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2014년의 6·4지방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각 정당과 무소속의 입후보자들이 등록을 마쳤고, 22일부터 법적 선거운동 기간으로 접어들었으니 장외가 아닌 경기장에서의 본격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때문에 선거 분위기가 과열로 치닫지는 않겠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능력 없고 자격 없는 부실정권에 대한 심판 의지가 특히 젊은 층에 팽창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는 으레 '공약'이라는 것이 따르기 마련이다. 각 후보마다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공약 거리들을 장만하기 위해 고심한다. 공약 없는 선거는 있을 수 없다. 실현가능성이 있는 것이건 비현실적인 것이건, 또 정신적인 것이건 물질적인 것이건 공약은 후보자의 이상과 자질을 잘 반영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국민에게 입후보자들의 공약은 큰 신뢰를 주지 못한다. 그냥 장식품 정도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다. 입후보자가 공약을 제시할 때는 치장과 표현에 온갖 열과 성을 다하지만, 당선된 후에는 공약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거나 노골적으로 폐기해 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선거 공약은 별로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 혹 공약을 보고 투표하는 유권자들도 있겠지만, 그들 역시 공약의 이행 여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약 자체보다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더 중요나는 선거 때 접하게 되는 공약의 내용보다도 선거 후의 이행 여부에 관심을 갖는 편이다. 공약 자체보다도 공약을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공약이든 공약을 지키려는 노력 자체가 '정치발전'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때의 공약을 반드시 지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실현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획기적인 공약들을 하나하나 폐기해버리거나 축소 변형시켜 버려서 스스로 빛 좋은 개살구, 속 빈 강정 꼴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만큼은 약속을 꼭 지켜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그 공약마저도 아주 태연하게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그 공약을 지키지 않고 선거 초장부터 예비후보들의 유니폼에 1번을 달게 했으니, 그런 공약 파기에서 어떻게 정치발전의 싹이 트겠는가.
자기들은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태연스레 공약 파기를 자행하고는 그것 때문에 야권이 큰 혼란에 빠진 것을 보면서 희희낙락했으니 그것처럼 몰염치한 일은 또 없다. 야권의 김한길과 안철수가 고민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기초선거 공천폐지 공약을 파기하기로 하였을 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되레 야당의 공약 파기를 비난하던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와 당시 원내대표였던 최경환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야당만큼은 끝까지 공약을 지켜 공약을 지킨 쪽과 지키지 않은 쪽의 대결 양상이 된다면 선거전이 더욱 볼 만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기호 1번을 단 유니폼들이 한결 유리한 상황일 것은 불문가지다. 하지만 기호 1번이 독무대를 이루는 것 같은 선거판을 보면서 유권자들은 깜빡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쪽은 공약을 지키고 한쪽은 지키지 않아서 기호 1번의 독무대 같은 상황이 빚어지고 있음을 확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
선거 기간에는 유권자들이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되려 공약을 지킨 쪽을 비난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기호 1번의 독무대 같은 선거판의 유리한 상황을 잘 이끌어서 새누리당이 압승을 거둘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압승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진정한 승리가 될 수 없다. 공약을 지키지 않은 쪽이 공약을 지킨 쪽을, 그것도 공약 파기의 이점을 활용하여 이겼다는 사실이 그로써 명백해질 것이다. 그때에 가서는 유권자들이 뭔가를 분명히 깨달을 수도 있다. 공약을 지키지 않은 쪽이 공약을 지킨 쪽을 제압한 현실 속에서, 공약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공약 파기의 대가로 새누리당이 압승을 거둔다면 그 승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정치 퇴보의 음영에 구애받을 필요 없이 새누리당 정권이 더욱 자신 있게 공안정국을 강화시키며 역주행을 감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의 자각 능력과 저항이 반비례로 커질 수도 있다.
이것이 내가 종래 견지해 온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들과 함께 공약 자체보다도 공약을 지키는 것이 정치발전의 실체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는 야당만큼은 기초선거 공천폐지 공약을 꼭 지켜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집권여당이 먼저 공약을 파기하고 기호 1번 유니폼들을 출몰시키는 상황에서 야당 도 결국 기초선거 공천폐지 공약을 파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이 기호 2번을 달고 선거전에 나서게 되었다.
나는 양당 후보를 비롯한 모든 후보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다. 공약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거창한 공약은 나올 수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일국의 대통령도 공약을 지키지 않고, 갖가지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풍토에서, 지방선거에 공약을 내거는 일이 무예 중요하겠는가. 빈 공약들이 쓰레기장에 쌓여 '거짓말공화국'의 풍경을 더욱 스산하게 만들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그러니 6·4지방선거 출마자들이여, 제발 거짓말 공약은 하지 마시라.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 무능한 정부와 대통령을 개조시키는 일에 일조하겠다는 공약 정도는 할 수도 있겠지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