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여러 개의 정치세력이 경합하고, 시민들이 하나의 대안을 찾는 정치체제다. 하지만 이번 6·4 지방선거 경북/전북지역의 기초/광역의회 의원 후보등록 현황을 보면, '경합'은커녕 지역독점 정당 소속 후보를 견제할 야당 후보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주요 원리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다.
아래 <표1>은 경상북도와 전라북도의 광역/기초의회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 소속 정당 현황이다. 경북에서는 새누리당이, 전북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독주하는 상황이다.
경북 기초의원 선거의 경우, 총 후보자 수가 493명인데 이 중 절반 정도인 239명(48.5%)이 새누리당 소속이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자는 단 7명.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녹색당을 모두 더해도 16명뿐으로, 전체 후보자의 3.2%에 불과하다. 무소속 후보자는 238명(48.3%)이다.
전북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북 기초의원 선거 총 후보자 396명 중 168명(42.4%)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다. 새누리당 후보자는 단 6명.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노동당 후보를 모두 더해도,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닌 정당의 후보자는 21명(5.3%)뿐이다. 전북 지역의 무소속 기초의원 후보는 절반을 넘는 207명(52.3%)이다.
지역 유력정당 '단독후보' 선거구도 경북 18개 전북 5개지역별로 사정을 들여다보면 유권자의 선택권은 상당히 협소해진다. 경북 지역 가운데 포항시의 사례를 살펴보자. 포항시의원 11개 선거구 중 새누리당과 무소속 후보 이외에 다른 정당 후보가 출마한 경우는 단 4곳(북구 다선거구/통합진보당, 북구 마선거구/새정치민주연합, 남구 바선거구/정의당, 남구 사선거구/통합진보당)에 불과했다.
반대로 전라북도 전주시의 시의원 후보 현황도 살펴보자. 포항시의 사례에서 '새누리당' 대신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바꿔 쓰기만 하면 상황은 거의 비슷하다. 14개의 선거구 중 새정치민주연합과 무소속 후보가 아닌 타정당 후보가 출마한 선거구는 5곳(완산구 가·마선거구/새누리당, 완산구 사선거구/새누리당·통합진보당, 덕진구 차선거구/새누리당, 덕진구 타선거구/정의당)뿐이다.
무소속 후보를 제외하면 포항시 기초의원 선거 7개 선거구에서 비(非) 새누리당 후보를, 전주시 9개 선거구에선 비(非)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시군(기초자치단체)을 통틀어 특정 정당을 제외한 정당의 기초의원 후보가 아예 없는 곳도 많았다. 경북 17개 시군(울릉군·김천시·안동시·영주시·상주시·문경시·예천군·청도군·고령군·성주군·칠곡군·군위군·의성군·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에는 새누리당이 아닌 정당의 기초의원 후보가 단 한 명도 없다.
전북 지역의 경우에는, 6개 시군(진안군·무주군·장수군·임실군·고창군·부안군)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닌 정당의 기초의원 후보가 단 한 명도 없다.
결국 이 지역에 사는 유권자들은 같은 당 소속의 후보들 중 한 명을 선택하거나 무소속 후보를 택해야 한다. 후보들은 지역민심을 잡고 있는 유력 정당 소속이 아니라면 차라리 무소속 출마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경북에선 야당 후보로, 전북에선 여당 후보로 출마할 바에는 무소속으로 나가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역 일당 독점구조는 한국정치의 오래된 폐해지만 그 양상은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해당 지역의 상대적 약소정당들은 인물난과 낮은 당선 가능성이라는 현실적 난관에 부딪혀 전국 모든 지역에서 후보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상대적 약소정당은 지역별 일당독점 구도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정치 견제세력 고사 우려... "지방선거 정당투표 대폭 늘려야" 경쟁상대가 없어 투표를 치르지 않고 당선티켓을 거머쥔 후보들도 있다. 야당 후보뿐만 아니라 무소속 출마자가 없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단독으로 출마한 경우다. 공천이 무투표 당선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경북지역에서 새누리당은 2개 기초단체장 선거(고령군, 봉화군)와 광역의원 17개의 선거구에서 무투표 당선자를 냈다. 전북지역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광역의원 5개의 선거구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다. 상당수의 단독 출마자들은 재선 또는 3선에 뛰어든 후보들로 아무런 견제나 검증 없이 쉽게 지방권력을 움켜쥐게 됐다.
하지만 특정 정당의 후보들만 출마하거나 무투표로 당선되는 후보들이 등장하는 것은 지역민심을 왜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의 공고화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구춘권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당의 후보들이 선거를 독점한 상황에 대해 "상당한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며 "대향세력의 견제 없는 정치제도는 기득권의 이익을 공고화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구 교수는 덧붙여 "견제세력의 부재는 견제되지 않는 예산의 사용과 집행, 의회의 거수기 역할 등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구 교수는 "지역 독점 정당체제에서는 다른 정당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라며 "지방선거에서라도 정당투표(비례대표)를 대폭 늘려 도의회와 지방의회의 50% 정도는 정당투표로 뽑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조언했다.