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산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맛있는 맥주 많이 마실 수 있겠다'며 부러워한다. 물론, 독일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맥주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장을 조금 더해 말하자면, 독일 마트 및 대형슈퍼에서 파는 무알콜맥주 종류가 우리나라 대형마트에서 파는 국산맥주들보다 더 많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0년 기준으로 양조장만 13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맥주 브랜드도 다양하고, 그만큼 역사도 길다. 가장 오래 된 독일 양조장은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래된 양조장의 경우 중세·근대·현대 시대 양조장이 공존한다. 그 중 578년 역사를 자랑하는 작센(Sachsen)주 서남부지역 포그트란드(Vogtland)에 있는 베르네스그뤼너(Wernesgrüner)도 독일에선 유명한 브랜드다. 지난 4월 말,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싶은 마음에 베르네스그뤼너 공장을 찾았다.
포그트란드의 베르네스그륀은 베를린에서 기차를 두 번이나 환승한 후, 또다시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마을이다.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서 독일 전통요소가 가미된 아기자기한 2층집들이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2층집들을 지나면 베르네스그뤼너 양조장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베르네스그뤼너 직원이 나와 나를 맞았다. 베르네스그뤼너는 크게 남부 양조장과 북부 양조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가 안내한 곳은 북부 양조장이었다. 북부 양조장에는 15세기 혹은 근대 이전 시대 옛 모습들을 잘 간직한 건물들이 많았다. 특히 흰색 바탕에 붉은색 지붕을 한 건물들이 눈에 띄었는데, 옛날에 맥주 저장소로 쓰였던 곳이란다.
몇 세기 전 건물까지 그대로... 대단하네
맥주 저장소 옆에는 마구간이 있었는데, 자동차와 기차 이전 시대에는 마차가 물자를 나르는 교통수단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몇 세기 전에 지은 건물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도 방문객들을 위한 맥주마차투어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 다른 옛 건물들은 재활용으로 수거된 병을 보관하는 창고로 활용되고 있다.
방문자 센터에 도착한 후, 다른 독일인 일행들과 공장 견학을 시작했다. 안내원은 구수한 작센 서부 억양으로 설명해 집중해서 들어야 했다. 처음으로 안내한 곳은 과거 볏짚저장소로 사용된 곳이었은데, 지금은 콘서트홀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서 578년의 간략한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베르네스그뤼너는 1436년 쇼러(Schorer)형제가 맥주양조·주류면허·유리공예면허를 허가받으며 시작합니다. 이 후 주인이 바뀌면서 6개의 가족업체로 운영되다가 1762년 요한 미하엘 귀넬(Johann Michael Günnel)이 양조장을 인수하고, 1774년 요한 크리스토피 매넬(Johann Christoph Männel)이 병 공장을 인수하면서, 두 가문의 경쟁체제로 20세기 중반까지 독립적으로 운영되었지요. 현재의 통일된 베르네스그뤼너로 갖추어지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정부의 토지개혁 조치였습니다. 먼저 100ha이상을 점유했던 귀넬가문의 토지가 1947년 먼저 국유화되고, 100ha 미만의 메넬가문 토지가 1972년에 최종적으로 국유화되며, 1974년 '베르네스그뤼너 인민공사(VEB Wernesgrüner Brauerei)'로 통합해 운영되었지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에는 민영화되었고 장비가 현대화되어, 2002년 비트부르거 음료그룹(Bitburger Getränkegruppe)에 인수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최근 연간 맥주 생산량은 85만 헥토리터(1헥토리터=100리터) 규모이며, 동독지역의 4대 맥주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과거 동서독 분단시절에도 존재했다고 하니, 묘한 궁금증이 생겼다. '동독맥주였으니, 서독에선 당연히 맛볼 수 없었겠지?'라는. 하지만 내 예상은 틀렸다. 분단시절 서독에서도 베르네스그뤼너를 살 수 있었단다. 베르네스그뤼너는 동독 사회주의 정부의 공식맥주였는데, 서독 및 서유럽 심지어는 미국에까지 수출됐었다고 한다. 하물며 서독 루프트한자항공에서도 승객들에게 제공됐단다. 아직도 냉전으로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와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독일이 오랫동안 맥주강국 자리를 유지한 이유
독일이 오랫동안 맥주 강국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1516년 바이에른대공 빌헬름 4세가 제정한 맥주순수령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제정된 내용은 맥주는 물, 홉, 맥아, 효모만으로 생산하며 어떤 첨가물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현재는 맥주세법이 이를 계승하고 있단다. 물론 최근에는 조항이 완화되어서 첨가물이 들어간 맥주가 시장에서 일부 시판되긴 하지만(이런 경우 Bier라는 표기를 해서는 안 된다), 베르네스그뤼너와 같은 대다수 유명 브랜드가 메인으로 내놓는 상품은 맥주순수령을 바탕으로 한다.
이날 내가 현장에서 본 것은 여과와 냉장보관, 그리고 맥주를 병에 채워 넣는 과정이었다. 2차 숙성된 맥주는 맥주전용 파이프를 거쳐서 여과공정기에 도착한다. 여과공정기에선 무명천으로 된 필터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으로 마지막 남은 터브 및 찌꺼기를 제거한단다. 이 과정을 모두 거친 맥주는 섭씨 6도의 냉장고에 보관하는데, 필스맥주는 도수가 4.9%, 수출용 맥주의 도수는 5%라고 한다.
