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정동진에 있습니다. 해가 뜨는 곳이기도 하죠.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지회가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리라 생각해서입니다.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17일 오후 강원 강릉시 한 길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염호석(34) 전국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아래 지회) 양산센터 분회장이 남긴 유서의 일부다. 지회는 삼성전자서비스의 전자 제품을 수리하는 협력업체 직원들로 구성된 노조다.
염 분회장은 유서에서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달라"며 "지회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하여 이 곳에 뿌려달라"고 남겼다. 마지막으로 "OO조합원 아버지의 병원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며 "협상이 완료되면 꼭 병원비 마련 부탁한다,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겠다,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이라고 남겼다.
그의 죽음은 지난해 10월, 지회 천안센터의 최종범씨 이후 두 번째다. 최씨도 유서를 남겨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 보는 것도 힘들었다"며 "전 전태일님처럼 그렇진 못해도 선택했다,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썼다(관련기사:
그는 왜 죽음을 택했나?).
행방불명 뒤, 번개탄과 함께 발견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30분께 강원 강릉시 강동면의 한 연수원 부근 공터에서 염 분회장이 자신의 아반떼 승용차 안에서 숨져 있는 것을 마을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차량 조수석에는 타다 남은 번개탄과 유서가 발견됐다.
염 분회장은 지난 15일 오전 4시께 직장 동료에게 '힘들다'는 내용의 문자를 남기고 나서 행방불명돼 이튿날인 지난 16일 경남 양산경찰서에 자살 의심 신고가 접수된 상태였다. 경찰은 그의 휴대전화 사용 최종 기지국으로 확인된 강릉 강동면 일대에서 수색을 벌여왔다.
그는 지난 12∼14일 양산분회 등 전국 노조원들과 함께 삼성전자서비스 센터의 원청인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과 수원 본사 등을 방문, 이재용 부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2박 3일간의 노숙 투쟁을 벌여왔다.
지회는 그동안 각 센터와 삼성전자 측에 성실교섭 촉구, 건당 수수료 제도 폐지와 월급제 도입,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해 왔다. 특히 염 분회장이 속한 양산센터를 비롯해 김해·진주·통영 분회 등 경남·부산 지역 4개 분회 노조원 150명은 지난 9일부터 사측에 성실교섭을 촉구하며 무기한 전면 파업을 벌여왔다.
지회 "유지 받들어, 장례일정 중단 될 수도"
지회에 따르면 그는 최근 사측의 노조 탄압으로 일거리가 줄었다. 지회는 사측이 노조 활동에 적극적인 조합원들에게 일감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노조를 탄압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제품 수리 건당 수수료를 통해 임금을 받아왔다. 수리 건수가 줄어들면 그만큼의 일도 줄어드는 것이다. 특히, 겨울철은 비수기로 수리기사들의 임금은 턱없이 낮다. 때문에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사측에 최저임금 지급 등을 요구해 왔다.
지회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사측이 온갖 말도 안 되는 협박과 몰상식한 욕설, 생계 압박으로 노조를 압박해 왔다"며 "삼성의 노조 탄압이 또 한명의 노동자를 죽였다"고 밝혔다. 이어 "지회 전 조합원들은 고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고인의 뜻과 밝은 미소를 잊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추후 장례일정은 유족과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논의 중이다.
홍명교 지회 교육선전위원은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염 분회장은 항상 자기를 먼저 낮추고 동지들을 배려하는 등 젊은 나이에도 가장 열심히 싸우던 간부였다"며 "하지만 사측이 노조를 탄압하면서 생활고를 겪었고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분회장의 유서를 받들어 삼성이 노조 탄압을 중단해 노조가 승리할 때까지 장례일정은 중단 될 수 있다"며 "추후 구체적인 사항은 유족들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