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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 최고의 작가로 불리는 위화는 에세이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서 열 개의 키워드로 중국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거쳐 온 어제와 오늘을 깊은 통찰력 가지고 말한다. 원제는 '열 개 단어 속의 중국'이다.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 등 열개의 단어로 축약해 과거와 당대의 중국의 속살을 헤집는다.

덕분에 위화란 작가의 시선을 통해 낯선 중국이란 나라와 사회현상을 엿볼 수 있었고 또한 중국사회의 30여 년의 역사 속 작가의 독서와 글쓰기 변천과정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위화란 작가의 책읽기와 글쓰기 두 개의 키워드로 중국과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엿보았다.

학교 교정의 나뭇잎을 전부 먹어치우듯 독서에 탐닉하다

책표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 책표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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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없는 시대에 성장한 작가 위화의 독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가 흥미롭다. 초등학교 졸업하던 여름방학(1973) 문화대혁명이 7년째로 접어들고 있을 그 무렵 마을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었고 그의 아버지는 저자의 형과 자신에게 도서대출증을 만들어 주었다고 회고한다.

당시 중국사회는 거의 모든 문학작품이 '독초'로 분류되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이라고는 겨우 20여 종. 그것은 국내의 사회주의 혁명문학이었지만 그는 1960년대 초기 중국의 대기근 때에 베이징 대학 유학생들이 학교 교정의 나뭇잎을 전부 먹어치웠던 것처럼 그의 독서는 마을 도서관에 있는 나뭇잎보다 더 먹기 거북한 소설들을 먹어치웠다.

중학교 시절에는 이른바 독초라 불리는 소설을 읽었다. 마오쩌둥이 죽고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문학이 돌아왔다고 그는 회고한다. 서점에는 참신한 문학작품들이 가득해졌고 그 시기에 저자는 많은 외국 작가들의 소설을 사서 읽었다. 세 번째 독서이야기는 길거리 독서로, 대자보였다. 이는 문화혁명이 남긴 독특한 풍경이었다. 독서에 관한 네 번째 이야기는 독초라 간주되었던 금서들이 다시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톨스토이와 발자크, 디킨스 등의 문학작품이 처음으로 작은 마을의 서점에 도착하였을 때다.

사람들은 이 기쁜 소식을 달려가 아는 사람들에게 전했고 목을 빼고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처음으로 마을에 도착한 책의 수량은 한정되어 있었고 책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서표를 나눠주었고 긴 줄을 이었다. 서점 앞에서 밤을 새운 사람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이 추위에 언 상태로 책을 기다렸지만 책은 50권 밖에 안 되었고 책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불평과 한숨, 실의에 빠졌다. 그때의 광경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했다.

아침 일곱시 우리 마을의 신화서점 정문이 천천히 열렸다. 순간 뭔가 신성한 느낌이 내 가슴속에서 용솟음쳤다. 낡은 서점 대문이 열리면서 삐거덕삐거덕 몹시 듣기 싫은 소리가 났지만 나는 화려한 무대의 막이 오르는 듯한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서점 직원이 문밖으로 걸어 나왔다. 내 눈에는 그가 공연의 서막을 알리는 신비한 안내원으로 보였다. 하지만 곧이어 내 마음속의 신성한 느낌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서점 직원이 큰 소리로 말했다. "서표는 50장밖에 없습니다. 50번째 뒤에 서 계신 분들은 집으로 돌아 가주세요." 그렇게 추운 겨울날 아침에 내 머리 위로 냉수 한 바가지가 뿌려졌다.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몸이 꽁꽁 언 상태였다.(99p)