냉장보관된 맥주는 두 가지 형태로 생산되는데, 하나가 바로 술집에서 활용하는 30리터 통맥주다. 통맥주의 경우 술집에서 통을 회수한 다음 여러 번 세척해서 재활용하는데, 이는 환경보호를 위한 목적도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병맥주인데, 마찬가지로 슈퍼에서 회수한 병을 여러 번 세척한 다음 재활용한다. 맥주로 가득 채워진 통과 병에 상표를 달면, 출하 준비가 다 된 것이다. 참고로 한 시간에 5만 병이 출하된다.
"맥주시장 흔들리지 않은 이유, 시민들 덕이었다"견학이 끝나고, 오랜 역사를 유지한 비결을 묻기 위해 맥주제조·품질보증팀의 팀장인 마티아스 베커(Matthias Becker)씨를 만났다. 그는 1990년 통일 이후 베르네스그뤼너의 역사를 경험했던 증인이기도 하다.
- 왜 작센 및 바이에른과 같은 남부지역에서 맥주가 먼저 발달하기 시작했나. "물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독일 북부의 경우 센물이어서 고도의 정제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로 근대시대에 와서야 양조업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작센과 바이에른 남부지역의 경우 단물이어서 바로 식수로 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일찍부터 맥주양조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 맥아는 주로 어디서 공급받는가? "옛날에는 각 가문이 직접적으로 맥아농장을 운영하여 조달했지만, 현재는 농장을 통한 직접적 거래가 아닌 맥아방앗간(Mälzerei)에서 조달한다. 물론 비용절감과 지역농업 유지를 위해 공장에서 가까운 지역을 중심으로 조달받는다. 현재 우리는 주로 드레스덴, 에르푸르트(Erfurt), 바이에른주 프랑켄지방, 바뎀-뷔텐베르크지역 등의 방앗간과 계약을 맺고 있다."
- 바이에른 할레타우(Halletau)에서 재배되는 홉을 주로 쓴다고 들었다. 이곳의 지리적·기후적 이점이 있는가?
"전혀 없다. 오랫동안 품종개량 및 재배기술을 개선함으로써 맥아의 질을 높이고 있다. 동독시절에는 주로 체코에서 조달했다."
- 통일 이후 재민영화를 거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가? "어려움이 많았다. 1990년 재민영화를 거치면서 두 개로 나뉘어졌던 곳이 지하수로를 건설하면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조합되면서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구 시설을 현대화/자동화하면서 인력 구조조정(이로 인한 실직자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및 사회적 변화로 인한 후유증도 컸다.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 구 동독인들의 서독맥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데다가 마케팅이 걸음마 단계였던 관계로 90년대 중반 연간 생산량이 30만 헥토리터까지 줄어들었을 정도로 상당히 고전했었다. 하지만 기술개선 및 홍보노력으로 다시 옛 명성을 찾을 수 있었다. 전통적 역사정신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바뀌는 현대기술을 빠르게 적용하고 적응하는 과정이 위기 극복에 있어 상당히 중요했다."
- 2002년 비트부르거 음료그룹에 인수되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브랜드가 유지되는 이유는? "유명 음료그룹이 브랜드를 인수한다고 하더라도, 독일은 지역맥주역사가 오래된 지역이다. 만약 브랜드를 없애고, 통합하는 형태로 운영한다면, 해당 지역 주민들 및 맥주애호가들의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유럽의 지역내 자유시장 정책에도 독일 맥주시장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바로 전통을 오랫동안 지키려는 시민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격한 품질관리가 지속 가능성 높였다- 베르네스그뤼너에서 맥주 양조사 혹은 엔지니어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0학년(즉 우리나라 고1에 해당)을 마치면, 3년간 양조사 교육을 받는다. 우리는 1년에 총 2명의 견습생을 받는다. 현재는 총 6명의 견습생이 있다. 학교에서의 일반교육과정과 드레스덴 양조사학교에서 이론 교육, 그리고 우리가 실시하는 실전교육과정이 혼합된 형태다.
양조 마이스터가 되려면 베를린(VLB Berlin) 혹은 프라이싱엔(Freisingen)의 바이엔슈테판(Weihenstephan)에서 2년간 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엔지니어의 경우 관련 전공 석사학위(5년)를 취득해야 한다."
- 아시아 지역에도 수출을 하는가? "중국이 가장 큰 시장이다. 최근에는 흑맥주가 유행이라 이 분야의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베르네스그뤼너가 578년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랫동안 진행되었던 엄격한 품질관리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 시설현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기술변화에 잘 대응했기 때문이다. 또 최근 독일 맥주업계의 인수합병절차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전통을 지키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지인들의 경우 한-EU FTA의 수혜자가 우리나라 자동차도 유럽의 제약업체도 아닌 유럽 맥주 업계라고 말하는데, 우스갯소리가 아닌 것 같다. 아직까지 과점체계로 운영되고 있는 한국맥주업계가 품질개선 및 전문화교육의 강화를 통해 시장이 더욱 다양화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