 희망을 되찾기 위해 나선 것이다. 진도 앞 바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돌아오는 날까지 함께 촛불을 들자고 호소하는 것이다.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 그냥 덮어 둘 문제 아니에요"'엄마의 노란손수건'은 안산의 엄마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으나 지금은 전국의 엄마들이 참여하고 있다. 개설 5일째인 2일 현재 카페 회원 수가 5000명을 넘었고, 2일 하루 방문자 수만 7000명을 넘어섰다.
운영진은 8명이다. 운영진 중에는 세월호 피해자 가족은 없다. 육아휴직 중인 주부이거나 직장맘들이다. 엄마들은 별도의 카톡방을 만들어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온라인 회의도 한다.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친 지난 2일 오후 8시. 손이 곱을 정도로 추운 날씨에도 머리에 노란 손수건을 두른 엄마들이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17번째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실종자 무사귀환을 위한 안산시민 촛불 기도회'에 촛불을 들고 모였다.
앞줄에 나란히 앉은 엄마들은 '내 새끼 한 번만 안아 봤으면',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대한민국', '엄마 눈앞에서 아이들을 수장시키는 나라', '비리의혹업체 언딘을 믿을 수 없다' 등의 글귀를 적은 노란 천을 펼쳤다.
광장 한 켠에서 만난 '정인맘'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촛불기도회에 나온 엄마 몇 명이 모여 우리뿐이 아니라 엄마들이 함께 해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을 갖고 시작했는데 벌써 5천명이 넘어서 부담스럽기도 해요"라고 운을 뗐다.
엄마들은 무엇 때문에 카페를 만들었을까. 촛불을 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정인맘의 답변은 진솔했다.
"솔직히 남의 자식이 잘돼야 내 자식이 잘 되는 거 아니겠어요. 엄마는 자식의 일에 있어서는 굉장히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저도 제 자식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 사명감 없는 언론, 생명을 망가뜨리는 관료 등 이런 문제는 그냥 덮어둘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아이들과 나중에 태어날 손주들한테서도 이런 문제들이 똑같이 반복된다면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흥분하지 않고 진정성을 갖고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카페에서 엄마들의 제안이나 요구가 다양할 텐데 활동 수위는 어떻게 조절하는 걸까?
"우리 카페는 안산 촛불이 꺼지지 않게 지지하고, 전국으로 촛불이 퍼지면 엄마들이 함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요. 온라인상에서 엄마들의 요구를 존중하면서 엄마들이 촛불을 들고 그를 통해 힘을 얻는 게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엄마들이 건강해야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으니까요. 촛불 추모부터 박근혜 대통령 퇴진까지 수위가 다양한데 중심을 잡아서 함께할 수 있는 또 힘을 보탤 수 있는 방향으로 하려고 해요."카페 '엄마의 노란손수건'을 보도한 일부 언론에 이르자 지금까지 다정한 톤으로 말하던 정인맘의 어감이 단호하게 변했다.
"일부 언론에서 우리 카페를 피해자 엄마들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 엄마들이 무슨 경황이 있다고 만들고 하겠어요.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생각해요. 기자들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없어서 다시 한 번 실망했어요. 그 기사들은 명백히 오보예요. 혹시라도 피해자 가족에게 누가 될까 조심스러워요."엄마들은 카페를 언제까지 운영할 생각일까? 카페 운영의 대원칙은 단원고 학생들과 유가족에 맞춰졌다.
"촛불을 드는 한 계속해야죠. 특히 단원고 아이들이 마지막 1명까지 엄마아빠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까지는 반드시 운영할 거예요. 만에 하나 그전에라도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대책위원회에 누가 된다면 그분들 입장을 최우선으로 존중해서 카페를 닫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엄마의 노란손수건'은 행동 수칙도 정했다. 노란손수건 머리에 쓰고 엄마들의 요구가 적힌 노란 천을 들고 촛불 맨 앞자리에 앉기, 촛불 참가가 어려운 엄마들은 저녁 8시 불을 끄고 3분간 묵념하기, 현관문·자동차·유모차·베란다에 노란리본달기, 자신의 요구와 바람을 담은 피켓을 들고 동네 1인 시위하기다. 시한은 세월호 참사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될 때까지다.
"지금은 촛불만 들고 있을 때 아냐"... 거리로 나서는 엄마들 엄마들의 행동 수칙은 말에서 머물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여자에서 엄마가 된' 엄마는 강했다. 2일에는 닉네임이 '잡초'인 엄마가 '이것이 나의 애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1인 시위를 한 사진을 카페에 올렸다. 그리고 물었다. "나는 두 번째였습니다. 다음은 누구세요?"
엄마들은 5월에 거리로 나선다. '5월 8일까지 우리아이들이 엄마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 세상의 엄마들에게 5월 공동행동을 제안했다. 안산문화광장에서 매일 오후 8시에 열리는 촛불모임에서 '직접 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엄마의 노란손수건'은 오는 5일 3시에 화랑유원지 3주차장(오토캠핑장 옆)에 모여 합동분향소에서 단체로 조문한 후 단원고까지 침묵행진을 하기로 했다. 검정색 드레스코드 차림에 엄마의 마음을 담은 손 피켓을 가지고 오면 된다.
다시 정인맘에게 '5월 공동행동'에 나선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이 대목에서 정인맘의 목소리에서 물기가 배어 나왔다.
"예전에 울고만 있었는데 이제 한 발짝 나아가서 구체적인 행동을 해보자, 지금은 촛불만 들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서 5월 5일에 안산으로 모여주세요, 이렇게 결정했어요. 저희는 안산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단원고가 있지만 우리도 이웃이잖아요. 제가 잘 아는 언니 딸이 죽었고, 아는 언니의 회사 동료 딸이 죽는 등 이렇게 된 거예요. 5월은 어린이날에 어버이날까지 가정의 달이잖아요. 더 가슴이 아파요. 그래서 촛불만 드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부모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거예요."온라인에서는 현재 다음 아고라에서 '5월8일까지세월호실종자전원부모품으로'(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53027) 국민청원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8일까지 세월호 실종 학생들이 모두 부모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국민의 명령'을 내려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2일 현재 서명인원은 400명을 넘었다.
카페 회원들은 "운영자님. 강동촛불 오늘부터 해요", "저도 이번 토요일 5월 3일 아이들 데리고 촛불집회 가겠습니다", "우리 동네도 있어요. 엄마들과 함께 갈게요!", "부천역에서도 매일 저녁7시에 촛불 들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도봉 쌍문역에서도 매일 촛불이 열립니다", "작은 힘을 보탭니다. 분노가 멈추지 않네요" 등의 글을 올리며 전국의 엄마들과 함께 부지런히 동행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그래스루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