책을 갖고 싶어서 전날 밤부터 혹은 이른 새벽부터 서점 앞에 긴 줄을 선 사람들, 그냥 돌아서야 했던 심경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서표를 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서점 문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안에서 책을 산 사람들은 서점 문을 나서면서 손에 든 자신들의 성과를 내보이며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를 포함하여 서점 밖에 서 있던 사람들은 각기 자신이 잘 아는 사람에게 다가가 몹시 부러운 듯한 표정으로 <안나 카레리나> <고리오 영감> <데이비드 코퍼필드> 같은 새 책을 만져보았다. 우리는 너무나 독서에 굶주려 있었기 때문에 이런 문학 명저의 참신한 표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즐거웠다. 인심 좋은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새 책을 펼쳐 책을 사지 못한 사람들에게 코로 잉크 냄새를 맡아보게 해주었다. 나도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새 책 냄새를 맡아보는 것이었다. 연한 잉크 냄새가 신성한 향기처럼 느껴졌다.(100p)

오늘날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과거를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작은 마을 서점 앞에 3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서던 때와 디탄 공원에서 고전 명저 한 무더기를 10위안에 살 수 있는 오늘날 사이의 30년이라는 시간차가 마치 하룻밤처럼 짧게만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진정한 의미에서 스스로의 독서여행을 뒤쫓고 있다.

30여 년 전 그날 이른 아침에는 두 손이 텅 비어 있었지만 몇 개월이 지나 참신한 문학서적들이 한 권 한 권 내 서가에 쌓이기 시작했고 나의 독서는 더 이상 문화대혁명 시기처럼 앞뒤가 잘려나간 불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나의 독서는 더없이 풍성했고 흐르는 강물처럼 끊이지 않고 지속되었다.(103p)

저자의 독서의 역사는 중국사회의 과거의 현재와 연결되어 있고 저자가 오늘날 작가가 된 중요한 배경을 또한 알 수 있다.

얼마 전에 누군가 30년의 독서가 내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질문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드넓은 바다를 마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언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겁 많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그 작품의 옷깃을 붙잡고 그 발걸음을 흉내 내면서 시간의 긴 강물 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아주 따스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름,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그 작품들이 이미 영원히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04p)

이제 "나는 글쓰기를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사회에서의 작가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저자의 '글쓰기'다. 위화 작가의 성장과정과 현재, 작가로서의 삶에 양날의 칼날처럼 독서와 글쓰기는 맞물려 있다. 작가의 삶 속에서 중국사회의 어제와 오늘을 보고 저자의 글쓰기 이력을 본다.

위화는 자신의 글쓰기의 근원을 '대자보'에서 출발한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사람들은 대자보를 쓰는 데 열을 올렸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쓰는 데 열을 올리는 것보다 더 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의 대자보는 천편일률이었고 기본적으로 <인민일보>의 글을 베끼는 데 불과했다는 것이다. 혁명의 언어와 공허한 구호들이 글 전체에 넘쳐흐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114p)

그가 중학교에 들어간 후 대규모로 대자보를 쓰기 시작했고, 1973년 말, 전국초중학생들이 궐기하여 사도의 존엄을 비판하는 조류가 일었는데, 그가 글을 쓰고 '춘묘'라는 필명으로 서명한 대자보가 저자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대자보에서 연극극본으로 연극극본에서 소설로 넘어갔다.

그는 몇 해가 지난 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중국남부의 작은 마을병원에서 치과의사로 일을 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소설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그는 말한다. 그의 나이 스무 살을 갓 넘었을 때였다. 손에 강철로 된 집게를 들고 매일 여덟 시간씩 사람들의 치아를 뽑았고 오후 휴식시간이 되면 그는 항상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병원 창가에 서서 눈 아래 펼쳐지는 소란스러운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내가 이 자리에 평생을 서 있을 수 있을까?" 바로 그 순간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썼다.

