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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꽉 차 있다. 심각하다. 적정 승객 수와 화물량을 초과한 세월호 같다. 현재 지구가 감당하고 있는 경제·사회적 규모는 지구 1.4개가 있어야 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2030년에는 지구가 하나 더 있어야 한다고도 한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지구는 무너질 것이다. 그때 절규해 봐야 소용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무엇보다 경제 성장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강하다. 거의 맹신 수준이다. 성장은 모두를 잘 살게 해 준다, 성장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끝없이 부를 키우는 게 중요하다 등등.

너무 당연해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실제 그럴까. 놀랍게도 현대경제이론과 시장자본주의의 아버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책에 소개된 몇몇 사례를 보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였다. 그는 경제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인간 관계와 창조, 종교 등 우리의 진정한 문제들이 마음과 머리를 가득 차게 될 때가 머지 않았다고 말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경제학의 개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1848년의 <경제학 원론>에서 성장하는 경제가 '변화하지 않는 경제 상태'로 옮겨 갈 것으로 예상했다.

"성장에 반대하는 논리가 자본주의 체제에 의문을 제기하려는 급진세력의 주장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경제학자들이 오래전부터 모든 경제가 당면하게 될 한계로 인식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본문 341쪽)

저자의 말처럼, 성장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저자는 2008년에 일어난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대붕괴'의 서곡으로 묘사한다. 이 대붕괴는 생태계 변화와 자원의 한계가 세계 경제에 얼마나 큰 파멸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경제가 성장해야 모두의 살림이 나아진다는 이야기

저자는 그러한 세계 경제 시스템이 기대고 있는 현재의 성장 모델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1도 전쟁'으로 이름 붙인, 기후 변화에 맞선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경운동가이자, 지구의 지속가능성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론적 지도자답게 그가 제시하는 대안과 방법들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읽히는 이유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세계의 대부분은 성장주의가 지배한다. 성장 담론을 옹호하는 이들의 기본전제는 간단하다. 경제가 성장해야 우리 모두의 살림이 나아진다는 것.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도 함께 부자가 된다는 식이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나 사람들이 서구의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하거나 모방한 배경일 것이다.

"우리는 물질적인 것을 더 많이 누리기 때문에 점점 더 넉넉해지는 것처럼 비치지만 실제로는 그런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위해 온갖 형태의 숨어 있는 자본을 쓰고 있어 실질적인 순(純)부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신용카드를 한도만큼 마구 쓰면서 휴가를 즐기고 좋은 옷과 대형 텔레비전을 사들이는 것과 같다. 이처럼 신용카드를 마음껏 쓰는 한 달 동안은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겠지만, 다음 달에 청구서가 들어오면 결제를 못 하게 된다."(본문 331쪽)

양적 성장의 한계는 명백하다. 저자는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연구 결과를 인용해, 대략 한 가구의 연간소득이 약 6만 달러가 될 때까지는 삶의 질이 대폭 향상되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 평균적인 수준의 향상을 기대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이 소개하는 증거들은 많다. 유럽 신경제재단(NEF)의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 결과를 보자. 이 조사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못 되는 부탄은 전체 국민의 97%가 "나는 행복하다"고 답변해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반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는 우리나라는 동일한 조사에서 143개국 중 68위라는 낮은 행복도를 보여줬다. 행복이나 삶의 질이 돈이나 경제 성장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쇼핑'이라는 문제

저자는 어느 사회든지 불평등이 심화하면 부유층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경제 성장책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부유층을 더욱 부유하게 만듦으로써 불평등을 깊게 해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게 한다고 주장한다. 빈곤의 고통을 덜어 준다는 것이 경제 성장을 옹호하는 논리가 될 수 없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성장론자들이 경제 성장을 옹호하면서 즐겨 쓰는 '낙수 효과' 이론이라는 게 있다. 신빙성이 있을까.

