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20일째. 40여 명이 여전히 바다에서 실종상태다. 이처럼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갈수록 커지자 엄마들까지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역에 유모차를 끌고 나왔던 엄마들이 어린이날인 5일에도 서울 홍대입구역에서 '엄마니까 말할 수 있다'는 주제로 2차 행진을 벌였다.
"우린 조직도 정당도 아니에요. 그냥 엄마입니다. 살 수 있었던 생명들이 무참히 죽었는데 내 아이와 어린이날에 즐거울 자신이 없어요." 어린이날인 5일 오후 1시께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 '자연주의출산 가족모임' 200여 명의 회원들이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한 침묵 행진을 했다. 그들은 "어린이날 놀이동산에 가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지금 대한민국이 얼마나 병들었는지 보여주는 게 먼저"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행진을 제안한 전주영(30)씨는 "100만 원 가까운 세금을 내는데 정부는 왜 아이들을 살리는데 총력을 다 안 했는지 분노감에 치민다"며 "정부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전씨는 남편과 20개월이 된 아들 호연이와 함께 거리로 나왔다. 그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얘기하면서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는 "학생증을 쥐고 있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며 "이게 엄마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또 "해수부장관이나 대통령이 아닌 이상 내 아이를 지킬 수 없겠더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호연이한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어 거리로 나왔다"며 "어린이날 공연보고 노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먼저"라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박지은(40)씨는 초등학교 6학년, 네 살배기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나왔다. 박씨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우리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이번에 알았다"며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밖에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가던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나왔다"며 "엄마들이 이 나라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박씨의 아들 김아무개군은 "왜 형누나들이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불쌍하다"며 "구할 수 있는 거 아니었냐'고 기자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세월호 사고 낸 건 선장, 그러나 사고 참사로 확대시킨 건 정부"
또 정부의 대처에 의혹을 제기하면 종북으로 몰리는 현 상황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거셌다.
8개월 된 아이와 함께 나온 임유선(33)씨는 "집회에 나가면 무슨 종북이냐 좌파냐 댓글에 있던데 그런 거 모른다"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엄마로서 나온 것뿐"이라고 단언했다.
임씨는 "지금 진도에서 유족들이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걷는 것으로 그들의 목소리와 마음을 대신 말해주고 싶다"며 "정부는 초동대처를 엉망으로 하더니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는 변명만 늘어놓고 책임지는 사람은 결국 아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사고를 친 건 선장이지만 사고를 참사로 확대시킨건 정부"라며 "청와대가 책임을 회피하면 도대체 우리는 누가 보호해주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통령은 제발 언론을 호도하지 말고 진실을 제대로 국민에게 알려주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유모차뿐 아니라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들도 상당수였다. 이들은 자녀에게 오늘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고 기억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딸 조요엘(6)양과 함께 거리로 나온 정한샘(36)씨는 "오늘 어린이날이라고 여러 매체에서 노래도 나오고 아이들의 꿈을 키우자고 나오는데 이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무의미한 소리"라며"요엘이가 자신이 살아갈 한국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올바른 사고를 하도록 내가 먼저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