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5시, 전주 오거리 문화광장에서 '세월호 아이들을 잊지 않는 엄마들의 행진'에 참여하기 위한 엄마들 1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이 모인 목적은 세월호 아이들을 잊지 말자는 호소를 시민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이다.
광장 한 켠에는 각자의 마음과 주장을 담은 구호를 적기 위한 노란색 종이와 국화꽃, 마스크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유모차를 끌고 삼삼오오 모인 엄마들은 노란색 종이에 "잊지 않을게", "미안해", "가만히 있지 않겠다",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 "엄마들아 일어나라", "박근혜 퇴진" 등의 다양한 구호를 적어 넣었다.
일인시위로 시작된 엄마들의 행진
엄마들의 행진을 처음 제안한 나는 딸 둘을 기르는 엄마다. 나는 처음 사고가 났을 때 "어디서 또 사고 하나 났나 보네" 하며 매우 무심했었다. 그러다 사고 후 이틀이 지났는데도 구조 소식이 들리지 않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4월 20일부터는 인터넷 방송과 신문을 뒤져가며 사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사고가 참사로 이어지는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자 분노가 치밀었다. 아이들이 남긴 동영상과 부모들의 절규를 접하며 울분을 삭이기가 어려웠다. 밥도 잘 먹히지 않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버이날이었던 5월 8일 지인들과 팽목항을 찾았고 그것을 계기로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5월 12일부터 매일 오후 5시 경기전에서 검은색 상복을 입은 채 '엄마의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운동도 병행했다. 그러자 주위에서 격려와 응원이 쏟아졌고 같이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비로소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혼자 행동할 것이 아니라 같이 모여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만난 친구들과 지역 학부모단체와 생협 등에서 일하는 엄마들에게 함께 모여 공동 행동을 의논해보자고 제안했다. 제안을 받은 엄마들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호응했다.
13명의 엄마들이 5월 15일 모임을 갖고 토론을 했다. 각자의 일상 속에서 노란 리본 달기, 현수막 걸기, 동네 일인 시위를 하고 23일에는 모두 모여 침묵행진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 문자와 이메일,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의견을 주고 받으며 행사를 준비했다.
잊지 않을게, 너희들이 이제 됐다고 말할 때까지
오후 5시 15분, 고등학생과 중학생 아이를 기르고 있는 고선미씨의 진행으로 사전 집회가 진행되었다. 고선미씨는 "세월호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불렀을 이름, 엄마의 이름으로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다"며 "아이들이 이제 됐다고 말할 때까지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이에 박수로 호응했다. 그들은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를 함께 외치며 마음을 모았다.
경과 보고에 나선 나는 "우리의 이 작은 행동이 특히 돌아오지 않는 딸의 '머리카락 한 올, 뼈 한 마디라도 만져보고 싶다'고 한 실종자 가족에게 힘이 되기를 감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서 장세희씨(참교육학부모전북지부장)가 학부모단체의 활동을 전하며 이제 '기억과 투쟁'이 우리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호소문은 박현정씨, 문정숙씨가 낭독했다. 호소문에는 엄마들이 모인 이유, 대통령 담화문과 정부의 태도에 대한 비판, 시민들에게 전하는 말이 담겨 있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이제 함께 울기 위해서입니다. 혼자 울고 혼자 분노하다 지쳐 흐르는 시간 속에 세월호 아이들을 흘려 보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더 이상 이런 위험한 세상에 살게 할 수는 없어서입니다...(중략) 우리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면서도 실종자 구조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는 대통령 담화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습니다. 최종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면서도 구조 작업 중인 해경 해체 등 실상은 다른 이들의 잘못만 탓하는 태도 또한 옳지 못합니다...(중략)오늘은 세월호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내일은, 그리고 모레는 우리의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어갈 수도 있습니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희들과 함께 해주십시오."호소문이 낭독되는 동안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어서 세월호 아이들을 추모하는 노래 "애들아 올라가자"를 함께 부른 후 침묵행진에 나섰다.
침묵으로 외치는 "기억하자", "행동하자"
'엄마의 이름으로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가 적힌 소형 펼침막과 노란 피켓을 든 엄마들은 오거리 문화광장에서 경기전까지 인도를 따라 한 시간 가량 침묵으로 행진했다.
지역 언론사의 관심과 취재 열기도 높았다. 엄마들은 새누리당 전북도당사 앞에서는 잠시 마스크를 벗고 큰 소리로 항의를 하기도 했다. "왜 한 사람도 구하지 못했는지 말하라!", "진상을 낱낱이 밝히라"고 외치는 목소리에 분노가 실려 있었다.
침묵행진을 마친 후 동산동에서 매일 일인시위를 해오던 서미숙씨는 "그동안 많이 외롭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는데 같은 뜻을 가진 엄마들을 보니 힘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이들은 세월호 가지고 정치 선동하지 말라고 하는데 우리는 정치선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죽인 무능한 권력자들에게 정치를 맡겨둘 수는 없다. 우리가 다 정치인이 되어 안전하고 바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서로를 격려하는 가운데 행사를 마친 엄마들은 오후 7시부터 경기전에서 열린 전주시민 촛불에 참여했다. 준비를 함께 한 13명의 엄마들은 오는 26일 평가 모임을 갖고 이후 어떤 행동을 이어갈지를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