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넘었다. 아직 정확한 진상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각 부처는 서로 네 탓이라고 떠넘기기 바쁘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구할 수 있었는데도 늑장을 부리며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해경들, 관제탑과 교신하며 "(승객들을) 빨리 바다로 뛰어내리게 하라"는 말을 듣고도 이행치 않은 선원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아이들을 살리려다 죽어간 교사들의 이름이 아직도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보다 아이들을 먼저 생각한 교사,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꿈을 키워보려던 교사들이 죽었다.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두고 있는 학부모다. 어느 부모가 안 그랬겠냐마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수학여행을 간다고 떠난 해맑은 아이들이 배가 뒤집혀 구조되지 못하고 바닷속에 잠겨 있다니. 그 부모들의 마음을 무슨 수로 헤아릴 수 있을까. 결국 싸늘한 시신이 되어 부모의 품에 안긴 아이들. 기적을 바랐지만 그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직 시신도 찾지 못한 실종자가 18명이라고 한다(19일 현재). 아이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나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며칠 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친구와 카톡으로 짧은 대화를 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일주일 정도는 '멘붕'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렸는데, 이제야 뒤늦게 눈물샘이 터져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다고 했다. 물에 빠진 아이들을 살리려다 돌아가신 교사들을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는 것은 교사라는 직업이 가져다주는 매우 특별한 감정일 것이다.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닌 아이를 내 아이처럼 대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는 직업이 교사 말고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것은 사명감이나 책임감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사랑하고 나보다 아이들을 먼저 살리자는 생각으로 죽음에 이른 교사들, 죽은 아이들이 눈에 밟혀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돼버린 학교, 이 절망스러운 상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기 힘들었기 때문에 교사들은 의견을 모았을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박근혜 퇴진' 성명서를 올렸을 것이다.
"설령 나를 비판했다 하더라도 어찌 백성을 탓하겠는가"
13일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교사 43명이 실명으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그들은 "사람의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의 탐욕을 저지하고, 무능과 무책임, 몰염치, 기만과 교만에 가득 찬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운동에 나서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교육부는 이들의 행동이 "국가공무원법에 위배된다"며 "선언에 참여한 교원을 확인하고 징계처분, 형사고발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해달라"고 각 지역 교육청에 공문을 내렸다.
이것이 과연 정치적 행위로 매도할 일인가? 200여명의 꽃 같은 착한 아이들이 어른들의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을 듣다가 죽었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차디찬 바다 속에서 울부짖었을 아이들의 절규를 생각하면 정부가 이럴 수는 없다. 무능한 정부에게 당연한 질문 몇 마디 던진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앞장서서 책임지고 국민을 위로하라고 촉구하고, 그렇지 못할 바에는 대통령직을 내려놓으라고 얘기한 게 징계를 받을 만한 일인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16일 성명을 내고 "(43명 교사들의 행동은)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한 행위'도 아니며 '직무전념의무를 해태하는 등의 영향을 가져오는 집단적 행위'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민원성 청와대 게시글조차도 공익에 반하는 공무원의 집단행동으로 몰아가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라는 그들의 항변에 동의한다. 나는 학부모로서 이 교사들의 징계에 명확히 반대한다.
박 대통령은 19일 오전 대국민 담화에서 이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은 주변 사람을 살리려다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고, 국민들이 이 영웅들을 본받아야 한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이 희생자들 중에는 사랑하는 제자를 살리려다 목숨을 던진 젊은 교사들의 이름도 있었다. 대통령은 자기의 '최종 책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국민들이 단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솔선수범을 촉구한 교사들을 징계하는 건 사태 해결에 역행하는 일이다. 대통령은 오히려 이 교사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게 옳지 않을까. 청와대 바로 앞,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 그분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백성들이 나를 비판한 내용이 옳으면 내 잘못이 있다는 얘기니 처벌해서는 안 된다. 설령 오해와 그릇된 마음으로 나를 비판했다 하더라도 그런 마음이 들게 한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다. 어찌 백성을 탓하겠는가."(<한 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박영규, 웅진지식하우스)박 대통령이 진정 국민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세종대왕의 이 말을 곱씹어서, 자신을 비판한 교사들에 대한 징계 지시를 거두고 진정한 국민통합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