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보도를) 제대로 했으면 좋았잖아요.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될 때까지 제대로 보도 안하고 이제 와서 사죄하면 무슨 소용입니까."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유족인 한 남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20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KBS 새노조) 조합원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자사의 보도 논란을 사죄하기 위해 경기 안산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다. 앞서 KBS 기자협회가 조문하러 왔을 때보다 차가운 모습이었다.
기자협회 방문 이후인 지난 16일, 길환영 KBS 사장이 자사의 세월호 관련 보도에 개입했다는 추가 폭로가 나왔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청와대 지시를 받은 길 사장이 자신에게 "해경을 너무 비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오보·축소보도 논란과 더불어 사장·청와대 개입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KBS 보도를 향한 유가족들의 울분도 더 높아진 듯했다.
KBS 새노조 "저희 잘못 방송으로 전하겠다"... 21일 파업 찬반 투표
유가족 대기실 천막 안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탁상에 앉은 유가족 10여 명은 새노조 조합원들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조합원 40여 명은 고개만 푹 숙였다. 일부 조합원은 미안함에 눈시울을 붉혔다.
권오훈 새노조 위원장도 "길 사장뿐만 아니라 KBS 직원인 저희도 죄인이다, 죄송하다"며 울먹였다. 그는 "새로운 KBS에서는 다시는 이번 참사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저희의 할 일을 찾아보겠다"며 "방송을 통해 희생자들의 한을 풀 수 있도록 열심히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KBS 새노조는 보도에 개입한 길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출근 저지 투쟁 등을 전개하고 있다. 권 위원장은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 분들이 저희들에게 싸우라고 명령했다고 생각한다"며 "싸움을 끝내고 돌아가면 저희가 잘못한 것을 방송을 통해 꼭 전하겠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앞으로 왜곡 보도가 없도록 힘을 써 달라",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 유가족은 "KBS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방송사이기 때문에 조문을 받는 것"이라며 "직원들이 자정 노력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KBS 새노조 조합원들은 노조 창립일을 맞아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유가족 면담에 앞서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 이들은 영정사진마다 눈을 맞추며 추모하는 모습이었다. 조문을 마친 조합원들은 분향소 출구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수습 및 진상규명 서명운동' 천막에 들려 이름을 올렸다.
한편, KBS 구성원들은 보도 통제 의혹에 휩싸인 길 사장이 계속 버틸 경우 대응 강도를 높이겠다고 경고한 상태다. KBS 기자협회는 사장 사퇴를 요구하며 19일부터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KBS 부장급 간부들도 보직 사퇴 뜻을 밝히며 사장 퇴진을 압박하고 있다. KBS 새노조는 오는 21일 총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