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왕조시대나 독재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이상함이다.
지난 17일 서울에서 3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석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촛불 추모제가 열렸다. 필자도 그 취지를 공감하며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함께 참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큰 충돌 없이 무사히 추모제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자 하나를 받았다.
"삼촌, 이건 아닌 듯..." 종종 경제나 사회 문제를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조카의 문자였다. 모 대기업에 갓 입사한 20대의 나름 건강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라 생각한다. 이 조카의 요지는 왜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집회나 시위를 통해서 대통령에게 묻느냐 하는 것이다.
나름 건강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20대가 물어오는 질문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필자에겐 충격적이고 낯선 경험이었다. 왜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물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가 있다.
첫째,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부나 대통령은 주인된 국민의 주권을 잘 지켜 달라고 세금을 내고 고용한 공무원일 뿐이다. 주인이 잠시 동안 주인의 권력을 한시적으로 위탁해준 권력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하여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은 우리를 잘 다스려줄 지배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잘 지켜 줄 유능한 고용인을 선발하는 면접시험과 같은 것이다. 정부와 국민의 관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아니라 고용인과 주인의 관계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민주주의의 당연한 참 명제라 생각한다.
고용된 자가 주인으로부터 위탁받은 권리를 남용하고 오용한다면, 주인된 자가 고용인에 대하여 책임을 묻고 그 진의를 가려서 부족하다면 더 유능한 고용인으로 바꾸고자 하는 것은 주인된 자의 정당한 행동양식이다. 그런데 고용인이 자신의 과오에 대하여 일체의 사과의 말도 없이 오히려 자신들의 과오를 축소하고 은폐하려 한다면, 주인은 그 고용인에 대하여 국민의 힘과 권력으로 징계하고 처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처사다. 여기에 왜 의문부호가 생기는지 필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의문부호가 생기는 원인을 필자는 아직도 대한민국이 독재의 그늘에게 온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여러 독재자를 거치면서 충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사회 속에서 민주공화국의 개념은 상실한 채 오랫동안 살아 왔다. 물론 수많은 선열들의 피의 대가로 민주화를 이뤘지만, 그 잔재의 청산에는 실패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민주사회에 있어서 집회나 시위는 지배자에 대한 모반이나 반역이 아니라, 부당함에 대하여 권력의 주인이 정당하게 드는 회초리인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갖는 모든 의문부호는 아직도 봉건과 독재에 머물고자 하는 정신적 노예근성이고,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에 대한 철학적 부제에 지나지 않는다.
일인 왕조 통치나 종교적 집단 혹은 다른 소수의 지배집단들이 재화를 독식하는 지배구조를 다수의 국민이 재화를 공유하는 구조로 바꾼 것이 민주주의이다. 수천 년의 역사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일궈낸 이 값진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금 허상의 지배계층에 반납하려는 무지의 소치가 이 의문의 정체인 것이다.
노예로 머물겠는가, 아니면 주인이 되겠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당연한 답이 나오는 질문을 왜 하냐고 반문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민주주의 일원임에 틀림이 없는데 왜 의문부호를 찍는지 필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둘째,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 수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부의 수장이란 정의는 대한민국의 지배자가 아니라 주인인 국민이 고용한 정부의 대표라는 것이다. 세월호 사태와 그 이후의 흐름에서 국가의 주인된 우리가 망각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안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온 국민이 이토록 오랜 시간 비통함에 잠기는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개념을 잡는 일이다. 조카와 같은 사람들은 말한다. 세월호의 침몰과 박근혜 대통령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틈만 나면 못살게 구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분명하게 관계가 있다.
이 처절한 비통함과 허탈함은 세월호가 왜 침몰하였는가라는 질문의 해결에서가 아니라, 왜 한 명도 살리지 못했는가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위로되어지는 부모의 심정이다. 지금 우리가 분개하고 있는 것은 일개 기업가의 금전적 탐욕에서 빚어진 세월호의 침몰이 아니라, 우리의 자식들과 형제자매들이 국가의 구조를 받지 못한 채 수장되어 가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정부의 무능 때문이다.
세금 내고 월급 주면서 내 가족의 안전을 책임져 달라고 맡긴 정부가 보호는커녕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있는데, 그것도 실시간으로 방송해 주면서 날마다 가슴을 후벼파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럼에도 이 정부는 오히려 연일 방송을 통해 잘못된 정보를 내놓으면서 진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선장 및 선원과 유회장 일가나 구원파라는 종교집단에 초점을 맞추어 후자에 나타나는 근본 원인으로부터 자신들의 책임을 면피하려고 시도한다. 수대에 걸친 통치 노하우를 총동원하여 여론은 호도하고 민의를 왜곡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선장을 포함한 전자의 사람들은 당연히 책임을 물어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부로부터 바라는 것은 일체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는 꿈같은 주문이 아니라 사고가 일어날 때 그 사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해 달라는 소박한 바람이다. 주인된 우리가 국가를 국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이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충족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세월호의 참극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국민에게 과연 대한민국은 국가라는 주장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지 권력을 위탁받은 정부에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고용된 자로서 고용인인 국민의 안전보장에 책임이 있음에도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죄, 또한 정부 자신이 세월호라는 사고를 일개 해양사고가 아닌 전후 최고의 참사로 재창조한 당사자임을 망각한 죄, 그리고 그 죄를 은폐할 목적으로 신성한 민의에 반하여 원인과 책임소재를 공영방송과 거대언론을 통하여 호도하려는 죄를 묻고자 하는 것이 촛불이다.
이것은 여와 야, 좌와 우의 이념적 갈등양상과는 무관한 주인된 국민과 위탁받는 정부의 쌍방문제일 뿐이다. 어떠한 정치색도 거부하는 인간 본성, 즉 불의에 항거하고 몰상식에 저항하고자 하는 행동하는 양심만으로 생성된 순수한 본성이다. 여기에 어떠한 정치색을 덧입히려고 하는 모든 시도도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철옹성과 같은 순수열정이 바로 촛불을 드는 행위인 것이다. 당연히 헌법에 보장된 합법적인 권리임은 더 부연할 필요도 없다.
자 그럼 이제 주인된 국민이 고용된 정부에게 책임을 묻고자 한다. 누구에게 물어야 하겠는가? 말단 사원이나 비정규직 알바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아니면 선거를 통한 선서와 계약의 당사자인 정부의 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라면,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권력의 주인이라면 언제라도 즉답이 가능한, 이렇게 단순한 질문에 대하여 왜 의문을 갖는지 필자는 그것이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