"내가 설명한 논리가 별 효과가 없다면 신경제재단이 제시한 이런 사실을 활용해 보라. 1990년부터 2001년까지 10여 년 동안에 이룩한 경제 성장의 성과 중에서, 하루 수입이 1달러 미만인 사람들의 빈곤을 줄여 주기 위해 쓰인 돈은 성장 성과 100달러당 0.6달러에 불과했다. 이처럼 기득권층은 빈곤층의 어려움을 더는 데 쓰인 0.6달러를 내세우면서 그들이 누릴 99.4달러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본문 336쪽)

저자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의 경제 시스템은 소비를 기반으로 한다. 쇼핑 문제를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버팀목으로 보는 이유다.

저자에게 쇼핑은 매우 중대한 문제다. 저자는 삶의 질 향상이 물건을 많이 사들이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꼬집는다. 그는 사람들이 쇼핑으로 인해 여가 시간이 부족해지고, 근무는 만족스럽지 못하며, 빚은 계속 쌓이는 악순환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빈곤과 불평등도 대붕괴를 막기 위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본다. 저자는 특히 불평등 문제는 사람이 개입하지 않을 경우 시스템이 스스로 바로잡아 나가지 못하는 부문들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중요하게 여긴다. 

저자는 최고 경영자들의 수십억 내지 수백억 원대 연봉이 과연 용인할 만한지 묻는다. 그들이 그토록 많은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거나, 회사에 기여한 일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들은 누가 결정하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계약의 힘을 믿기에는 모든 게 너무나 허술하다. 저자가 사회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일정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저자가 인용하는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켓의 연구 결과를 보자. 여기에 따르면, 사회적 병폐를 예보하는 가장 큰 요인은 빈곤이나 불이익의 절대적 수준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불평등이나 소득 차등의 정도다. 경제 성장이 부를 키우면 불평등한 상황이라도 빈곤이 줄어들고 사회문제도 감소할 것이라는 주장이 한낱 허상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사회가 공평해지면 유복해질까

사회가 더욱 공평해지면 유복해진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도 흥미롭다. 한 사회의 공평성이 제고되면 상위 25%의 소득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의 행복도 증진된다는 게 이들 연구의 공통적인 결론이라고 한다. 최상위 소득 그룹이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들보다 소득이 적은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불평등 문제를 간과하는 국가가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많이 사서 쓰는 것을 경제 성장의 전제로 보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저자는 경제가 성장하면 대체로 불평등의 정도가 커지고, 이는 다시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사회적 갈망을 증폭하면서 소비 증대로 이어지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욕구에 따라 더 많은 소비를 위해 더 많은 소득을 원하게 된다.

"소득을 더 많이 얻으려면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사회의 불평등성이 심화되면 될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한다. 장시간 일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친교를 쌓아 가거나 공동체 생활을 누리거나 또는 그밖의 의미 있는 생활을 이어가는 식의,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할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생활은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더욱 키워 결국 더 큰 물질적 만족감을 얻고자 하는 욕구를 강화시킬 것이다."(본문 403쪽)

저자에 따르면, 현재 추세를 따른다고 가정할 때 2050년의 경제는 지구 능력의 300~400% 사이에서 운용되는 규모라고 한다. 지구가 세 개나 네 개 필요하다는 말이다! 성장 신화를 버려야 하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는 '만들어진 사건'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규제 완화의 흐름 속에서 터진 일이다. 규제 완화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가. 투자를 늘려 돈을 돌게 함으로써 경제 규모를 늘리겠다는 것,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무분별한 규제 완화의 결과는 참담하기만 하다.

규제를 '암 덩어리'에 빗댄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이 위험하게 보이는 이유다. 필요가 있어 생긴 게 규제 아닌가. 무언가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제2, 제3의 세월호 사고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총체적인 대붕괴가 쓰나미처럼 몰아닥칠 것이다. 성장 신화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 책의 일관된 메시지다.

덧붙이는 글 | <대붕괴>(폴 길딩 지음 / 두레 / 2014. 3. 31. / 487쪽 / 2만5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대붕괴 - 기후 위기는 세계 경제와 우리 삶을 어떻게 파멸시키나?

폴 길딩 지음, 홍수원 옮김, 두레(2014)


태그:#<대붕괴>, #폴 길딩, #두레, #성장 담론,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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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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