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이는 주중에는 할머니와 아침을 맞이하지만, 주말이면 엄마와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모녀는 늦은 아침을 먹는다. 아내는 평소에 못다 한 딸에 대한 애정을 듬뿍 넣어 아침을 차리고, 출근한 내게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내서 정성껏 차린 아내와 딸의 아침 밥상을 보니 '이것이 행복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자식이 있으면 엄마는 용감해지고, 없는 음식 솜씨도 일취월장한다고 했던가. 요즘 아내의 어깨는 들썩이고 콧대는 하늘을 찌른다. 주말마다 한 가지씩 이것저것 검색을 해서 먹고 싶은 음식을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예전 생각이 든다. 아내는 원래 공대생 출신이다. 공대생답게 숫자, 계산, 집에 대한 구조 등에 많은 관심이 있다. 이사를 한번 하려면 그 집에 도면을 그리고 자로 잰 듯한 가구배치와 이사비용을 꼼꼼히 챙긴다. 한편으로 그렇지 못한 내게는 다행이라면 다행인 셈이다. 그런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음식이라는 절대 난관에 부딫인 것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 아내가 오븐도 사고 식기 관련된 것들을 사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싶기도 했다. 혼자였을 때는 한 끼 정도야 밖에서 해결해도 되고 사먹어도 되었지만, 남들처럼 오손도손 밥도 해먹고 알콩달콩 신혼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공대생 아내는 음식을 하겠다고 하루하루 고군분투를 했다. 시댁과 친정에서 해주는 반찬으로 마냥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도 동의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기억에 남는 음식이 한 가지 있는데, 결혼 초 된장찌개는 나에게 잊지 못 할 음식으로 뇌리에 콕 박혀 있다. 아내는 퇴근하면서 감자, 호박, 두부 등 재료를 사서 야심 차게 된장찌개에 도전했었다.
"뭐 하는 거야?""어 된장찌개. 한번 맛 좀 볼래?""어 조금 이따 같이 먹자."솔직히 당시 나는 어차피 하루 두 끼는 밖에서 해결을 하니 한 끼 정도는 걸러도 된다는 생각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된장찌개에 꿀을 넣으면 더 맛있대~"라는 말을 했다.
"어…."(된장찌개에… 꿀?)그렇게 차린 밥상을 놓고 둘이서 마주 앉았다. 맛을 보기 위해 수저로 찌개를 떠서 맛을 보았는데, 그 맛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달달하다 못해 단 된장찌게 맛을 보았나? 먹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어디서 무슨 레시피를 보았는지 몰라도 된장찌개에 꿀을 넣은 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나의 반응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연실 '맛있다. 괜찮다. 좀 달다'라는 말로 밥 한 공기를 다 비웠으니 말이다. 사랑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칭찬을 받으면 더 잘할 것이란 기대였을까. 하루 이틀이 아니었을 터. 아무튼, 아내의 달달한 된장찌개를 맛본 그 이후로도 된장찌개가 밥상에 올라오면 문득문득 그대의 기억과 함께 입안에 달달함은 내게 지워지지 않은 트라우마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아내의 음식은 웬만한 한식 쉐프 정도(?)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속은 부드럽고 겉은 살짝 바삭한 식빵이라고 오븐에 구운 빵이 온통 바케트가 되어 입천장이 까지는 빵을 먹었어도 칭찬한 결과일까. 아내는 이제는 빵도 먹을 만하고 음식도 잘한다.
처음부터 무슨 일 이든 잘 하는 사람은 없다. 또한 노력하는 자에게 칭찬이 아닌 핀잔은 주눅들게 한다. 비록 당시는 힘들고 곤욕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칭찬은 지금의 수준급의 음식솜씨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딸과 나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아내의 요리가 매우 만족스럽고 고맙다. 혹 내가 길 들여지지는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또 어떤 음식으로 나를 놀라게 할지 은근 기대되는 주말이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올라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