스물두 살 무렵, 나는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이를 뽑으면서 한편으로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를 뽑는 것은 생계를 위해서였고, 글쓰기는 나중에 더 이상 이를 뽑지 않기 위해서였다. 맨 처음에는 글을 한 자 쓰는 것이 치아를 뽑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주말만 되면 창밖의 햇빛이 너무나 밝고 아름다워 보였고, 새들은 마음껏 날아다녔으며 도처에 아가씨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와 같은 나이의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놀러 나갔지만 나는 혼자 마른나무처럼 탁자 앞에 앉아 장인이 쇠를 다루듯 아주 힘들게 한 자 한 자 딱딱한 한 자를 써내려갔다. 나중에 젊은이들이 종종 내게 묻곤 했다. "어떻게 해서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나요?" 나의 대답은 하나이다. 바로 '글쓰기' 덕분이었다. 글쓰기는 경험과 같다.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137p)

저자는 1980년대 초, 문화대혁명이 막 끝나고 10년 동안 간행이 금지되었던 일부 문학잡지가 복간되었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리워한다. 갑자기 천 종이 넘는 문학잡지가 쏟아졌다. 대량의 문학지면이 '굶주린 아기처럼 한꺼번에 엄마 젖을 기다렸다.'

작은 마을의 치과의사였던 저자는 잘 아는 문학잡지 편집자 한 사람 없었고 여러 문학잡지에 그가 쓴 단편소설들을 송고하였다. 반송되면 또 다른 문학잡지사로 보내고 반송되고를 반복했다. 그가 가본 도시들보다 원고가 가본 도시가 훨씬 더 많았다고 그는 썼다. 저자의 운명을 바꾼 전화가 걸려온 것은 1983년 11월. 그의 작품이 채택된 것이다. 그는 말한다.

지금의 나는 이미 27년이라는 글쓰기 경력을 갖고 있고 이제는 "나는 글쓰기를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 통틀어 표현하고 싶은 무수한 욕망과 감정을 품게 된다. 하지만 억압된 욕망과 감정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가 사람의 심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인생을 더욱더 완전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또는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두 갈래 인생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하나는 현실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허구의 길이다... 내 현실에서의 삶의 길이 갈수록 평범해지는 것은 허구에서의 내 삶의 길이 갈수록 풍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147p)

저자의 성장내력과 중국사회의 변화들과 글쓰기는 그 영향을 주고받는다.

나는 나의 성장 이력이 1980년대에 내가 그토록 혈기와 폭력으로 가득 찬 글을 쓰도록 결정해놓은 것이라 생각한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나는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었고 문화대혁명이 끝났을 때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였다. 나의 성장은 한 차례 또 한 차례 연이어 벌어지는 가두행진과 비판투쟁대회, 조반파 사이의 무장투쟁을 목도해야 했다. 이것 말고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리의 집단 패싸움도 지켜봐야 했다. 대자보가 가득 붙어 있는 길거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치고 지나가는 것이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습관처럼 겪은 일이었다. 이것이 내가 어렸을 때의 대환경이었고, 소환경에서도 항상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하나의 극단에서 또 다른 극단으로

저자 위화가 이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사회는 하나의 극단에서 또 다른 극단으로 빠르게 변화해왔다. 이른바 혁명사유가 모든 것을 주재하던 정치지상주의와 집단주의의 시대에서 개혁개방이라는 막강한 변화의 기폭제를 통해 돈이 모든 것을 주재하는 금전지상주의와 개인주의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처럼 현기증이 날 정도로 속도가 빠른 변화를 통해 중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G2에 등극했고 과거의 소련을 제치고 미국과 더불어 국제사회의 양대 축을 형성하는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중국의 화려한 변화 이면엔 엄청난 그늘이 존재한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의 빈부격차와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발전, 국가주의 전통에서 오는 인권의식의 부재, 경제수준과 문화의식의 괴리, 금전만능주의에 따른 도덕적 기초 상실, 정기적 민주와의 미숙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중국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이른바 조화발전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서는 중국의 과거와 현재의 한 급격한 변화의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더불어 격동기를 거쳐온 작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책읽기와 글쓰기의 변천과정을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작가는 시대와 역사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한 작가는 그 시대의 희비극에 영향을 받으며 그 시대의 산물임을 다시금 실감하였다. 무엇보다도 나는 중국의 어제와 오늘 속에서 위화라는 한 작가의 읽기와 쓰기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중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위화란 작가를 알고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위화 (지은이)/ 김태성 (옮긴이)/ 문학동네/ 2012-09-08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문학동네(2012)


#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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