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어떤 일에 대한 심적 부담을 안고 잠이 들면 자주 꾸는 악몽이 있습니다.
꿈 속에서 저는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 또는 기말고사가 코앞에 닥쳤습니다. 그런데 시험 준비는 하나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공부해야 할 과목은 많고, 어떤 과목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합니다.
거의 20년 전의 과거이지만, 지금까지도 악몽으로 등장하는 고등학교 시절은 제 인생의 트라우마입니다. 한국의 입시지옥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악몽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악몽은 현실이며, 우리 사회의 크나큰 트라우마가 될 것입니다.
며칠 전, 세월호 침몰 사고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구보현양의 오빠 구현모군이 동생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읽었습니다(관련기사 :
"착한 내동생, 못된 선장 말 잘 들어서... 예쁘단 말 많이 못 해줘서 정말 후회돼").
동생을 잃은 오빠의 절절한 슬픔에 마음이 아팠지만, "이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단원고 2학년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친구들은 정말 괴로울텐데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다"는 말에서 더더욱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한국은 아이들에게 형제·자매, 친구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심리적 여유마저 허락하지 않는 잔인한 나라입니다.
작년,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가 주최한 동물보호교육 워크숍에 참가했습니다. 그곳에서 영국왕립동물학대방지연합(RSPCA)의 폴 리틀페어씨가 "아동학대가 있는 가정에 동물학대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스스로 저항할 힘이 없는 '약자'에 대한 학대는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간디는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약자에 대한 착취는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기에, 한 국가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으로부터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인간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동물을 홀대하지 않는 국가가 사람을 홀대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소 이 말을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즐겨 썼지만, 요즘은 이 말에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약자인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야생에서의 자연스러운 삶을 박탈당하고 눈요깃거리로서의 삶을 강요받는 동물원 동물들의 삶을 담은 황윤 감독의 <작별>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장면이 잠시 등장합니다.
눈요깃거리로서의 삶을 강요받는 동물원 동물은 공부기계와 다름없는 삶을 강요받는 아이들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과 동물 모두 '스스로 삶을 선택할 자유가 없는 우리 사회의 약자'이니까요.
아이들이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하냐고 물으면, 우리 어른들은 '너희 자신을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솔직한 답일까요? 그저 아이들이 남들보다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어른들의 불안을 잠재우려고 공부만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동물을 사랑해서' 동물원에 간다고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배우는 것은 인간의 오락을 위해 동물을 가두어도 된다는 지배논리인 것처럼 말이지요.
수학여행은 아이들이 공부를 강요받지 않고 숨통을 틔우는 흔치않은 기회입니다. 어른들은 이런 기대에 부푼 아이들을 위험에 몰아넣고 "가만있으라"고 했습니다. 비겁한 어른들이 탈출하는 동안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서로 양보하고, 자신들보다 어린 6살짜리 아이부터 구출시키는 '어른스러움'을 보였습니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의 지시를 신뢰한 그들은 차가운 물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수학여행 폐지'라는 미봉책으로 아이들의 숨통을 더더욱 조이려고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합니다. 어른들의 모범답안을 강요하며 한창 꿈꿔야 할 인생의 찬란한 시기를 입시지옥으로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모든 책임을 선장에게 전가하고, 진짜 원인인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대통령과 정부를 대신해서 사과합니다.
미안하다면 바꿔야 합니다. 이번 사고가 그저 슬픔과 애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성찰과 실천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기형적인 사회를 바꾸기 위해,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서있는 자리에서 가능한 고민을 하겠습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잃어버린 사회를 바꾸기 위해 고민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머릿속의 공허한 생각에 머물지 않게 하겠습니다. 실천을 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