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기적을 갈구하는 간절한 바람이었을까. 통한과 분노를 곱씹다 못해 노랗게 물든 걸까. 아니면 꽃피우지 못한 채 수장된 병아리같은 자식들의 환영이었을까.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를 노랗게 물들인 노란리본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5월의 햇살은 유난히 반짝였다.
세월호 침몰 25일째인 10일.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를 빙 둘러싼 노란리본이 바람에 휘날리는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을 밝히는 국민촛불 행동' 촛불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1부 주제를 '꼭 안아줄게'로 정한 이유는 뭘까? 안산시민사회연대 김경민 집행위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단원고 희생자분들이 하늘나라로 가는 길에 우리들이 함께 보듬어 주고 좋은 곳으로 가라는 의미예요. 또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하나로 묶어 위로하고 추모하는 뜻으로 노란리본으로 인간 띠 잇기를 하고 노란풍선을 하늘로 띄우기로 한 것입니다"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간 화랑유원지 3주차장에 마련된 국민행동 촛불 접수처에는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접수처에서 구역(1~50구역까지 합동분향소를 한 바퀴 에워쌈)이 표시된 노란띠를 받고 위치를 확인한 후 이동하면 깃발이 구역을 표시한 깃발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상세한 진행내용을 설명했다.
오후 2시부터 모여든 시민들... "너무 불쌍해요"
구역을 넘나들며 이날 노란리본 잇기에 참가한 시민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용인에서 왔어요. 제 아들도 고2로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으로 참가했어요. 두 번 다시 이 땅에서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 임성준씨(51, 자영업)"세월호 뉴스 봤을 때 너무 불쌍하고 슬퍼서 분향도 하고 촛불모임에도 참여하고 싶었는데, 오늘 좋은 행사가 있어서 친구랑 같이 왔어요." - 안산 본원초교 6학년 학생 "같이 지내는 수녀님 조카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됐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서 같이 왔어요. 사람이 제일 귀한데 귀한 게 뭔지 잊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무엇보다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나라라는 게 기막혀요. 이 일을 발판으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는 나라가 됐으면 해요." - 안선영씨(세실리아 수녀)"연극하는 팀원들끼리 왔습니다. 막상 와 보니까 저희들이 작아 보였고, 밖에서 희희낙락 철없이 웃었던 제가 작아 보이는 모습이 느껴지더라고요. 이 분들(희생자) 앞에서 너무 가치 없이 살지 않았나, 가볍게 살지 않았나… 너무 미안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 김동진씨(극동대 연기연극학과)"중국 연변에서 안산에 온지 4년 됐어요. 뉴스로만 보다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아이들하고 같이 왔어요. 추모하는 마음으로 노란리본 잇기를 한다기에…." - 유혜원씨(중국동포) "아이들의 다 피지 못한 꽃들이 지고 슬픔이 너무 커 오늘로 두 번째 왔어요. 팽목항도 다녀오고. 가면 갈수록 아픔이 더 심해지는 거 같아요. 대신 여기 와 아픔을 나누면 덜 해지기도 하니까요.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마음으로 온 것이지요." - 진화(스님)
시민 5천여명, 노란리본으로 인간띠
각 구역에서는 본 행사가 진행되기 전까지 자원봉사자들의 안내로 둥그렇게 원을 만든 후 인사 나누기, 노란리본 잇기 취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참가자들은 부부, 가족 단위부터 중장년층까지 그야말로 각계각층이었다. 안산시민연대는 노란리본 잇기에 참가한 시민들이 5천여 명을 넘었고, SNS로 신청한 사람들은 약 500여 명이라고 밝혔다.
전국의 보통 엄마들로 구성된 '엄마의 노란손수건'도 참가했다. 엄마들은 이날 오후 1시 30분 단원구 선부동에 모여 '대한민국 정부는 너희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를 제목으로 2차 공동행동에 나서 시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알리는 선전을 한 후 화랑유원지로 합류했다.
합동분향소를 완전히 에워싼 참가자들은 합동분향소에 안치된 '세월호 영정'은 믿을 수 없는 정부로부터 우리들이 지키겠다는 듯이 노란리본으로 서로를 묶은 손을 놓지 않았다. 노란리본으로 이어진 인간 띠는 구역에 따라 두 겹 세 겹을 이루기도 했다.
오후 3시 29분. 노란리본으로 인간 띠를 만든 상태에서 구역별 자원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5분간 합동 추모 묵념에 들어갔다. 묵념이 끝난 후 20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일제히 '함께 외치기'를 3번 반복해서 제창하고, 동시에 하늘에는 주최 측에서 준비한 핼리캠이 하늘을 비행했다.
