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랑 친했던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오후에 카네이션 사가지고 집으로 온다네요."
8일 어버이날. 그는 아들 친구가 가슴에 달아줄 붉은 카네이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사랑스러운 아들에게서 카네이션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내년 어버이날에도 그는 아들이 주는 카네이션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의 아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2학년 박수현(17)군이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이 담긴 '15분 동영상'을 찍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단원고 아이들이 남긴 세월호에서의 '마지막 15분').
수현군은 매년 어버이날 꼬박꼬박 아버지인 박종대씨의 카네이션을 챙겼다고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기념일도 잊지 않고 챙기는 아들이었다. 누나와 둘이서 기념 그림책을 만들어 선물로 드리거나, 집에 풍선을 달고서 부모님을 기다리곤 했다. 아들이 없는 '잔인한' 어버이날을 맞게 된 박씨는 요즘 "소주 3병 없이는 잠들지 못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어린이날 박씨는 정부가 마련한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아들의 영정사진을 빼버렸다. <오마이뉴스>는 8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유를 물었다. 그는 "정부는 사건 진상조사는 제대로 안 하면서 계속 추모 분위기만 띄우고 있다"며 "우리 아이가 분향소 추모 행사에만 이용되는 것 같아 그곳에 계속 두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박씨는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수사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걱정했다.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비리에만 수사가 집중될 뿐 사고 초동대처와 구조과정에서의 의문점은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박씨는 "청해진해운만이 (사고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해경의 대응을 둘러싼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박씨는 아들이 억울함을 모두 풀고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사법적인 씻김굿'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책임자 사과와 처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정상적인 심판대 위에서 처벌받아야 할 사람은 처벌 받고 사과해야 할 사람은 사과하도록 해야 한다"며 "최소 이 정도는 돼야 우리 아이에게 씻김굿을 해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씨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수사가 제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있다"
- 지난 5일 합동분향소에서 아들 영정사진을 뗀 이유가 뭔가.
"지금 정부는 왜 사건이 발생했는지 진상조사는 제대로 안 하면서 계속 추모 분위기만 띄워 진실을 흐리고 있다. 우리 아이가 분향소 추모 행사에만 이용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추모를 받는 자체가 국민들께 누를 끼치는 것 같아 아이 영정사진을 가져왔다. 영혼이 아주 순수했던 우리 아이를 위해서도 그 방법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영정사진을 가져올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수현이가 합동분향소에서 친구들과 같이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사건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를 그곳에 계속 두고 싶진 않았다."
- 세월호 침몰 사고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말인가."그렇다. 사고 난 지 20일이 지났는데도 사고 원인이 제대로 밝혀진 게 하나도 없지 않나. 유병언 일가나 청해진해운 내부 문제만 나온다. 사실 조사하고 말고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맨날 똑같은 뉴스만 재탕, 삼탕 나오는 것에 염증을 느꼈다."
- 그 때문에 아들의 영정 사진을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한 건가."예전부터 해온 생각이다. 정부 합동분향소로 옮길 때부터 아이 사진을 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도 일단 두자 했는데, 며칠간 지켜보니 정부 태도에 달라진 게 없다. 앞으로도 달라질 것 같지 않다."
- 지금 영정사진은 어디에 있나."집에 있다. 수현이 책상 위에 올려놨다."
