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20일이 지났습니다. 시민들의 슬픔과 안타까움, 분노의 감정도 여전합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우리를 '괴물'로 만들었을까요. <오마이뉴스>는 김수행, 홍성태, 김택환 등 3인의 교수를 만났습니다. 우리사회를 되짚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천박한 한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부재, 무능한 정부의 리더십을 고민해보고, 대안을 생각해봅니다. 두번째는 삼풍백화점 참사 이후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을 처음 번역하고 <대한민국 위험사회>를 쓴 홍성태 상지대 교수입니다. [편집자말] |
"한국은 '위험 사회' 축에도 못 끼는 '비리 사회'입니다."
지난 2일 인터뷰는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최근 '위험사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다면서도, 우리나라는 아직 '위험사회'라고 부르는 것조차 '사치'라고 꼬집었다. '비리사회'를 넘어 '정상사회'가 돼야 비로소 '위험사회'를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30여 년 전 서구에 '위험 사회' 이론이 급부상한 건 핵발전 사고 때문이다. 울리히 벡의 '위험 사회'는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원전) 사고, 그 이론적 뿌리인 찰스 페로의 '정상 사고' 개념 역시 1979년 미국 스리마일 핵발전 사고가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도 2011년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탈핵' 여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핵발전 비중을 확대하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지난해 말 내놨다.
"핵발전 때문에 '위험사회론' 등장... 한국은 '악성위험사회'""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는 한국에 적용되지 않아요. 울리히 벡이 대상으로 삼은 독일은 비리가 없었어요. 우린 박정희 시대부터 성과주의, 결과주의, 배금주의, 폭력주의, 국가주의, 군사주의에 절어 있어요. 박정희 때 만들어진 적폐가 아직 해소가 안 되고 있는 거죠. 아이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도 획일적 군사주의가 교육현장으로 전파된 거예요. 매뉴얼대로 라고 해도 부당한 지시는 따르지 않는 비판적 인식을 키워야 하는데, 교육 현장에선 위급한 상황에서 비판적 인식이 작동하지 못해요."홍 교수는 '기술의 위험도'와 그것을 이용하는 '사회의 정비도', 2가지 기준으로 4가지 유형의 사회로 구분했다. 독일은 고정비 사회이면서 핵발전 기술을 사용해 위험이 발생하는 반면 우린 저정비 사회에서 핵발전이란 고위험기술을 사용해 더 위험할 수밖에 없다. 홍 교수는 이를 '악성 위험 사회'라고 불렀다.
"이명박 정부는 이 문제를 도외시하고 더 악화시켜 아예 '사고사회'라고 불렀어요. '위험사회'란 표현으로 부족하고 오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우린 정부와 기업이 나서 사고를 유발하는 사회예요. 공식적으로 좋은 말하면서 이면에선 각종 비리로 사고 유발하고 피해와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해 이익을 취하는 방식이죠.""비리와 부패로 '사회 질'이 악질적인 상태에선 어떤 기술이든 흉기가 될 수밖에 없어요. 찰스 페로가 말한 '정상 사고'는 핵발전을 염두에 둔 거예요. 현대사회가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해 만든 핵발전은 도저히 안전하게 관리할 수 없는 기술이에요. 애초부터 설계연한 30년이 지나면 취약해져 더 연장하면 안 돼요. 환경단체가 고리, 월성 1호기 연장을 강력히 반대하는 이유예요. 이 문제도 심각해 다음엔 영남이 지옥화될 수도 있어요. 찰스 페로의 대안은 핵발전 같은 절대적 위험시설은 사고가 터지면 대처할 수 없고 원상회복은 더 불가능하기 때문에 폐기만이 답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린 '정상적 사고'가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죠."
"대형 사고는 비리세력 복귀 상징... 지방선거에서 심판 이뤄져야"
세월호 사고도 이런 '비정상적 사고'지만, 그 대책을 논의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망각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워낙 큰 사건이라 피로도가 커져 잊고 싶어하는 경향도 생길 거예요. 하지만 망각하는 진짜 원인은 피로해서가 아니라 포기하는 거예요. 이래봐야 나만 고통스럽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마음으로 추모하고 잊자. 그러면 일을 저지른 자들은 좋아하겠죠.(중략)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과거 비리 세력이 복귀하면서 '규제 완화'란 이름으로 기업 비리 용인하고 사학 비리 세력 복귀도 이뤄지고 있어요. 단순한 시대의 회귀가 아니라 사회가 무시무시한 지옥화되는 거예요. 대형 사고는 이런 걸 보여주는 사회적 사건이에요. 절박한 심정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이런 사고가 계속 나게 돼요."시민단체들과 연대해서 비정상적인 대형 참사를 막을 근본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 홍성태 교수는 언론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를) 잊지 않으려면 언론 역할이 중요해요. 그동안 일어난 대형 사고를 보며 무엇을 잊었고, 무엇을 하지 못했기에 계속 되풀이 되는가 되짚어봐야 해요. 삼풍 이후 재난 체계 만들고 2004년 전면 개편했지만 계속 사고가 나고 있어요. '언딘' 같이 재난 체계를 상품화한 업체도 나오고 있어요. 비리를 근절하지 못하고 재난대책만 추진하면 비리의 먹이를 더 키우게 돼요. '언딘'이 그 생생한 사례예요."그러면서 홍 교수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6월 지방선거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심판이 이뤄져야 해요. 정치적 심판이 아니라 비리와 무능에 대한 정책적 심판은 당연해요. (정부가) 이번 사고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성한다면 신경적질 반응을 보이거나 정략적 대응을 하면 안돼요. 잘못에 대한 질책은 받아들여야죠. 규제 완화부터 중단하고 기초연금 강행 중단하고 실질적으로 국민 안전 위한 일을 해야 해요. 이런 참사를 빚은 비리와 무능 문제가 국가와 국민 안위에 관한 문제로 커질 수밖에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