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사고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큰 좌절감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의 헛된 희생을 두고 어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정부수반인 대통령이 보인 반응은 자신이 책임진 정부를 남처럼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열흘도 훌쩍 넘어 나온 첫 사과는 유가족이 아닌 국무위원들 앞이었고, 분향소 조문도 유가족이 아닌 어느 할머니 조문객이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를 실망시킨 이는 대통령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유가족이 대통령의 이런 사과를 못 받겠다고 하자 청와대 대변인은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현장을 방문한 어떤 장관은 약상자를 치우고 '계란을 넣지 않은 라면'을 먹었습니다.
슬픔과 절망이 가득한 체육관에서 기념사진을 찍자던 고위 공무원도 있었고, 서둘러 사임을 발표했다가 질타를 받은 총리는 장례비를 보상금에서 삭감하자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구조를 담당한 정부기관들은 책임 떠넘기기와 알량한 공 떠맡기를 자처했고, '언딘'이라는 사설 업체와 해경 사이의 이해할 수 없는 유착관계도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사건들이 사고 후 현재까지 매일같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부의 무능과 끝도 없는 의혹에 국민의 질타가 쏟아지자 사건의 실체를 취재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해야 할 주류 언론들이 눈을 닫고 입을 막더니 새로운 책임소재자, 즉 가상의 적을 양성하기 시작합니다.
'사상 최대의 구조 작업'이라고 거짓 기사를 썼던 모 언론은 한 해직기자에게 욕을 듣자 되려 그를 고소한답니다. 종편과 뉴스 전문채널에서는 유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이 '다이빙벨'이며 '손석희 뉴스'라고 손가락질하기 바쁩니다. 포털의 댓글부대는 다시 한 번 종북과 지역감정을 들먹이고 유가족까지 비난합니다. 대한민국 곳곳이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그래서 우리는 공포와 어둠 속에서 죽어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시스템에 속할 뿐 아니라 이를 묵인한 장본인이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우리 잘못들을 만회할 수 있을지.
온라인에서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노란 리본으로 바꾸고 오프라인에서 조문을 해보지만 체제가 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도덕 기준은 힘이 없고, 욕망의 에너지가 움직이는 시스템의 거대한 톱니바퀴는 우리의 무력함마저 짓이겨버립니다. 이제 보름이 지났다고 보수언론은 다시 민낯을 드러내고 공중파 티비는 깔깔거리는 예능 프로그램을 다시 틀기시작합니다.
낯선 광경이 아닙니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또 잊어버리고 살면 될까요? '살인자' 선장을 단죄하고 이단종교의 '교주'를 구속하고 초기대응을 엉망으로 한 몇몇 고위 관료와 실무자들 직위만 박탈한다면 이 시스템이 고쳐질까요? 구조적인 문제를 사람의 문제로만 환원하면 안된다는 것을 성수대교 붕괴 등 수많은 재난을 겪으면서도 아직 배우지 못했나 봅니다.
설령 그런 임시변통으로 시스템을 고친다 하더라도 그릇된 욕망들은 여전히 체제의 빈 틈을 찾아다니며 폭식을 취하여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밀도높은 구멍으로 또 다른 미래의 희생자들이 반복하여 빨려들어갈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재난으로부터,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할 것 같은 이 무력감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을까요?
역사를 되돌아보면 위로부터의 개혁은 아래로부터의 개혁보다 성공확률이 낮고 지속성도 짧았습니다. 이미 짧은시간에 공고해진 이 모순덩어리 체제에서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관료제의 마술이 아닙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스템 밖에서 시스템의 허술한 곳을 찾아다니며 고장난 곳에 망치를 두드릴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만인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장점을 극대화시킬 구체적인 존재가 필요합니다. 만인을 끌어들여 여러 지점에서 사회적 압력을 행사하게 할 수 있는 허브가 필요합니다.
시민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그 존재가 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이들로 시민운동과 시민언론을 꼽고 그들에 대한 참여와 후원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곳곳에 산재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시민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네트워크에서 모든 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기존 정당과 기존 언론이 움켜잡고 있는 거대한 기득권을 무너뜨리고 헌법이 가장 먼저 보장하는 주권재민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당대에 안전한 국가에서 우리의 권리와 책임을 주장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후대에게 조금이라도 더 떳떳한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압축성장으로 비대해진 이 나라에, 국가는 있지만 국민의 힘은 부족하고, 헌법은 있지만 헌법가치는부족합니다. 이제 성장을 위한 질주는 멈추고 주위를 돌아봅시다. 부족하지만 연대할 시민운동이 있고 미숙하지만 후원할 시민언론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양분을 주어 키워야 할 이들은, 욕망기계인 기존 시스템이 아니라 깨어있는 한 사람의 시민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이 세상을 차근차근 바꾸어 나가게 될 그들을, 아니 우리 자신을 만들어내야할 의무가 생긴 지 이미 오래입니다.
한동안만 미안해하고 잊어버리는 일들을 더 이상 반복하지맙시다. 냉소주의에 빠지거나 포기하지도 맙시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고 해야할 일을 시작합시다. 그것이 우리가 망자들에게 할 수 있는 진심 어린 사과입니다.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시민언론을 후원하면서 차근차근 시민들의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미력해보이는 그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모일 때, 바라는 기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야 국민도 살고, 민주주의도 살고, 지나간 역사와 다가올 미래도 살 것입니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우리가 건져올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이미 실패한 기형적 중앙집권 권력이 아니라 분화되었으나 연대하는 촘촘한 시민권력입니다. 이길 것처럼 지는 역사는 이제 그만 반복하고, 질 것처럼 보이지만 이기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시민운동과 시민언론이 유일한 정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시민들이 지금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가 예측가능한 검증된 선택지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 시민단체 참여와 시민언론 후원을 제안합니다. 우리의 양심의 가책이 조금이라도 육화되어 활동하는 생명력을 갖기를 제안합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돌아오기를 제안합니다.
이렇게 밖에 못하는 우리들이 미안합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으로 끝내지 않겠습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