- 현재 진행 중인 세월호 침물 사고 수사에 문제가 있다고 보나."그렇다. 수사가 제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있다. 활쏘기 시합이라고 생각한다면, 활을 정중앙에는 안 쏘고 주변으로만 화살을 날려버리고 있다. 시간만 자꾸 흘러간다. 답답하다. 실력이 없어서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사고 원인, 유병언 일가와 청해진해운이 전부 아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수사 방향이 청해진해운에만 집중돼선 안 된다는 지적인가."이 사건은 시작부터 종료 시점까지 어느 하나 깔끔한 데가 없다. 우리 아이가 찍은 15분짜리 동영상을 보면, 이미 오전 8시 52분부터 배가 상당히 기울었다. JTBC <뉴스9>는 9시 이전에 이미 배가 30도 정도 기울어 복원력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진단했다. 배가 한 순간에 갑자기 기운 게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들이 공포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배가 서서히 넘어간 것이고, 그만큼 (구조할 수 있는) 상당한 시간이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배가 일찍부터 기운 것을 해경이 몰랐다고 해도 문제고 알았다고 해도 문제가 된다. 몰랐다면 직무유기고, 알았다면 대응 태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거니까. 이런 부분이 명확히 설명되면 정부의 수사결과를 믿겠다. 청해진해운에만 원인을 몰이붙이는 수사결과는 인정 못 한다. 청해진해운이야 사고 당사자이기 때문에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하지만 청해진해운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 해경 초동대처 과정의 의문점이 풀려야 한다는 뜻인가."그 부분을 포함해 침몰 이후 구조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도 설명돼야 한다. 언론에서는 침몰 이후 3일 동안 사람이 생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3일 동안 해경이 구조작업을 한 건 딱히 없었다고 본다. 헬기 몇 대만 나왔지 구조 자체는 지지부진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입증해줘야 한다."
- 사고 당일 구조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도 제대로 안 된 것 아니냐는 의문인가."사고가 일어난 날 바다에 몇 번 나갔다. 당시에 가서 보면 종이배를 띄어도 될 정도로 바다가 잔잔했다. 바다 안 유속은 얼마나 빨랐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
- 지금 검경합동수사본부는 해경도 수사 중이다."수사를 하긴 하는데, 여전히 해경이 합동수사본부의 일원이라는 게 문제다. 해경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서 의혹에 휩싸인 조직이다. 압수수색도 당했다. 그런 조직이 수사본부에 들어간 상태에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거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압수수색도 예고하고 들어간 것 아닌가. 그리고 솔직히 말해 사람(희생자·실종자) 숫자도 제대로 못 세는 사람들이 수사할 능력이 있나 싶다."
- 해경을 믿지 못하는 건가."어떻게 믿겠나. 시작부터 끝까지 거짓말로 일관했고, 사고 현황 숫자도 틀렸다. 틀릴 수는 있다. 하지만 정정하는 건 한번으로 족하다. 그런데 지금 정정만 몇 번째인가. 해경이 해온 걸로 봐서는 앞으로도 또 뭔가 정정할 것 같다."
- 아들 영정사진을 다시 정부 합동분향소에 옮길 의향이 있나."없다."
"아들 영정사진 다시 정부 합동분향소로 옮길 의향 없다"
- 장례를 치른 후 업무에 복귀했나."지난 2일부터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서 책임자 위치에 있어서 계속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 가족 모두 건강한가."건강하긴 한데 마음은 그렇지 않다. 나는 요즘 소주 3병 안 마시면 잠이 안 온다."
- 어버이날이다. 세월호 참사로 카네이션을 못 받게 된 부모님들이 많다."우리 아이랑 친했던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오늘 오후에 카네이션을 사가지고 집으로 온다고 했다."
- 수현 군은 매년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꼬박꼬박 챙겨줬나."당연히 챙겨줬다. 아빠 엄마 결혼기념일까지 꼭 챙겼다. 누나랑 둘이서 그림책 같은 걸 만들어서 주기도 했고 집에 풍선도 달아주고 그랬다."
- 지금 아들이 바라는 건 뭐라고 생각하나."우선 한 치의 찜찜함 없이 사고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혹시 씻김굿이라고 아는가? 사법적 차원에서 씻김굿(불의의 사고로 숨진 이들이 원한을 모두 풀고 저승으로 편히 갈 수 있도록 돕는 이별굿 - 기자 주)도 해줘야 한다. 정상적인 심판대 위에서 처벌 받아야 할 사람은 처벌 받고, 사과할 사람 사과하도록 해야 한다. 최소 이 정도는 돼야 우리 아이에게 씻김굿을 해줬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