"잊지 않겠습니다 / 친구들을 / 잊지 않겠습니다 / 밤하늘의 / 별이된 / 모든 친구들을 / 인지 않겠습니다 / 밝히겠습니다 / 진실을 / 밝히겠습니다 / 책임질 사람을 밝히겠습니다 / 기억하겠습니다 / 4월 16일을 / 기억하겠습니다 / 국민을 저버린 / 정부를 / 기억하겠습니다 / 잊지 않겠습니다 / 밝히겠습니다 / 기억하겠습니다"구호 제창이 끝나자마자 참가자들 '하늘에서는 부디 편안하게'라는 문구가 쓰인 노란풍선을 하늘로 날렸다. '단원고 학생들을 잊지 않고, 진실을 밝히고,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마음을 담은 노란풍선은 푸르른 하늘 끝으로 하염없이 올라갔다. 다시 구호 제창이 이어지고, 여기저기서 참았던 울음을 쏟아내면서 구호는 통곡과 절규로 바뀌고 있었다.
촛불 행사장까지 3.5km 침묵행진 끝없는 행렬노란 천에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쓴 펼침막을 든 선두를 따라 노란리본 잇기에 참가한 시민들은 경기도미술관 뒤 오솔길을 따라 단원고~안산시청을 지나 국민촛불 장소인 안산문화광장까지 3.5km를 침묵행진 했다. 단원고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뒤를 돌아 본 행렬의 끝은 여전히 경기도미술관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시민들이 침묵행진에 들어 간 시간 화랑유원지 소공연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와 다짐을 위한 청소년YMCA 회원대회'가 열렸다. 전국YMCA 중 고등학교YMCA가 있는 30여 곳에서 참가한 고등학생 500여명과 지역 실무자들은 별도의 추모 예배를 갖고 4시 30분 안산문화광장으로 추모행진을 나섰다.
이날 추모예배를 주최한 청소년YMCA 전국대표자회는 '단원고 친구들을 잊지 않고, 우리의 또 다른 가족이 되신 분들을 잊지 않으며, 우리나라의 진짜 모습을 잊지 않고, 세월호 사고에 대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4가지 입장문을 발표했다.
세월호 침몰로 안산청소년YMCA TPO아카데미 회원이었던 단원고 학생 5명이 희생당했고, 1명은 아직 실종 상태다.
오후 6시부터 안산문화광장에서 불을 밝힌 2부 '끝까지 밝혀줄게-국민촛불 켜기'에서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함께 정부에 조속한 수색작업을 촉구하고 진상규명을 바라는 온 국민의 마음을 담아 다함께 촛불을 들었다.
행사 전 화랑유원지부터 2km를 걸어 촛불광장까지 침묵 행진한 시민들을 만났다.
"단원고 언니 오빠들께 묵념하러 왔어요." - 송정은(안산 경일초교 6학년)"충남 아산에서 왔구요.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둔 엄마예요. 사고 접하고 2주 동안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다 너무 기가 막혔어요. 절망에 빠져 있고 화가 났었는데, 이젠 내가 시민으로서, 학부모로서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하자고 해서 참석하게 됐어요." - 성은기씨(43, 주부)"성남에서 왔는데, 이 정부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지는 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싶었고… 막상 현실이 이렇게 되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가를 너무 몰라 봤구나하는 자괴감이 들어요." - 김영호씨(56, 자영업)2부 국민촛불 켜기는 오후 6시 15분 개회 및 묵상을 시작으로 안산시고교회장단연합이 제작한 '세월호 영상' 상영, 태안불법사설 해병대캠프유가족의 추모, 엄마의 노란손수건의 격문 '왜 그랬습니까?' 발표, 민변 세월호대책위원회 권영국 변호사 발언, 박래군 인권운동가 발언, 안산시민사회연대 공동대표 4인의 행동선언 등으로 진행됐다.
안산시민사회연대는 2부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1만3000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8시 15분경. 국민촛불 켜기가 끝난 후 이날 행동의 마지막 순서인 3부 '함께 걷기-국민들에게 호소합니다' 가두행진이 시작됐다. 가두행진은 안산문화광장을 출발, 안산시청을 지나 중앙역 광장에서 마무리 집회를 가졌다.
참가자들은 행진을 하면서 연도에 선 시민들에게 '함께 기원하고, 추모하고, 진실을 밝혀 줄 것'을 호소했다. 안산에서 심야에 도심지를 가르는 촛불 가두행진이 펼쳐지기는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6년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그래스루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